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용선 지식재산처장
혁신기술은 언제나 인류 문명의 전진을 이끄는 기관차로 새로운 시대를 열어왔다. 그 과정에서 제도가 기술의 진화 속도를 따라가지 못하는 이른바 ‘혁신기술의 성장통’은 필연적으로 나타나는 현상이었다.
특허 제도도 예외는 아니다. 영국의 초기 특허 제도는 기술 보호보다는 왕실의 재정 확보를 위한 특혜성 독점권의 성격이 짙었고, 국가 간 기술 도용을 막을 국제 규범도 없었다. 이로 인한 특허 제도의 한계를 보여주는 대표적 사례가 1769년 특허를 취득한 제임스 와트(James Watt)의 증기기관이다.
당시에는 발명의 핵심 내용을 어디까지 공개해야 하는지에 대한 기준이 충분히 정립되지 않았다. 그 결과 시대를 바꾼 혁신기술조차 특허 서류에 핵심 원리를 온전히 담지 못했고, 경쟁자들은 공개된 정보를 바탕으로 이를 재현하면서 관련 특허 소송이 끊이지 않았다.
설상가상으로 국가 간 보호 장치가 부재한 상황에서 기술 도용과 역설계가 국경을 넘어 확산되었고, 수천 명의 숙련공들이 해외로 떠나기도 하였다. 한마디로 기술의 충분한 공개를 통해 혁신이 또 다른 혁신을 낳는 ‘특허 제도의 선순환 메커니즘’이 제대로 작동하지 못했다.
그러나 인류는 제도의 혁신을 통해 이러한 성장통을 극복하였다. 1778년 리아뎃 대 존슨(Liardet vs. Johnson) 판결을 계기로 특허는 독점적 특혜가 아닌 ‘기술 공개의 대가’로 인식되기 시작했고, 19세기 중반 주요국에서는 충분한 기술공개 요건이 판례와 입법을 통해 정교화되었다. 나아가 외국인의 기술도 자국민처럼 보호하자는 국제적 공감대가 형성되면서 1883년 산업재산권 분야의 다자간 조약인 파리협약이 탄생하였다.
약 260년이 지난 지금, 우리는 인공지능(AI) 대전환의 시대를 맞아 과거 산업혁명기 못지않은 성장통을 겪고 있다. AI가 빠르게 진화하면서 우리는 과거에는 상상하지 못했던 새로운 과제들과 마주하고 있다. AI의 발명자 인정 여부, AI 생성물의 신뢰성과 보호범위, AI를 이용한 무분별한 특허 출원으로 발생하는 행정 부담 등이 바로 그것이다.
이에 대한 해법은 과연 무엇일까? 역사가 증명하듯, 해답은 체계적인 제도 정비와 국제적 조화·협력에 있다. 지식재산처는 전 세계 특허 출원의 약 85%를 차지하는 세계 5대 지식재산 기관(IP5)의 일원으로서 IP5 수장회의에서 AI 협력 로드맵 수립을 주도하며 지식재산 제도조화 관련 논의를 선도해 왔다. 올해 개최된 IP5 수장회의에서는 AI를 고려한 특허 부여 요건의 재정립, AI를 이용한 무분별한 특허 출원 등 새로운 이슈에 대한 공동대응 필요성을 제안하여 많은 공감대를 받았다.
내부적으로는 최근 ‘지식재산 인공지능 전환 추진단’이라는 총괄 조직을 출범시켰다. AI 시대에 걸맞은 지식재산 법·제도와 심사 체계를 갖추고, 민간의 AI 전환을 적극 지원하기 위함이다.
이러한 노력을 통해 세계 최고 수준의 AI 기반 지식재산 행정서비스를 제공하고, 나아가 ‘세계 3대 AI 강국 실현’을 든든히 뒷받침할 것이다.
국가 경쟁력은 뛰어난 기술 확보만으로는 결코 완성되지 않는다. 노벨경제학상 수상자 더글러스 노스(Douglas C. North)가 기술 발전을 뒷받침할 수 있는 법·제도의 중요성을 강조한 이유다.
지식재산처가 나아가야 할 방향은 분명하다. 기술 발전에 부합하는 지식재산 제도와 국제 기준을 선도적으로 정립해 새로운 기술이 성장통울 넘어 마음껏 성장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하고, 이를 토대로 대한민국의 혁신 생태계를 완성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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