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현석 서울시 서울의료원장

마약의 역사는 인류 문명만큼이나 길다. 양귀비에서 추출한 아편은 수천 년 전부터 고통을 달래는 치료제로 쓰였지만, 19세기 영국이 청나라에 아편을 밀수출하면서 그 심각성이 전세계에 알려졌다. 아편에 잠식된 청나라는 서서히 몰락하여 동아시아의 맹주 자리를 내놓게 된다. 당시에는 유럽과 미국에서는 아편 성분이 든 시럽이 어린이용 안정제로 약국에서 팔릴 만큼, 마약은 오랫동안 ‘약의 얼굴’을 하고 일상에 침투해왔다.

우리가 ‘히로뽕’이라 부르는 메스암페타민도 마찬가지다. 1893년 감기약을 연구하던 중 우연히 합성되었으며 1941년 ‘노동을 사랑한다’는 뜻의 그리스어에서 이름을 딴 ‘필로폰’이란 이름으로 시판됐다. 당시 이 약은 군인과 노동자의 피로를 없애주고 머리를 맑게 하는 마법의 약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심한 환각 증상과 중독성이 있는 것이 밝혀지면서 금지 약품이 됐다. 히로뽕은 필로폰의 일본식 발음이다.

오늘날의 마약은 그 어느 때보다 저렴하고 치명적이다. 그 중심에는 펜타닐이 있다. 약효가 모르핀의 50배에서 100배에 달하는 합성마약으로 원래는 말기 암 환자와 극심한 통증으로 고통받는 환자에게 진통제로 처방됐다. 그러나 불법으로 유통되면서 심한 중독성과 금단 증상으로 인해 사회적 큰 재앙이 됐다. 현재 미국에서는 매년 마약 과다복용으로 10만명씩 사망하며, 그중 70%가 펜타닐 때문인 것으로 알려졌다. 19세기 중국이 아편으로 무너졌듯 21세기 미국은 펜타닐로 무너질 수 있다는 우려가 부각되면서, 미국과 펜타닐 원료를 대량 생산하는 중국 사이의 분쟁 원인이 되고 있다.

신종 합성 마약의 등장은 사태를 더욱 악화시키고 있다. 유럽연합(EU) 마약감시센터는 ‘니타젠’이라는 신종 합성 마약이 펜타닐의 최대 40배, 모르핀의 최대 1000배 강력할 수 있다고 경고하며, 2024년 한 해에만 7가지 신규 변종이 발견됐다고 밝혔다.

현재 마약은 소규모 실험실에서도 제조가 가능하고, 다양한 방법으로 위장해 유통되면서 단속은 갈수록 어려워지고 있다. 이에 따라 지속적으로 확산되고 있다. 국내도 예외가 아니어서, 2022년에는 서울시 모든 하수구에서 마약 성분이 검출된 바 있다.

마약이 무서운 본질적인 이유는 뇌의 보상 체계를 파괴하기 때문이다. 마약은 도파민을 자연 상태의 수십, 수백 배로 강제 분비시킨다. 또 인체의 정상적인 호르몬으로 모르핀과 같은 역할을 하는 엔도르핀의 분비를 원천 차단한다. 따라서 약효가 끊기면 극심한 통증의 금단 증상이 찾아온다. 그러면 뇌는 일상의 어떤 자극에서도 기쁨을 느끼지 못하고 오직 약물만을 갈구하게 된다. 결국 중독자는 약값을 위해 범죄에 가담하고, 가족이 해체되면서 공동체 전체가 무너진다.

중독 치료 역시 쉽지 않다. 현재 마약 중독 치료는 크게 약물 치료와 심리, 행동 치료의 병행으로 이루어진다. 아편류 중독의 경우 메사돈이나 부프레노르핀 같은 대체 약물로 금단 증상을 완화하면서 서서히 의존성을 줄여가는 방식이 쓰이며, 인지행동치료(CBT)를 통해 약물을 갈구하게 만드는 심리적 패턴을 교정하는 과정이 병행된다. 그러나 재발률이 높고 장기적 관리가 필요하다는 점에서, 중독을 ‘의지력의 문제’가 아닌 ‘뇌 질환’으로 접근해야 한다는 인식의 전환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한편, 마약 사용에 대한 의학계의 근본적 대안도 등장하고 있다. 2025년 1월 미국 식품의약국(FDA)은 ‘수제트리진’를 중증의 급성 통증 치료제로 승인했다. 이 약은 말초 감각신경에서 통증 신호가 중추신경계에 전달되기 전에 작용하여 통증을 억제한다. 따라서 마약이 뇌에서 작용하는 것과는 완전히 다른 방식이므로 중독 가능성이 없으면서도 강력한 진통 효과를 갖는다. 병원에서 처방되는 마약을 획기적으로 줄일 수 있는 약으로 기대되고 있다.

마약의 위험성은 널리 알려졌지만 사용량은 오히려 늘고 있다. 특히 마약 사용이 불법이어서 중독자임을 신고하지 않은 상태에서 합법적으로 치료를 받기도 힘든 상황이다. 또 마약 치료를 전문으로 하는 의사나 시설이 부족한 것도 문제로 지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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