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영서 논설위원
인공지능(AI) 혁명의 최대 변수는 기술이 아니라 국가다. AI 대기업은 천문학적 투자에 따른 부담을 정부와 나누려 하고, 정부는 AI를 국가 안보의 핵심 자산으로 육성하는 동시에 그 과실을 국민과 공유하려 한다. 양측의 이해 관계가 맞아떨어져 기술과 권력이 결합하는 순간, 시장은 시험대에 오을 것이다. 우리는 자유시장경제가 아니라 'AI 국가사회주의'라는 새로운 체제를 마주할지도 모른다.
놀라운 것은 이런 논의가 미국에서 시작됐다는 점이다. '민주사회주의자' 버니 샌더스(무소속) 상원의원은 AI 대기업들이 총지분의 50%를 일회성 세금으로 정부에 넘겨 공공이 AI 산업의 공동 소유자가 되어야 한다는 법안을 추진하고 있다. AI가 창출하는 막대한 부를 소수의 빅테크가 독점해서는 안 되며, 국민 모두가 그 혜택을 나눠 가져야 한다는 논리다.
눈여겨볼 대목은 이런 발상이 진보 진영만의 전유물이 아니라는 점이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6월 초 AI 대기업 지분 일부를 미국 시민에게 배분하는 방안을 거론했다. 핵심은 정부가 AI 대기업의 주주가 되는 데 있다. 정부 보유 지분에서 나오는 배당금을 국민에게 나눠주겠다는 것이다. 정부가 지분을 확보할 수 있는 방법은 다양하다. AI 산업에 대한 국가보조금이나 각종 지원의 대가로 지분 출연을 요구할 수 있고, 규제 완화나 인허가를 조건으로 지분을 확보하는 방식도 가능하다. 기업의 자발적 기부 형식을 취할 수도 있을 것이다.
앞서 오픈AI도 지난 4월 정책 제안서를 통해 AI 빅테크의 지분을 바탕으로 한 '공공 부(富) 펀드'를 만들어 AI가 창출한 부를 모든 시민과 공유하자고 제안했다. 샘 올트먼 CEO는 이 구상을 백악관과 의회를 찾아가 직접 설명한 것으로 알려졌다.
좌파의 재분배론과 실리콘밸리의 현실론, 그리고 트럼프식 국가 주도 AI 전략이 한 지점에서 만난 것이다. 이는 국가사회주의의 새로운 버전이다. 과거와 다른 것은 통제의 대상과 방식이다. 20세기 국가사회주의가 토지와 공장, 은행을 국유화했다면 AI 시대의 국가사회주의는 데이터, 알고리즘, 컴퓨팅 인프라를 국가가 사실상 지배하는 형태가 될 수 있다. 공장 굴뚝이 상징하던 생산수단이 그래픽처리장치(GPU)와 데이터센터로 바뀌는 것이다.
왜 이런 구상이 나온 것일까. AI가 초래할 부의 집중과 대량 실업 가능성 때문이다. AI의 과실이 소수에게 돌아가고, 실업의 고통은 다수가 떠안게 된다면 사회적 저항은 커질 수밖에 없다. 공공 부 펀드, 기업 지분 공유론 등은 이러한 충격을 완화하기 위해 등장한 새로운 재분배 모델이다.
문제는 심판과 선수의 경계가 허물어질 때다. 정부가 AI 대기업의 투자자가 되는 순간 국가는 심판이면서 동시에 선수가 된다. 데이터센터 인허가, AI 모델의 안전성 심사, 독점 규제까지 모두 정부가 쥐고 있는데, 동시에 특정 기업의 주주까지 된다면 이해 충돌은 피할 수 없다. 정부는 공정한 규제 기관이 아니라 이해 당사자가 되고, 이렇게 되면 시장은 경쟁보다 정치적 판단에 민감하게 반응하기 시작한다. 특정 기업은 '국가가 뒷받침하는 기업'이라는 인식을 얻게 되고, 자본은 기술력보다 정책 방향을 먼저 살피게 된다. 중국은 이미 그 길을 걷고 있다.
역사는 정부와 기업이 지나치게 밀착했을 때 어떤 결과가 나타났는지를 수없이 보여줬다. 관치금융은 자본의 효율적 배분을 왜곡했고, 국영기업은 혁신보다 정치적 목표를 우선시했다. 경쟁은 약해졌고 책임은 불분명해졌다. AI 산업도 예외일 수 없다.
기술보다 더 중요한 것은 그것을 둘러싼 제도의 설계다. 소수의 기업이 AI를 독점하는 것도 문제지만, 국가가 AI를 소유하는 것은 더 위험하다. AI 국가사회주의는 데이터를 국가가 통제하고 알고리즘을 권력화하는 체제일 수 있다.
우리가 경계해야 할 것은 AI 자체가 아니다. AI를 명분으로 자유시장과 민주주의의 원칙이 후퇴하는 일이다. 기술은 언제든 다시 개발할 수 있지만, 자유로운 시장과 권력을 견제하는 제도는 한 번 무너지면 되돌리기 어렵다. AI 시대일수록 우리가 붙들어야 할 '오래된 원칙'이 있다. '정부는 시장을 돕되 시장을 대신해서는 안 된다'는 원칙, 이는 흔들려서는 안 된다. AI 혁명의 성패는 이것에 달렸다.
박영서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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