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천호 국민의힘 의원(경남 사천·남해·하동)
수산업협동조합법 개정안
바다에 나가 물고기를 잡고 넉넉한 날이면 이웃과 나누며, 마을의 크고 작은 일을 앞장서 챙기는 사람들이 있다. 바로 어촌계장들이다. 이들은 단순히 어촌계의 대표자가 아니다. 어민과 행정을 잇는 가교이자 어촌 공동체를 지키는 현장의 책임자다. 어촌계장은 정부와 지방자치단체의 수산정책을 주민에게 전달하고 수산 관련 행정 협조, 재해 발생 시 피해 조사와 복구 지원과 어민 민원 해결 등 다양한 공적 업무를 수행한다.
농촌 마을에서 이장과 통장이 지역 행정의 실질적인 말단 조직으로 기능하듯 어촌에서는 어촌계장이 그 역할을 맡고 있다. 그러나 이·통장은 관련 법령과 조례 등을 통해 일정한 지위와 수당 지급 근거가 마련돼 있지만, 어촌계장은 그 책임에 비해 법적 지위와 지원은 충분하지 못했다.
그동안 어촌계장의 지위와 업무는 법률이 아닌 해양수산부 고시에 주로 의존했다. 현장에서 공적 업무를 수행하면서도 법률상 지위가 명확하지 않았고 국가나 지방자치단체가 활동에 필요한 수당과 여비 등을 지원할 근거도 부족했다. 이·통장과 유사한 역할을 하면서도 제도적 보호와 처우에서는 차이를 겪어온 것이다. 이는 단순한 형평성 문제가 아니라 어촌 행정의 지속가능성과 직결되는 문제다.
어촌의 현실은 녹록지 않다. 지난해 말 기준 전국에는 2077개의 어촌계가 운영되고 있다. 소속된 계원은 10만7321명에 이른다. 그러나 연 소득이 1억원 이상인 어촌계는 146개에 불과하고, 전체 어촌계의 약 62%인 1288개 어촌계는 연간 소득이 1000만원 이하에 그친다. 다수의 어촌계가 취약한 수익 구조 속에서 마을을 유지하고 있는 셈이다.
이런 상황에서 어촌계장의 역할은 더욱 중요하다. 어촌계장은 어촌 소멸 위기 속에서 주민 소득을 높이고 젊은 사람들이 다시 찾아와 살 수 있는 어촌을 만들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수산 관련 단체 활동은 물론 마을 사업, 어업 현장 관리, 체험 프로그램 운영 등에도 힘을 보탠다. 바다를 생업으로 삼는 주민들의 삶을 지키는 동시에 어촌이 다시 활력을 찾을 수 있도록 마을의 미래를 고민하는 자리다.
특히 어촌은 행정기관만으로는 세밀하게 살피기 어려운 현장이다. 조업 여건, 어장 관리, 공동시설 운영, 재해 대응처럼 생활과 생업이 맞닿은 문제는 현장을 아는 사람의 역할이 중요하다. 어촌계장이 제 역할을 안정적으로 수행할 때 정책도 주민에게 닿고 마을도 흔들리지 않는다.
하지만 지금처럼 개인의 사명감과 헌신에만 기대는 방식으로는 한계가 분명하다. 행정은 어촌계장의 협조를 필요로 하지만, 그 책임을 뒷받침할 제도는 미흡했다. 재해가 발생하면 가장 먼저 현장에 나서고 정책이 시행되면 주민에게 설명하며 갈등과 민원을 조정하는 역할까지 맡고 있음에도 법적 보호와 실질적 지원은 부족했다. 이제는 어촌계장의 공적 역할을 제도 안에서 분명히 인정해야 한다.
제도가 현장을 따라가지 못하면 결국 그 부담은 주민과 어민에게 돌아간다. 그래서 지금 필요한 것은 일회성 격려가 아니라 지속 가능한 지원 체계다. 이번 ‘수산업협동조합법 개정안’은 이러한 문제의식에서 출발했다. 개정안은 현행 고시에 머물러 있던 어촌계장의 법적 지위와 업무 범위를 법률에 명확히 규정하고, 임기는 4년의 범위에서 정관으로 정하되 연임할 수 있도록 했다. 국가와 지방자치단체가 업무수행에 필요한 수당과 여비, 그 밖의 경비를 지급할 수 있는 근거도 마련했다.
이는 단순히 활동비를 지급하자는 논의가 아니다. 어촌계장이 수행한 공적 역할을 법적으로 인정하고 어촌 행정의 책임성과 지속가능성을 높이기 위한 제도적 기반을 마련하는 일이다. 그동안 관행과 희생에 기대어 유지돼 온 어촌 현장 행정을 법과 제도의 영역으로 끌어올리는 의미가 있다.
어촌을 살리는 일은 거창한 구호만으로 가능하지 않다. 이제 필요한 것은 법적 인정과 안정적 지원 체계다. 현장을 가장 잘 알고 어민들과 가장 가까운 곳에서 소통하는 사람을 지켜야 한다. 어촌계장의 위상에 걸맞은 법적 지위 보장과 지원 체계 마련은 어촌 공동체를 지키기 위한 최소한의 출발점이다. 이제는 어촌계장의 헌신에 법이 응답해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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