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선거관리위원회가 헌법상 고유 권한인 투표사무를 행정부에 넘기는 방안을 외부에 의뢰한 것으로 알려졌다. 또한 선관위 노조의 내부 설문 조사에서 직원의 88.5%가 투·개표 등 현장 선거 실무를 행정정부치단로 넘기는 방안에 찬성했다고 한다. 참으로 기가 차고 귀를 의심케 하는 행태다. 선거 관리라는 기관의 존재 목적이자 헌법이 부여한 고유 책무를 ‘귀찮고 고되다’는 이유로 정부 부처에 떠넘기겠다니, 이럴 거면 선관위라는 조직이 왜 존재하는지 묻지 않을 수 없다. 이참에 간판을 내리는 것이 국민 세금을 아끼는 길이다.
선관위가 ‘선거사무 집행권’을 행안부에 넘기겠다는 것은 민주주의의 근간인 선거의 중립성을 스스로 포기하겠다는 얘기나 다름없다. 인사권과 예산권을 쥔 대통령의 지휘를 받는 행정기관이 투·개표를 도맡게 되면, 선거가 끝날 때마다 ‘관권 선거’ 시비와 부정선거 음모론이 판을 칠 것은 불 보듯 뻔한 일이다. 선관위 공무원들도 이를 모를 리 없다. 그럼에도 이런 황당한 주장을 펴는 것은 조직 이기주의와 무책임의 소치다.
그동안 선관위는 온갖 비리와 부실 관리로 국민적 공분을 사왔다. 고위직 자녀 특혜 채용이라는 ‘고용 세습’ 비리가 드러나고, 북한의 해킹 공격을 받고도 보안 점검조차 거부했다. 선거가 있는 해면 휴직을 신청하는 직원들도 부지기수였다. ‘소쿠리 투표’에 국민들의 참정권 행사를 가로막은 사상 초유의 투표지 부족 사태, 투표율 조작 등 국민들의 말문을 막히게 하는 행태가 꼬리에 꼬리를 물고 있다. 6·3 지방선거 과정에서 경기도 내 투표소의 ‘투표 통계 조작’ 정황이 포착된 가운데 전남 목포·광양, 경북 포항 , 강원 인제 등에서도 길게는 6시간 가까이 투표자 수가 ‘0명’으로 기재돼 있던 사실이 2일 확인됐다. 국민의힘 주진우 의원이 중앙선관위로부터 제출받은 ‘시간대별 투표자 수/투표율’ 자료를 분석한 결과, 최종 투표자수가 100명이 넘었던 투표소 가운데 투표 당일 3시간 이상 시간대별 투표자 수에 변동이 없는 곳은 모두 34곳이었다.
이렇게 엉망으로 선거 사무를 관리해놓고 이제 와서 힘들고 책임이 따르는 현장 실무만 정부 부처나 지자체 공무원들에게 떠넘기겠다는 꼼수를 부리고 있다. 특혜는 챙기고, 책임은 남에게 미루겠다는 ‘도덕적 해이’의 극치다. 헌법 제114조가 선관위를 독립기관으로 규정한 이유는 오직 하나, 정권의 눈치를 보지 말고 공정하게 선거를 관리하라는 것이다. 고유 업무를 넘기는 건 위헌이다. 야당은 “이러니 ‘구제불능’ 소리를 듣는 것”이라고 했다. 권력과 수당, 헌법상 독립기관으로서 특혜는 다 누리면서 의무는 저버리겠다는 조직은 공직사회의 해악일 뿐이다. 헌법적 책무와 존재 가치를 감당할 의지가 없다면, 차라리 문을 닫는 게 국민에 대한 최소한의 도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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