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9년 충북 오창에 4세대 다목적방사광가속기 구축 목표
반도체·이차전지·바이오 등 연구자·산업계 혁신 뒷받침
기초과학서 산업체 비중 확대… 차세대반도체 등 활용 기대
지난달 27일 충북 서오창 IC를 빠져 나와 20분 가량 도심 외곽으로 더 들어가자 야트막한 언덕 너머로 드넓은 부지가 모습을 드러냈다.
이 곳은 충북 청주 오창테크노폴리스로, '거대한 고성능 현미경이자 대형 빛 공장' 역할을 담당할 4세대 방사광가속기가 들어서게 된다.
부지 면적은 축구장 75개(54만㎡)와 맞먹는 규모로, 부지 조성이 끝나고 이 달부터 터파기 등 기초 공사에 들어간다.
이날 착공식을 한 4세대 다목적 방사광가속기인 '한국새빛가속기'는 오는 2029년 말 구축을 목표로 총 1조1643억원이 투입되는 대규모 국가 프로젝트로 추진된다.
◇100배 밝은 '거대한 현미경' 건설, 닻 올라
한국새빛가속기 구축사업은 산업 연구개발(R&D) 지원과 선도적 기초·원천연구 지원을 위한 세계 최고 수준의 다목적 방사광가속기를 구축하기 위한 것으로, 과학기술정보통신부, 한국기초과학연구지원연구원, 포항가속기연구소 등이 참여한다.
한국새빛가속기는 3세대 포항 방사광가속기보다 100배 높은 성능과 넓은 에너지 영역을 제공한다. 이전보다 더 밝은 빛을 만들어 다양한 시료를 실시간으로 자세하게 관찰할 수 있다. 실험 시간도 대폭 단축시킬 수 있다.
둘레 800m의 원형 가속기로 지어지는 새빛가속기는 빔에너지가 4기가전자볼트(Gev)로, 초기 10기의 빔라인으로 운영될 예정이다.
기존 3세대 방사광가속기가 주로 기초연구에 활용됐다면 4세대 방사광가속기는 높은 사양과 다양한 실시간 실험 환경에 적용할 수 있어 산업적 활용도가 높다. 새빛가속기는 초기 10기 빔라인 중 3기는 산업체 지원에, 나머지 7기는 기초원천연구에 활용한다. 최종적으로는 40기의 빔라인으로 확충해 나갈 계획이다.
◇왜 방사광가속기인가?… 반도체 등 첨단산업 활용 증가
가속기는 전기장과 자기장을 이용해 양성자, 전자, 이온 등의 입자를 빛의 속도에 가깝게 가속시키는 대형 연구시설이다.
원자 내부 구조와 특성 등을 규명하는 선도적 기초과학 연구의 핵심 연구시설로 널리 활용돼 과학분야 노벨상 수상자 중 약 20%가 가속기를 활용한 연구였다.
최근에는 가속기 활용범위가 기초과학 분야를 넘어 바이오, 반도체, 이차전지 등 첨단산업으로 확대되고 있다. 이 때문에 미국과 중국 등 주요국들은 가속기에 대한 대규모 투자와 활용 혁신을 통해 미래 과학기술을 선도하기 위한 치열한 경쟁을 벌이고 있다.
가속기는 가속입자 종류에 따라 전자(방사광) 가속기, 양성자 가속기, 중이온(중입자) 가속기 등으로 나뉜다.
이 중 방사광가속기는 빛의 속도로 가속한 전자의 방향이 휠때 발생하는 밝은 빛(방사광)으로 물질의 미세구조를 원자·분자 수준으로 분석할 수 있다.
방사광 특징과 발생장치 발전에 따라 1∼4세대로 분류하며, 최근 세계적으로 4세대 원형 방사광가속기 확보를 위한 프로젝트가 활발히 진행되고 있다.
현재 우리나라는 5기의 대형 가속기를 구축·운영하고 있으며, 다양한 기초연구성과 창출과 소재·부품 등 첨단 산업 경쟁력 강화에 기여하고 있다.
◇가성비 높은 세계 최고 수준의 가속기 구축 목표
새빛가속기가 2029년 구축되면 세계에서 세 번째로 밝은 빛을 제공한다. 새빛가속기구축사업단은 성능이 가장 뛰어나면서 이용자가 원하는 최적화된 서비스를 제공하는 '가성비 높은 방사광가속기'로 건설할 계획이다.
이를 위해 국내 기업과 함께 핵심 부품을 자체 개발해 전체의 80%를 국산화해 가속기 산업 경쟁력을 강화하겠다는 구상이다. 현재 가속장치 설계를 마치고 부품 제작에 착수했고, 2029년까지 테스트와 조립을 거쳐 설치할 예정이다.
이후 2030년 시범 운전을 거쳐 2031년 이용자를 대상으로 빔 서비스를 제공할 예정이다.
새빛가속기 구축이 완료되면 국내 산학연 연구자들에게 세계적 수준의 연구환경을 제공해 기초과학 연구뿐 아니라 첨단 산업 분야의 R&D 경쟁력 강화에 핵심적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된다.
