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5시간째 멈추지 않는 불길 아래, 전기차 20대 분량의 ‘화약고’가 숨죽이고 있다.
인천 쿠팡 물류센터 화재가 걷잡을 수 없이 장기화하는 가운데, 수백 대의 리튬배터리 로봇이 적재된 5층으로 불길이 번질 경우 끔찍한 연쇄 ‘열폭주’가 일어날 수 있다는 위기감이 커지고 있다.
진화 작업이 장기화하는 상황에서 대규모 배터리 열폭주 현상까지 발생하면 지난 2021년 경기 이천 쿠팡 덕평물류센터 화재 때처럼 센터 전체가 전소하는 최악의 상황을 배제하기 어렵다는 전망도 나온다.
허석경 인천 서부소방서장은 20일 인천 쿠팡 물류센터 화재 발생 현장에서 브리핑을 열고 “물류센터 5층에는 리튬배터리를 사용하는 물류창고용 로봇 수백대가 있다”며 “여기로 불이 번지면 건물 전체로 연소가 급격하게 이뤄지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허 서장은 “현재 불에 타지 않은 5층에서 불이 확산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대원들이 내부에 진입해 확산을 저지하고 있다”며 “고가차 등 특수차량 31대를 건물 각 방면에 배치해 화세를 누르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다”고 말했다.
현재 5층에 있는 리튬배터리의 양은 전기차 20대 분량으로 파악됐다. 배터리가 있는 5층에는 아직 불이 붙지 않았고, 소방 당국은 이곳으로 불길이 내려오는 것을 막는 데 진화 역량을 집중하고 있다.
소방 당국은 최초 화재가 차량 진출입로를 기준으로 6층 오른쪽(1번 구역)에서 시작돼 7층으로 불이 번진 것으로 파악했다. 이후 6층 왼쪽(2번 구역) 구역과 7층으로 불이 추가 확산한 것으로 확인됐다. 불이 시작된 6층은 바닥 면적이 2만8329㎡로 축구장 면적의 4배 규모다.
불길이 시작된 6층은 생활용품 등 가연물이 대량 적재돼 있으며, 복잡한 내부 구조 탓에 소방대원이 진입하기 어려운 상황인 것으로 알려졌다.
소방 당국은 화재가 발생한 지난 18일부터 국가소방동원령을 유지하며 55시간 넘게 진화 작업을 이어가고 있지만, 물류센터 건물 연면적이 넓고 가연물이 많아 완전 진화까지는 오랜 시간이 걸릴 것으로 예상된다.
전문가들은 진화 작업 과정에서 가장 위험한 상황 중 하나로 리튬 배터리의 ‘열폭주’를 꼽고 있다. 열폭주는 배터리에 한 번 불이 붙으면 배터리 내부에서 스스로 열을 만들어 내는 현상을 말한다.
열폭주로 배터리 온도가 급격히 올라가면 전해질이 분해되면서 열과 가연성 가스가 발생하고, 이것이 다시 온도를 높이는 연쇄 반응으로 이어진다. 불이 꺼지더라도 배터리 내부에 열이나 전기에너지가 남아있게 되면 몇 시간 뒤 다시 불이 붙는 재발화가 발생한다.
공하성 우석대 소방방재학과 교수는 “열폭주 현상으로 배터리 하나가 폭발하면 옆으로 전달되면서 함께 적재돼 있던 배터리 수십 개가 연달아 폭발하게 된다”면서 “우리가 흔히 아는 전기차 폭발보다 그 폭발 규모가 훨씬 클 것”이라고 말했다.
5년 전 덕평물류센터 화재처럼 전소 가능성이 언급되는 이유 중 하나도 열폭주의 위험성 때문이다. 지난 2021년 6월 발생한 덕평물류센터 화재에서는 연면적 12만7179㎡의 지하 2층, 지상 4층 건물이 사실상 전소됐다. 불은 나흘 이상 이어졌고 내부가 잿더미로 변했으며, 진화 과정에서 인명 수색을 위해 건물에 진입했던 소방관 1명이 순직했다.
공 교수는 “만약 열폭주 현상과 더불어 6, 7층의 불길이 5층으로 번지게 된다면 덕평물류센터 화재처럼 진화 작업이 불가능할 정도로 불길이 커져서 센터의 전소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고 말했다.
나경연 기자(contest@dt.co.kr)실시간 주요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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