車 판매 성장 한계… 먹거리 찾아 사업 다각화

모빌리티 제조 역량에 IT역량 더해 ‘무한 진화’

로봇·에너지·우주로 사업 영토 빠르게 확장

수익까지 갈 길 멀지만… 기술 노하우로 승부

자동차 회사들이 자동차만 만드는 시대가 끝나가고 있다. 전기·자율주행차 시대가 열리면서 가전·정보기술(IT) 업체까지 차 시장에 뛰어들자, 완성차 업체들은 무한 경쟁 시대에서 생존하기 위해 ‘탈(脫) 자동차’를 시작했다.

현대자동차그룹을 비롯한 주요 완성차 업체들은 자신들이 가장 잘 하는 ‘모빌리티 제조 역량’을 적극 활용해 로봇과 인공지능(AI), 미래항공교통(AAM), 에너지, 방산, 심지어 우주 산업까지 사업 영역을 빠르게 넓히고 있다.

한때 완성차 업체의 경쟁력은 얼마나 좋은 엔진을 만들고, 얼마나 많은 차량을 판매하느냐에 달려 있었다.

하지만 이제는 자동차 한 대를 판매하는 것만으로는 지속적인 성장을 기대하기 어려워졌다.

자동차 시장은 성숙 단계에 접어들었고, 전동화 전환 과정에서는 막대한 투자 부담까지 떠안게 됐다. 차량 판매 이후에도 지속적으로 수익을 창출할 수 있는 새로운 사업 모델을 확보하는 것이 글로벌 완성차 업체들의 최우선 과제가 됐다.

그러자 현대자동차그룹은 로봇 기업 보스턴다이나믹스를 품고, 도요타는 미래형 스마트시티를 만들기 시작했다. 혼다는 재사용 로켓 개발에 뛰어들었다.

제미나이가 그린 일러스트.
제미나이가 그린 일러스트.

◇車 판매엔 한계 있다… 성장 공식 무너져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일시적인 회복세가 있었지만 세계 자동차 판매량은 연간 9000만대 안팎에서 정체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인구 증가율 둔화와 주요 시장의 보급률 상승으로 과거처럼 판매량이 폭발적으로 증가하기 어려운 구조가 됐다.

성장이 둔화되면서 완성차 업체들은 기존 시장 안에서 점유율 뺏기 경쟁에 집중하고 있다. 과거에는 신흥국 시장 확대가 새로운 성장 동력이었지만, 과거 자동차 수입국이었던 중국이 수출국으로 바뀌면서 기존 완성차 업체들의 설 자리는 더 좁아졌다.

그 결과 폭스바겐은 구조조정이 불가피해졌고, 일본과 미국 업체들도 생산 효율화와 비용 절감에 나서는 등 생존 전략을 모색하고 있다.

전기차 시장도 기대했던 만큼 새로운 수익원이 되지 못했다. 각국의 친환경 정책으로 전동화 전환은 계속되고 있지만 수익성은 오히려 악화되고 있다. 배터리 가격 부담과 치열한 가격 경쟁으로 차량 한 대를 팔아 남기는 이익은 내연기관차량보다 크게 줄었다.

반면 자동차 한 대를 개발하는 데 드는 비용은 갈수록 늘고 있다. 전기차 플랫폼과 소프트웨어, 자율주행 기술, 차량용 AI, 배터리 연구개발(R&D) 등에 수십조원의 투자가 필요하지만 차량 판매만으로 이를 회수하기는 점점 어려워지고 있다.

과거처럼 신차를 출시하고 판매량을 늘리는 전략만으로는 기업 가치를 높일 수 없는 시대가 된 것이다.

CES 2026 현대차그룹 전시관에서 아틀라스가 자동차 부품을 옮기는 작업을 시연하는 모습. 현대차그룹 제공
CES 2026 현대차그룹 전시관에서 아틀라스가 자동차 부품을 옮기는 작업을 시연하는 모습. 현대차그룹 제공

◇현대차는 로봇으로… 각자 먹거리 찾기

완성차 업체들이 미래 수익 확보를 위해 미래 산업으로 눈을 돌리고 있지만 방향은 조금씩 다르다. 각사가 보유한 기술과 강점을 바탕으로 새로운 성장축을 만드는 전략이다.

현대차그룹은 2021년 미국 로봇기업 보스턴다이나믹스의 경영권을 확보한 이후 단순한 투자에 그치지 않고 그룹의 미래 사업과 로봇 기술을 연결하는 작업에 속도를 내고 있다.

보스턴다이나믹스의 휴머노이드 로봇 ‘아틀라스’는 향후 현대차 공장에 투입돼 생산 공정을 자동화하는 역할을 맡을 것으로 기대된다.

물류 로봇 ‘스트레치’, 4족 보행 로봇 ‘스팟’ 역시 생산과 물류, 시설 안전 점검 등 다양한 분야에서 활용 범위를 넓히고 있다.

현대차그룹은 하늘로도 사업 영역을 넓히고 있다. 미국 미래항공모빌리티(AAM) 전문법인 슈퍼널을 중심으로 전기 수직이착륙기(eVTOL) 상용화를 추진하고 있다.

