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팩 낮춘 ‘루빈 울트라’ 출시 검토

타 AI칩 제조업체들도 비슷한 상황

삼전닉스 가격 협상력 한층 커질 듯

D램 공급 부족이 내년까지 이어질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면서 엔비디아가 차세대 인공지능(AI) 가속기의 고대역폭메모리(HBM) 사양을 낮추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AI칩의 절대 강자 엔비디아도 결국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눈치를 볼 수밖에 없다는 의미다.

5일 시장조사업체 트렌드포스가 발표한 최신 메모리 산업 보고서에 따르면 엔비디아는 올해 3분기부터 차세대 AI 가속기 ‘루빈 울트라’의 HBM 구성을 기존 12단 적층 HBM4e에서 8단 적층 HBM4e, 12단 적층 HBM4, 8단 적층 HBM4 등으로 확대해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분석했다.

당초 12단 적층 HBM4e를 기본 사양으로 추진했던 엔비디아가 메모리 공급 상황을 고려해 보다 다양한 선택지를 검토하기 시작했다는 의미다. 단 최종 사양은 아직 확정되지 않았다. 지난달에도 HBM의 원재료 격인 D램 가격은 전 달보다 두 자릿수 상승했다.

트렌드포스는 2027년에도 D램 공급 부족이 지속될 것으로 예상되며, 메모리 업체들의 12단 적층 HBM4e 인증 일정에도 불확실성이 남아있다고 분석했다. 이에 따라 AI칩 제조업체들은 차세대 제품의 HBM 사양을 조정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엔비디아는 지난해부터 올해 상반기까지 루빈 울트라의 기본 사양으로 12단 적층 HBM4e를 유지해 왔다. 그러나 올해 3분기 들어 보다 낮은 사양의 HBM 구성까지 검토하기 시작한 것이다.

트렌드포스는 이 같은 변화의 배경으로 D램 공급 부족과 HBM4e 양산 불확실성을 꼽았다. 2027년 D램 공급난으로 메모리 업체들이 HBM 생산에 투입할 수 있는 웨이퍼 물량이 제한될 것으로 예상되는 데다, 12단 적층 HBM4e의 인증 일정과 수율 확보 여부도 아직 불확실하다는 설명이다.

엔비디아뿐 아니라 주요 클라우드서비스제공업체(CSP)들도 자체 AI 주문형반도체(ASIC)에 기존보다 낮은 용량의 HBM을 적용하는 방안을 검토 중인 것으로 전해졌다.

엔비디아의 경우 차세대 ‘베라 루빈’ 슈퍼칩 모듈의 소캠(SOCAMM) 용량을 절반으로 줄이기로 결정했다. LPDDR5X 공급 부족이 2027년까지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고 판단한 영향이다.

HBM4e가 계획대로 인증을 마치고 양산에 들어가면 루빈 울트라의 입출력(I/O) 속도는 기존 루빈의 8~11.7Gbps에서 14~16Gbps 수준까지 향상될 것으로 예상된다. 반면 HBM4 기반 설계를 선택할 경우 11~12Gbps 수준에 머물 가능성이 높다.

HBM 적층 수는 그래픽처리장치(GPU) 한 개당 메모리 용량과 전체 GPU 출하량을 결정하는 핵심 요소다. 적층 수를 줄이면 GPU당 메모리 용량은 감소하지만, 대신 같은 HBM 물량으로 더 많은 AI칩을 생산할 수 있다.

메모리 공급이 제한된 상황에서 AI 반도체 업체들이 성능보다 공급 안정성을 우선 고려하기 시작했다는 의미로도 해석된다.

이에 따라 HBM을 공급하는 메모리 업체들의 협상력은 한층 강화될 전망이다. 트렌드포스는 2027년 HBM 출하량(비트 기준)이 전년 대비 50~60% 증가하더라도 AI 시장의 수요 증가 속도를 따라가기에는 부족할 것으로 전망했다.

공급 부족이 이어질 경우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마이크론 등 HBM 제조 업체들은 제한된 생산 물량을 바탕으로 가격 결정력을 유지할 가능성이 높다. 업계에서도 내년 HBM 가격 인상이 불가피할 것이라는 전망이 확산되고 있다.

반대로 엔비디아를 비롯한 AI칩 업체들은 HBM 확보 경쟁과 조달 비용 증가라는 이중 부담을 안게 될 것으로 예상된다. 이에 따라 차세대 AI 가속기에서도 상대적으로 용량이 낮은 HBM을 채택하거나 제품 사양을 조정하는 사례가 늘어날 가능성이 제기된다.

트렌드포스는 “AI칩 업체들은 제한된 HBM 공급과 조달 비용 증가라는 이중 부담에 직면하면서 상대적으로 용량이 낮은 HBM 구성을 채택하려는 유인이 더욱 커질 것”이라고 분석했다.

D램 공급난으로 엔비디아가 인공지능 가속기 사양을 낮추는 방안을 검토하는 것으로 알려지면서, 메모리 제조사들의 협상력이 내년에도 우위를 보일 것으로 예상된다. 사진은 삼성전자 HBM4.  삼성전자 제공
D램 공급난으로 엔비디아가 인공지능 가속기 사양을 낮추는 방안을 검토하는 것으로 알려지면서, 메모리 제조사들의 협상력이 내년에도 우위를 보일 것으로 예상된다. 사진은 삼성전자 HBM4. 삼성전자 제공
이상현 기자(ishsy@d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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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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