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병희 한국한의학연구원 한의정책팀장
우리나라는 이미 초고령사회에 진입했다. 기대수명이 늘어나면서 단순히 오래 사는 것이 아니라 건강하게 오래 사는 것이 중요한 사회적 과제가 되고 있다. 만성질환 관리, 건강수명 연장, 노인성 질환 예방은 개인의 문제를 넘어 국가적 과제로 떠오르고 있다.
동시에 우리는 인공지능(AI) 전환의 시대를 맞고 있다. 정부도 AI 데이터 기반 혁신을 국가 경쟁력을 좌우할 핵심 과제로 보고 의료·바이오 분야의 AI 활용을 적극 추진하고 있다. 이제 의료는 질병 치료 중심에서 예방과 예측, 맞춤형 건강관리 중심으로 빠르게 변화하고 있다. 한의약 역시 이러한 변화 속에서 새로운 역할을 모색해야 하는 시점이다.
그러나 기술의 발전만으로 혁신이 완성되지 않는다. 그동안 한의정책 연구와 AI 헬스케어 수용성 연구를 수행하면서 반복적으로 확인한 사실이 있다. 아무리 우수한 기술이라도 국민이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거나 신뢰하지 않으면 현장에서 활용되기 어렵다는 점이다. 실제로 연구 결과, AI 헬스케어 수용에는 건강 상태, 의료이용 경험, 기술에 대한 기대·신뢰가 복합적으로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나타났다.
결국 AI 헬스케어의 성공 여부는 기술의 수준이 아니라 국민의 수용과 신뢰에 달려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러한 관점은 초고령사회에서 더욱 중요하다. 앞으로의 헬스케어는 질병이 발생한 이후 치료하는 체계에서 벗어나 건강 위험을 조기에 관리하고 건강한 노화를 지원하는 방향으로 발전할 것이다. 개인의 건강 상태를 지속적으로 모니터링하고 생활습관 개선을 지원하며 맞춤형 건강관리를 제공하는 서비스의 중요성도 더욱 커질 것으로 예상된다.
한의약은 예방과 건강관리, 개인별 특성을 고려한 접근이라는 강점을 가지고 있다. 여기에 AI와 데이터 기술이 결합한다면 초고령사회가 직면한 다양한 건강 문제에 새로운 해결 방안을 제시할 수 있을 것이다.
특히 건강한 노화와 삶의 질 향상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는 상황에서, 개인 맞춤형 건강관리와 예방 중심 서비스에 대한 사회적 수요는 더욱 확대될 것으로 보인다. 다만 이러한 가능성이 실질적인 성과로 이어지기 위해서는 기술 개발 못지않게 국민이 무엇을 필요로 하고 무엇을 신뢰하는지에 대한 이해가 선행되어야 한다.
최근 관계부처 합동 ‘제5차 한의약육성발전종합계획’ 역시 AI와 디지털 전환을 한의약의 중요한 미래 과제로 제시하고 있다. 그러나 디지털 전환은 정책 목표만으로 이루어지지 않는다. 국가 차원의 AI 혁신 전략과 현장의 수요가 연결되고, 기술의 가능성과 국민의 신뢰가 만날 때 비로소 의미 있는 변화가 만들어질 수 있다.
과학기술의 역할도 같은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AI와 데이터는 미래 의료의 핵심 인프라가 되고 있지만, 궁극적으로 기술은 국민 건강이라는 목표를 위해 존재한다. 따라서 연구개발(R&D)의 방향 역시 무엇을 만들 것인가에 앞서 국민이 어떤 기술을 필요로 하는지, 어떤 서비스를 신뢰하는지, 어떤 방식으로 활용하기를 원하는지에 대한 이해에서 출발해야 한다.
이제 연구개발도 기술 공급 중심에서 벗어나 국민의 사회적 수용성을 함께 고려해야 한다. 개발 전 과정에서 사용 경험과 보급 가능성을 반영할 때, 정책의 최종 수혜자인 국민이 실제로 이용하는 기술로 이어질 수 있다.
미래 한의 헬스케어의 경쟁력은 얼마나 정교한 AI를 개발했는가에만 있지 않다. 국민 건강 문제 해결에 실제로 기여할 수 있는 기술을 만들 수 있는가에 달려 있다. AI와 데이터가 의료의 미래를 바꾸는 시대일수록 더욱 중요한 것은 사람이다. 초고령화·AI 시대, 차세대 한의 헬스케어의 출발점은 AI가 아니다. 기술도 아니다. 바로 국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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