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만도 유료화에 합의했다" NYT 3일 보도
통행료서 '서비스 이용료'로 명칭 바꿔 우회
호르무즈 무너지면, '홍해 해협'도 통행료 우려
트럼프 "불쾌한 평화"… 현실 인정 신호인지 촉각
호르무즈 해협이 결국 '유료화' 수순에 들어갈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이란이 전쟁 내내 고수해온 '통행료 부과' 방침에 대해 해협을 공동으로 접한 오만까지 사실상 동의했다는 보도가 나왔다. 미국이 강력히 반대해온 '통행료' 대신 '서비스 이용료'(service fee)라는 우회적 명칭이 사용될 가능성이 제기되면서, 도널드 트럼프 미국 행정부가 이를 수용할지 여부에 국제사회의 관심이 쏠리고 있다.
뉴욕타임스(NYT)는 3일(현지시간) 복수의 이란 당국자를 인용해 이란과 오만이 호르무즈 해협의 새로운 통항 체계와 서비스 이용료 부과 방안에 대해 구체적인 합의에 근접했다고 보도했다.
보도에 따르면 해협 진입 선박은 이란이 관리하는 항로를 이용하고, 출항 선박은 오만 측 수역에 가까운 항로를 이용하는 방식이 유력하다. 환경 관리와 보안, 항로 운영 등을 명분으로 부과되는 서비스 이용료는 양국이 절반씩 나눠 갖는 방안이 논의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이번 논의는 통행료 징수 차원을 넘어 호르무즈 해협의 관리 권한 자체가 바뀌는 의미를 갖는다.
전쟁 이전에는 국제적으로 합의된 통항분리제도(TSS)에 따라 대부분의 선박이 오만 영해를 통과하며 자유롭게 운항했다.
그러나 이란은 전쟁 발발 후 해협 봉쇄를 사실상 현실화하면서 선박의 통항 허가권과 항로 통제권을 자신들이 행사해야 한다는 입장을 줄곧 유지해왔다.
실제로 지난 2월 말 개전 이후 이란은 호르무즈 해협 봉쇄를 협상 카드가 아닌 전략적 자산으로 활용해왔다.
미국은 항모전단과 공군력을 동원해 이란을 압박하며 해협 자유통항 원칙을 고수했고,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역시 "통행료는 절대 받아들일 수 없다"고 여러 차례 강조했다. 필요하다면 역봉쇄와 추가 군사행동도 불사하겠다는 강경한 입장을 유지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는 이란의 해협 통제가 미국의 군사적 압박보다 더 큰 영향력을 발휘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국제 해운사들이 우회 항로를 선택하거나 운항을 제한하면서 세계 원유와 액화천연가스(LNG) 수송에 차질이 발생했고, 에너지 시장도 지속적인 불안에 시달렸다. 이란 역시 상당한 군사적·경제적 비용을 감수했지만, 호르무즈 해협이라는 전략적 지렛대를 끝내 포기하지 않았다.
이 같은 상황에서 그동안 미국과 서방의 입장을 의식해 신중한 태도를 유지해온 오만이 서비스 이용료 방식에 동의했다면, 이는 중대한 반전이다.
형식적으로는 이란과 오만이 공동으로 해협을 관리하는 구조지만, 사실상 국제사회가 이란의 통제권을 일정 부분 인정하는 결과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주목되는 대목은 명칭 변화다. 미국이 강하게 반대해온 '통행료'(toll) 대신 '서비스 이용료'라는 표현을 사용하면 국제법적 논란과 정치적 부담을 상당 부분 줄일 수 있다는 계산이 깔려 있다.
실제로 이란도 최근에는 통행료 대신 서비스 수수료라는 표현을 사용하며 국제사회의 거부감을 낮추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의 최근 발언도 미묘한 해석을 낳고 있다. 그는 호르무즈 해협을 완전히 개방하기 위한 협상을 진행 중이라면서도, 불가피하게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상황도 있을 수 있다는 점을 시사했다. 이용료 부과가 이란과 오만이라는 연안국 간 협정 형태라면 미국이 직접 반대하기 쉽지 않은 상황에 놓일 수 있다는 분석이다. 미국 입장에서는 '당사자가 아닌 제3국'이라는 명분을 내세워 정치적 책임을 최소화할 여지도 생긴다.
다만 미국이 이를 그대로 받아들일지는 미지수다. NYT는 이 같은 합의가 발표될 경우 국제사회는 개방된 국제수역으로 여겨졌던 호르무즈 해협에 대해 사실상 이란의 통제권을 인정하는 대가를 치르게 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국제위기그룹(ICG)의 알리 바에즈 중동프로그램 부국장은 "트럼프 대통령에게는 이란에 해협 통제권을 넘기는 불쾌한 평화를 받아들이거나, 이길 수 없는 전쟁을 계속하는 선택지만 남을 수 있다"고 진단했다.
더 큰 우려는 이번 선례가 중동 다른 전략 해협으로 확산될 가능성이다. 호르무즈 해협의 서비스 이용료 체계가 용인될 경우, 예멘 후티 반군이 장악력을 행사하고 있는 바브엘만데브해협에서도 유사한 요구가 제기될 수 있다. 후티는 이미 홍해와 아덴만을 지나는 상선을 대상으로 반복적인 공격과 나포, 통항 통제를 시도하며 자신들의 영향력을 과시해왔다.
국제사회는 호르무즈 모델이 현실화될 경우 후티가 '항행 안전 보장'이나 '호위 서비스' 등을 명분으로 사실상의 통행료를 요구할 가능성을 우려하고 있다.
가능성은 낮지만 만약 세계 원유 수송의 핵심 통로인 호르무즈 해협에 이어 홍해 관문인 바브엘만데브해협까지 유료화가 확산된다면 국제 해상교통 질서는 근본적인 변화를 맞게 된다.
수십 년간 유지돼온 '국제 해협 자유통항' 원칙이 흔들리면서 해상 물류 비용은 물론 에너지 공급망과 글로벌 무역에도 장기적인 충격이 불가피할 것이라는 전망이다. 이번 이란·오만 협의는 국제 해양 질서의 새로운 시험대가 되고 있다.
이규화 대기자 david@d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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