최근에는 한국항공우주산업(KAI)과 손잡고 미래 항공 모빌리티 기체 공동 개발에 나섰다. 슈퍼널과 KAI가 AAM 기체를 함께 개발하고, 현대차·기아 항공파워트레인사업부는 항공용 전동화 파워트레인 상용화를 맡아 협력하는 구조다.

수소 사업 역시 같은 맥락이다. 현대차그룹은 수소 브랜드 ‘HTWO’를 앞세워 자동차를 넘어 발전과 물류, 항만, 산업용 에너지 솔루션으로 사업을 확대하고 있다. 수소차 판매에 더해 수소 생산부터 저장·운송·활용까지 아우르는 생태계를 구축해 새로운 시장을 선점하겠다는 계획이다.

도요타와 조비 에비에이션이 공동 개발 중인 전기 수직이착륙기(eVTOL) 시제기. 도요타 제공
도요타와 조비 에비에이션이 공동 개발 중인 전기 수직이착륙기(eVTOL) 시제기. 도요타 제공

◇車 회사 아니다… 사업 경계 허물어

글로벌 전기차 열풍을 몰고 온 테슬라는 이제 자동차 회사라고 정의할 수 없을 만큼 다양한 사업을 하고 있다. 현재 테슬라의 핵심 사업은 전기차뿐 아니라 에너지저장장치(ESS), 태양광 발전, AI, 휴머노이드 로봇 ‘옵티머스’까지 아우른다.

일론 머스크 테슬라 최고경영자(CEO)는 앞으로 기업 가치를 결정할 핵심 사업으로 옵티머스를 여러 차례 언급했다. 옵티머스가 제조업과 물류, 서비스업 등에 본격적으로 투입되면 자동차보다 더 큰 시장을 형성할 수 있다는 판단에서다.

도요타 우븐 시티 조감도. 도요타 제공
도요타 우븐 시티 조감도. 도요타 제공

일본 도요타는 미래 생활공간을 실험하고 있다. 일본 후지산 인근에 조성 중인 ‘우븐시티’(Woven City)는 자율주행차와 로봇, AI, 스마트홈 기술을 실제 생활 공간에서 검증하는 미래 도시 프로젝트다.

자동차를 만드는 데 그치지 않고 사람이 이동하고 생활하는 전 과정을 새로운 사업으로 연결하려는 시도다.

혼다는 자동차 기술을 우주 산업으로 확장하고 있다. 자체 개발한 재사용 로켓을 시험 발사하며 우주 시장 진출에 속도를 내고 있다. 엔진과 제어, 연소 기술 등 자동차 산업에서 축적한 핵심 기술을 우주 분야에 접목해 새로운 성장동력을 확보하겠다는 전략이다.

미국 제너럴모터스(GM)도 방산과 에너지 사업 확대에 집중하며 변화의 보폭을 넓히고 있다. 대규모 생산설비와 촘촘한 부품 공급망을 갖춘 완성차 업체의 강점을 무기 생산 확대에 활용할 수 있다는 점에서 미국 방산업계도 GM과의 협력을 확대하는 분위기다.

전기차와 가정용 에너지 시스템, 전력망을 연결하는 GM의 V2G 기반 에너지 생태계. GM 제공
전기차와 가정용 에너지 시스템, 전력망을 연결하는 GM의 V2G 기반 에너지 생태계. GM 제공

◇신사업도 ‘돈 먹는 하마’… 성공 보장 없다

다만 사업 영역을 넓힌다고 곧바로 새로운 수익이 생기는 것은 아니다. 로봇과 AAM, 자율주행, 우주산업은 모두 대규모 선행 투자가 필요하고 기술 검증과 인증, 시장 형성까지 오랜 시간이 걸리는 분야다.

완성차 업체들이 지금 투자하는 신사업 가운데 상당수는 아직 매출보다 R&D 비용이 더 큰 단계다.

자동차 제조와 전혀 다른 규제와 시장 구조도 넘어야 한다. 차량은 수년간 개발한 뒤 대량생산을 통해 원가를 낮출 수 있지만 항공기와 로켓, 군용 장비는 안전성과 신뢰성을 검증하는 데 더 오랜 시간이 필요하다.

신사업이 기존 자동차 사업의 실적 부담을 키울 가능성도 있다. 새로운 시장을 선점하기 위해 수조원을 투자했지만 상용화가 늦어지거나 시장이 예상만큼 성장하지 않으면 손실은 결국 본업이 떠안아야 한다.

완성차 업체들이 미래 사업에 속도를 내는 동시에 투자 규모와 사업화 시점을 계속 조정하는 이유다.

그럼에도 이제 자동차 업체들은 차만 만들던 과거로 돌아갈 수 없다. 이미 전기차와 자율주행차는 배터리와 반도체, AI, 소프트웨어, 통신, 에너지 인프라가 결합된 제품으로 진화하고 있다.

자동차를 제대로 만들기 위해 확보한 기술 자체가 이미 로봇과 에너지, 항공, 방산 등 다른 산업에 활용될 수 있는 범용 기술로 바뀌고 있다.

완성차 업체들에는 자동차 산업과 무관한 사업에 무작정 진출하는 것이 아니라 자동차에서 축적한 기술을 얼마나 경쟁력 있는 신사업으로 연결하느냐가 관건이 될 전망이다.

임주희 기자 ju2@d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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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주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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