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 대체상품 규제없이 투자
거래량 전주보다 17.3배 증가
투자처 바꾼 ‘반쪽규제’ 지적
해외 유사상품으로 향하던 투자 수요를 국내로 돌리겠다며 허용한 단일종목 레버리지 상품이 출시 50일 만에 강도 높은 규제 대상이 됐다. 그러나 금융당국이 국내외 단일종목 상품의 투자 문턱을 높인 전후로 서학개미 자금은 오히려 규제 대상에서 빠진 해외 지수·섹터형 2~3배 상품에 몰렸다. 위험 투자를 억제하기는커녕 투자처만 해외 대체상품으로 바꿔준 ‘반쪽 규제’라는 비판이 나온다.
디지털타임스가 5일 한국예탁결제원 세이브로 자료를 분석한 결과 지난달 27일부터 이달 4일까지 7거래일간 미국 주식 순매수 상위 10개에 이름을 올린 레버리지 상품의 순매수 결제액은 총 31억4954만달러(약 4조5000억원)로 집계됐다.
같은 기간 미국 주식 순매수 상위 10개 종목의 전체 순매수액은 43억1468만달러다. 이 가운데 레버리지 상품이 차지한 비중은 73.0%에 달했다. 상위 10개 밖으로 밀린 상품의 순매수액은 포함되지 않은 만큼 실제 해외 레버리지 투자 규모는 이보다 클 수 있다.
규제 강화 전과 비교하면 차이는 더욱 선명하다. 지난달 20일부터 24일까지 순매수 상위 10개에 포함된 레버리지 상품은 나스닥100지수를 3배 추종하는 TQQQ와 2배 추종하는 QLD 두 개였다. 합산 순매수액은 1억8204만달러로, 상위 10개 전체의 24.1% 수준이었다.
반면 지난달 27일부터 이달 4일까지 레버리지 순매수액은 직전 주의 17.3배로 불어났다. 비교 기간이 5거래일에서 7거래일로 늘어난 점을 감안해 하루 평균으로 환산해도 3641만달러에서 4억4993만달러로 12.4배 급증했다.
상품별로는 미국 반도체지수를 3배 추종하는 SOXL에 가장 많은 자금이 몰렸다. 지난달 27~31일 24억8054만달러, 이달 4일 5705만달러 등 합산 순매수액이 25억3759만달러에 달했다. 전체 레버리지 순매수액의 80.6%다.
TQQQ에는 2억1271만달러가 유입됐고, QLD와 한국 주식시장 지수를 3배 추종하는 KORU에도 각각 1억1348만달러, 1억598만달러가 들어왔다. SOXL·TQQQ·QLD·KORU 네 상품의 합산 순매수액은 29억6976만달러로, 전체 레버리지 순매수액의 94.3%를 차지했다.
금융당국이 현금 3000만원의 기본예탁금을 적용한 대상은 국내외에 상장된 단일종목 레버리지 상품이다. 국내 삼성전자·SK하이닉스 2배 상품뿐 아니라 해외 테슬라·엔비디아 2배 상품에도 같은 기준을 적용한다.
반면 SOXL이나 TQQQ처럼 여러 종목을 묶은 해외 지수·섹터형 상품은 배율이 3배라도 현금 3000만원 기준을 적용하지 않는다. 국내 개별 반도체주 2배 상품의 진입은 조이면서 미국 반도체지수 3배 상품으로 이동할 통로는 그대로 열어둔 셈이다.
규제 시행 이후 흐름에서도 풍선효과의 조짐은 이어졌다. 시행 후 첫 두 거래일인 지난 3~4일에만 SOXL·TQQQ·QLD 등 규제 밖 지수·섹터형 레버리지 상품의 순매수액이 1억1363만달러에 달했다. 단일종목 레버리지의 문턱을 올렸지만 고위험 투자 수요가 사라지지 않고 상품의 형태만 바꿨다는 의미다.
금융투자업계 관계자는 “달러 유출을 막겠다고 단일종목 레버리지를 도입했는데, 규제 강화 이후 또 다시 해외 지수 2배·3배 상품의 순매수가 늘어난다면 당초 목표를 달성하지 못한 셈”이라며 “지금 상황에서는 도대체 누구를 위해 상품을 도입하고 규제한 것인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또 다른 관계자도 “단일종목 레버리지만 규제하면 SOXL이나 대표지수 관련 해외 레버리지 상품으로 풍선효과가 발생할 수 있다”며 “이렇게 되면 해외 유사상품 투자 수요를 국내로 흡수하려던 도입 취지에서 벗어나게 된다”고 지적했다.
당초 단일종목 레버리지 상품은 해외 상품으로 향하던 투자 수요를 국내 규율체계 안으로 끌어들이고 국내외 규제 비대칭을 해소한다는 취지로 도입됐다. 금융당국은 도입 전 변동성 확대와 리밸런싱에 따른 시장 충격 등을 충분히 검토했다고 밝혔지만, 출시 직후 수급 쏠림과 현물시장 충격, 헤지 한계와 괴리율 문제가 잇따라 불거졌다. 결국 시장 구조를 보완하기보다 개인투자자의 예탁금부터 높이는 방식으로 급선회했다.
업계 관계자는 “예상 가능한 문제의 책임을 투자자 진입 규제로 돌린 모양새”라며 “국내 2배 상품은 조이면서 해외 지수형 3배 상품은 그대로 두는 규제가 실제 위험도를 반영한다고 보기 어렵다”고 말했다. 다른 관계자 또한 “해외 대체상품으로 수요가 이동할 가능성까지 면밀히 검토했어야 했다”며 “단일종목 여부보다 배율과 변동성, 유동성 등 실질적인 위험도를 기준으로 삼아야 한다”고 지적했다.
최근 발표된 세제개편안과도 정책 방향이 충돌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정부는 국내 주식과 국내 주식형 펀드, 국민성장펀드, 기업성장집합투자기구(BDC) 등에 투자하는 생산적금융 개인종합자산관리계좌(ISA)를 신설하고, 이자·배당소득에 전액 비과세 혜택을 주기로 했다. 납입 한도는 연간 2000만원, 총 2억원이며 청년형에는 납입액의 10% 소득공제도 적용한다.
세제정책에서는 국내 자본시장의 매력도를 높이겠다면서, 금융규제에서는 국내 상품의 문턱을 높이고 더 높은 배율의 해외 대체상품을 상대적으로 유리하게 만든다는 점에서 정책 정합성이 떨어진다는 비판이다.
업계 관계자는 “한쪽에서는 ISA를 통해 국내 자본시장으로 자금을 유도한다고 하면서 다른 한쪽에서는 국내 상품 선택지를 줄이고 해외 대체상품으로 갈 통로를 열어두고 있다”며 “두 정책을 따로 볼 것이 아니라 일관된 자본시장 정책인지 따져봐야 한다”고 꼬집었다.
김지영 기자 jy1008@d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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