챗GPT가 그린 일러스트.
챗GPT가 그린 일러스트.

플랫폼 기술 경쟁력이 K-바이오의 글로벌 진출 부스터(촉매제)로 부상하고 있다. 신약 한 개를 개발하는 것에서, 여러 신약에 적용할 수 있는 플랫폼(기반 기술)을 개발하는 것으로 전세계 바이오의약품 기술 개발의 중심축이 이동하고 있다.

◇스마트폰의 운영체제(OS) 격… 유수 제약사와의 협력 통로= 바이오 플랫폼 기술은 다양한 앱을 실행하는 기반이 되는 스마트폰의 운영체제(OS) 격인 기술로, 신약 개발에 활용할 수 있는 ‘토대 기술’이라고 할 수 있다. 기존 의약품이나 신규 타깃을 적용해 다수의 신약 후보물질을 도출할 수 있다는 게 특징이다.

여러 질환에 적용 가능한 공통의 기반 기술로, 하나의 ‘기술’이나 ‘시스템’을 개발해 다양한 신약 후보 물질을 효율적으로 찾아낼 수 있도록 하는 방식이다.

특히 임상진행, 상업화 등을 통해 신약가치를 입증하면 적용 가능한 질환이 늘어나 파이프라인을 확장하기 용이해지고 추가 기술이전이 이뤄질 가능성도 높아진다는 강점이 있다.

한 번 기술력을 인정받으면 기술 라이선싱을 통해 여러 제약사와 다양한 파트너십을 구축할 수 있어 성장성이 크다. 기술이 성공하면 여러 약물이 한꺼번에 개발될 수 있다는 장점 때문에 투자자들에게 기술 자체로 주목받을 수 있다. 국내외 기업들이 개별 파이프라인보다는 플랫폼 기술을 확보하려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플랫폼 기술 개발의 매력은 이처럼 크지만 쉬운 길은 아니다. 바이오 플랫폼 기술이 성공하려면 무엇보다 기술의 타당성을 입증해 보여야 하는데 여기엔 긴 시간이 소요된다.

또 지속가능한 경쟁력을 갖기 위해선 단순히 플랫폼 기술을 보유하는 데 그치지 않고, 글로벌 시장에서 미충족 의료 수요가 높은 유망 분야를 타깃으로 하는 플랫폼 기술을 확보해야 한다. 시장수요에 대한 면밀한 예측과 이를 기반으로 한 기술개발 전략이 필요하다는 얘기다.

◇‘돈 되는’ 글로벌 신약 플랫폼 속속 등장= 해외에선 신약 플랫폼 기술 개발이 실제 매출로 이어지는 사례가 속속 나오고 있다. 플랫폼 기술 자체를 통해 다양한 파이프라인을 만들거나, 제휴·라이선스 계약으로 수익을 내고 있다.

코로나19 팬데믹 당시 이름을 알린 모더나의 경우, 코로나19 백신으로 플랫폼의 가능성을 증명해 약 27조원의 매출을 올렸다.

모더나의 메신저 리보핵산(mRNA) 기술 플랫폼은 컴퓨터의 운영 체제와 유사하게 설계돼 있다. 다른 프로그램(mRNA 약물)과 쉽게 연결해 사용할 수 있는 ‘플러그 앤 플레이’ 방식이어서 제조 유연성과 개발 속도가 빠르다. 현재 mRNA 플랫폼을 활용해 감염병, 희귀질환, 종약학, 심혈관질환 등 다양한 파이프라인으로 확장 중이다.

글루카곤 유사 펩타이드-1(GLP-1) 계열 비만 치료제 ‘위고비’로 잘 알려진 노보노디스크는 플랫폼 자체를 외부에 제공하지 않고 내부에서 독점적으로 활용하고 있다. ‘오젬픽’과 위고비 등 대사질환 치료제 개발에 사용되는 GLP-1 작용제 플랫폼, 경구 제형화 플랫폼 등이 대표적이다. 이 기업은 다시어나 파마슈티컬스, 인버사고 파마, 카디오르 파마슈티컬스 등을 인수하며 RNA 간섭(RNAi)·유전자 기반 기술로 플랫폼 기술 개발을 확장하고 있다.

플랫폼 기술을 제3자(빅파마 등)에 라이선스 형태로 제공하는 ‘라이선스 아웃’도 활발하다. 인공지능(AI)을 활용해 항체 치료제 개발을 가속화하는 기술을 보유한 앱셀레라가 대표적이다.

