한여름 넘실대야 할 유럽의 강들이 바닥을 보이고 있습니다. 평소라면 강물 아래 잠겨 있었을 암반이 햇빛 아래 모습을 드러냈고, 시민들은 믿기지 않는 듯 강변으로 내려가 달라진 모습을 바라봅니다. 기록적인 폭염과 가뭄이 만들어낸 현실입니다. 뜨거운 날씨에 비마저 내리지 않으면서 유럽 사람들은 최악의 물 부족 사태와 마주하고 있습니다. 잃은 것은 강물만이 아닙니다. 유럽 대륙의 젖줄인 다뉴브강과 라인강이 바짝 마르면서 물류, 농업, 전력생산 전반으로 피해가 확산하고 있습니다. 사태가 장기화하면 보호무역 확산과 지정학적 악재로 그렇지 않아도 억눌린 유럽의 경제성장세가 더 둔화할 것이란 전망입니다.
4일(현지시간) BBC 등 외신에 따르면 독일 서부 쾰른과 네덜란드 로비트에서 측정된 라인강 수위는 관측 이래 사상 최저치를 기록했습니다. 독일에서 흑해로 흐르는 다뉴브강은 이미 바닥을 드러내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침몰한 나치 군함 잔해와 매머드 유해가 모습을 드러낼 정도입니다. 이탈리아에서 가장 긴 강인 포강도 연일 최저 수위로 떨어지고 있습니다. 강은 배를 띄우지 못해 물류에 비상이 걸렸고, 농작물은 메말라가며, 원자력발전소는 냉각수 부족으로 출력을 줄이고, 관광업도 고사 위기에 직면했습니다. 기후위기가 일상의 불편을 넘어 산업과 경제를 흔드는 현실이 된 것입니다.
가장 먼저 타격을 받은 산업은 물류입니다. 유럽에서 가장 붐비는 내륙 수로인 라인강의 대표적인 병목 구간인 독일 카우프의 항행 가능 수심은 기존 최저 기록인 25cm를 깼습니다. 이렇게 수심이 낮아지면서 화물선은 평소 적재량의 20∼30%밖에 싣지 못하고 있습니다. 적재량이 줄어들면 화물 운송을 위해 더 많은 선박을 동원해야 해 운임 부담이 커지고 있습니다. 이미 운송 비용은 한 달 전보다 3배로 뛰었습니다. 이는 공급망 차질로 이어지고 있습니다. 독일 철강업체 티센크루프는 수위 저하로 대형 바지선 운항이 어려워지자 뒤스부르크 제철소의 쇳물 생산을 줄였습니다.
이탈리아에서는 포강 하구의 유량이 줄어들면서 바닷물이 강바닥으로 유입돼 생태계 교란이 발생한 것은 물론 농업용수 부족 우려도 제기됩니다. 오스트리아 역시 최악의 가뭄으로 목초지가 말라가면서 농가들이 가축을 먹이는 데 애를 먹고 있습니다. 유럽연합(EU)은 장기간 지속된 건조한 날씨가 유럽 전역의 농작물 수확량을 위협하고 있다고 밝혔습니다. 관광산업도 타격을 받고 있습니다. 불가리아에서는 다뉴브강 수위가 낮아지면서 지난주 크루즈선이 모래톱에 좌초돼 승객 186명이 육지로 대피했습니다. 크루즈 업체들은 다뉴브강 등에서의 운항을 취소하고 있습니다.
세르비아, 루마니아, 헝가리에서는 전력 공급 차질이 본격화했습니다. 헝가리는 자국 전력 생산량의 40%를 차지하는 팍스 원자력 발전소의 가동을 차례로 중단하고 있습니다. 원전 냉각수를 끌어와야 하는 다뉴브강의 수위가 낮아지면서 필요한 수준을 채우지 못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루마니아는 원전 냉각수 확보를 위해 다뉴브강 암반을 폭파해 물길을 바꿨습니다. 가뭄으로 가동이 일부 중단된 체르나보다 원자로가 있는 수로에 더 많은 물을 보내기 위해서죠. 루마니아에 있는 포드와 다치아 자동차 공장 두 곳은 전력 소비를 줄이기 위해 2주 이상 생산 중단을 결정했습니다. 세르비아는 물 부족으로 냉각시스템이 제대로 작동하기 어려워지면서 석탄화력발전소 발전량을 줄였습니다.
전문가들은 가뭄으로 경제성장률이 떨어질 수 있다고 우려합니다. 네덜란드 ING은행의 카르스텐 브레츠키 거시경제팀장은 가뭄에 따른 물류 차질 등이 단시간에 해소되지 않으면 독일의 경제성장률이 앞서 예측했던 0.8%가 아닌 0.5%에 그칠 수 있다고 전망했습니다. 독일은 2018년에도 가뭄으로 성장률이 0.4%포인트 가까이 하락한 바 있습니다.
박영서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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