신승환 한국새빛가속기구축사업단장은 "새빛가속기는 반도체, 바이오, 신약, 이차전지, 첨단소재 등 국가 전략기술 분야의 혁신을 가속화하는 대한민국 대표 연구시설로 자리매김할 것"이라며 "향후 10∼20년간 세계에서 4번째로 우수한 성능을 유지할 것으로 예상한다"고 말했다.
◇'4세대 가속기' 성능 고도화 경쟁… 산업계 지원 강화
미국과 독일, 스웨덴, 일본 등에서 가동되고 있는 3세대 방사광가속기는 성능 개선을 통해 4세대 가속기로 빠르게 진화하는 중이다.
3세대 방사광가속기의 제한된 성능을 극복해 연구자에게 보다 질 높은 빔라인을 제공하고, 산업계 지원을 강화하는 전략으로 4세대 가속기 고도화 프로젝트를 추진하고 있는 것이다.
세계 최초 4세대 방사광가속기인 스웨덴 룬드대의 MAX-IV는 업그레이드를 진행하고 있으며, 미국의 'APS-U', 독일의 'PETRA', 일본의 'SPring-8' 등도 대규모 투자를 통해 4세대 가속기로 성능 향상을 추진하고 있다.
여기에 다양한 빔라인 구축을 통한 맞춤형 연구자 실험 환경 제공과 연구 효율성 향상 및 산업 응용 강화 등에도 주력하고 있다.
미국의 MAX-IV는 기업이 독자적으로 사용할 수 있는 빔라인을 제공함과 동시에 생산되는 실험·연구 데이터를 산업체가 빠르게 활용할 수 있도록 산업에 특화된 4세대 방사광가속기로 변모하고 있다. 일본 역시 산업 전용 빔라인 구축을 통해 산업계에 맞춤형 지원을 강화하고 있다.
가속기 성능 고도화와 함께 신규 빔라인 추가, 데이터 처리 및 분석 시스템 성능 향상 등 산업·연구를 위한 이용자 중심 지원 체계로 서비스 혁신에도 나서고 있다. 새빛가속기구축사업단도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등 국내 반도체 기업과 협력해 산업체 지원을 강화하겠다는 방침이다. 신 단장은 "고대역폭메모리(HBM) 등 차세대 반도체 소자 개발 과정에서 새빛가속기와 시너지를 낼 수 있기에 국내 반도체 생태계를 분석해 협력 분야를 발굴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검증된 기술로 차질 없는 구축… 빠른 성과 창출로 경쟁력 확보
당초 새빛가속기는 2027년 구축될 예정이었지만 건설사 선정이 늦어지면서 당초보다 2년 가량 일정이 늦어졌다.
대규모 건설과 기술 난이도가 있는 가속장치를 개발·설치하는 대형 연구시설 구축 사업 특성상 새빛가속기가 계획대로 2029년 말까지 구축할 수 있을지에 대한 우려도 없지 않다.
김재영 포항가속기연구소장은 "포항 방사광가속기 구축 경험과 검증된 기술을 새빛가속기에 적용하기 때문에 개발 과정에서 발생할 시행착오를 줄일 수 있어 구축 일정이 늦어지지는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새빛가속기구축사업단은 가속기 개발 관련 우수한 인력을 유치하는 등 점진적으로 인력을 늘리고, 구축 과정에서 사고가 발생하지 않도록 사전에 안전관리를 철저히 해 일정에 차질이 없도록 할 방침이다.
전 세계적으로 13기의 4세대 원형 방사광가속기가 운영되거나 건설 중에 있다.
아울러 향후 8기가 추가 건설될 정도로 4세대 방사광가속기 구축과 이를 둘러싼 주도권 확보 경쟁이 치열해지는 상황이다. 새빛가속기가 본격 가동되는 시점이 2030년 이후라는 점에서 다른 나라에 주도권을 빼앗길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신 승환 단장은 "외국은 사전 R&D를 거쳐 가속기를 구축하지만 우리는 사업 시작과 설계를 함께 시작해 건설하고 있어 구축 속도로는 더 빠르다"면서 "가속기는 구축 이후 의미 있는 실험과 연구를 통해 성과를 빠르게 내느냐가 관건이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대만 TSMC가 방사광가속기를 활용해 고대역폭메모리(HBM ) 등 차세대 반도체 소자를 연구하는 것처럼 국내 반도체와 소부장 기업들의 연구 수요를 파악해 반도체, 이차전지, 바이오 등에서 글로벌 경쟁력을 가질 수 있도록 지금부터 준비하겠다"고 말했다.
남미 순방 중인 이 대통령은 엑스(X·옛 트위터)를 통해 "대한민국 과학기술과 첨단산업의 미래를 이끌 한국새빛가속기가 27일 힘차게 첫 삽을 떴다"며 "세계 최고 수준의 인프라로 자리 잡을 한국새빛가속기를 기반으로 충북 청주는 지방주도성장을 선도할 새로운 거점으로 우뚝 설 것"이라고 강조했다.
한편 한국새빛가속기 구축사업은 기초지원연이 주관하며, 포항공대 포항가속기연구소가 공동연구 개발기관으로 참여한다.
이준기 기자 bongchu@d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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