첨단 항체 발굴 플랫폼으로 대형 제약사·바이오텍과의 파트너십 계약 체결이 이 기업의 핵심 비즈니스 모델이다. 일라이 릴리, 모더나, 노바티스, 길리어드, 화이자, GSK 등이 협업 파트너로 참여하고 있다. 일라이 릴리와는 다년간 다중 표적 발굴 협약을 맺어 여러 비코로나 표적 항체를 공동개발 중이며, 선급금과 연구개발 지원금을 받고 향후 성과에 따른 마일스톤·로열티 권리를 갖는다.

‘리마스터’(REMaster) 플랫폼을 개발하는 리믹스 테라퓨틱스도 있다. 이 약물 발굴 플랫폼은 RNA 처리 패턴 식별을 용이하게 하고 이런 학습을 활용해 유전자 발현을 조절한다.

RNA 처리 조절 소분자 치료제의 발견·개발을 위해 로슈와 협력을 체결했으며, 계약 조건에 따라 리믹스는 3000만달러의 선불금을 받게 된다. 또 단기 마일스톤 지불금으로 최대 1200만달러, 전임상과 상업·판매 마일스톤에서 최대 10억달러의 마일스톤과 단계별 로열티를 받을 수 있다.

◇국내서도 ‘플랫폼 기술’ 경쟁 본격화… 알테오젠·에이비엘바이오·오스코텍= 국내 제약·바이오 기업들도 핵심 플랫폼 기술을 글로벌 제약사나 다른 기업에 이전함으로써 기술료 수익과 협업 기회를 속속 창출하고 있다. 플랫폼 기술 경쟁력을 인정 받은 국내 바이오 기업들을 향한 글로벌 제약사들의 협력·투자 ‘러브콜’이 이어지고 있다.

이들 기업들은 글로벌 제약사들이 원하는 핵심 기술을 제공하며 기술이전 수준을 넘어 공동 연구, 지분 투자, 상업화까지 협력 범위를 확장해 나가고 있다.

알테오젠은 독자 플랫폼 ‘하이브로자임’으로 사노피, MSD, 아스트라제네카, GSK, 바이오젠 등 글로벌 제약사와 잇따라 계약을 체결하고 있다. 현재까지 글로벌 제약사 8곳과 하이브로자임 기술로 라이선스 계약을 맺었다.

최근 바이오젠과 맺은 독점 라이선스 계약은 약 6억달러에 육박하며, 이에 앞서 체결된 테사로(GSK의 자회사)와의 기술수출 계약은 2억8500만달러짜리다. 알테오젠 기술이 적용된 MSD의 면역항암제 ‘키트루다 SC’가 미국 시장에서 판매되기 시작했다.

핵심은 하이브로자임 플랫폼의 약물전달 기술인 ‘ALT-B4’다. 정맥주사(IV) 의약품을 환자가 보다 쉽고 빠르게 맞을 수 있는 피하주사(SC) 형태로 바꾸는 기술이다.

기존 블록버스터 의약품의 환자 편의성을 높이려는 글로벌 제약사들을 중심으로 수요가 이어지고 있다.

에이비엘바이오는 이중항체 플랫폼 ‘그랩바디’로 기술이전·공동 연구개발 계약 체결 성과를 이룬 데 이어 지분 투자까지 유치했다. 단순한 기술 공급 기업을 넘어 글로벌 신약의 공동 개발 파트너로 자리매김하게 된 것이다.

에이비엘바이오는 약 4조원짜리 기술이전 계약을 맺은 일라이 릴리로부터 전략적 지분 투자를 받았다. 투자 규모는 220억원으로, 회사로서는 플랫폼 고도화와 차세대 신약 연구개발에 투입할 자금을 확보하게 됐다.

에이비엘바이오는 GSK와도 뇌혈관장벽 셔틀 플랫폼 ‘그랩바디-B’ 기술이전 계약을 맺었다. 에이비엘바이오는 계약금과 단기 마일스톤을 포함해 최대 1480억원을 받을 수 있다. 향후 개발과 상업화에 성공하면 최대 4조원에 가까운 추가 기술료와 판매 로열티도 받게 된다.

오스코텍도 최근 ‘기반기술팀’을 신설하며 플랫폼 기술 경쟁에 가세했다. 개발 방향은 항암제 내성 극복으로 잡았다. 다양한 항암제와 함께 쓸 수 있는 병용 치료 플랫폼으로 세계 시장 공략에 나선다. 신설 조직은 AI를 활용한 단일세포 수준의 이미지 분석을 통해 항내성 타깃을 찾아내는 고속 ·고내용 검색(HTS/HCS) 시스템을 확립할 예정이다.

김수연 기자 newsnews@d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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