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유열 롯데지주 미래성장실장(왼쪽부터), 이선호 CJ 미래기획그룹장, 김동선 한화호텔앤드리조트 부사장. [각 사 제공]
신유열 롯데지주 미래성장실장(왼쪽부터), 이선호 CJ 미래기획그룹장, 김동선 한화호텔앤드리조트 부사장. [각 사 제공]

재계 오너 3·4세 후계자들의 경영 시험대가 '밥상'으로 옮겨가고 있다.

신유열 롯데지주 미래성장실장(부사장)과 이선호 CJ 미래기획그룹장, 김동선 한화호텔앤드리조트 부사장이 나란히 식품·외식 사업에서 존재감을 키우며 차세대 경영자로서의 위상을 다져가고 있다.

세 사람이 같은 시장을 놓고 직접 맞붙는 것은 아니지만, 식품업계가 승계 과정의 공통 무대가 됐다는 점에서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식품·외식업은 소비자의 선택이 매출로 즉각 반영되고, 해외 진출과 인수합병(M&A), 신기술 도입 등 다양한 성장 전략이 펼쳐지는 시장인 만큼 이들 후계자들의 경영 능력을 평가할 수 있는 무대로 여겨진다.

신유열 롯데지주 부사장은 한국과 일본 롯데의 모태인 제과 사업을 확장하고, 이선호 그룹장은 CJ의 핵심인 K-푸드를 신사업·콘텐츠와 결합하고 있다.

김동선 부사장은 호텔·백화점·급식·외식을 묶어 자신의 독자적인 사업 영역을 구축하고 있다. 롯데와 CJ가 아버지 회사의 뿌리를 물려받는다면, 한화는 식품·유통을 새로운 뿌리로 심는 모습이다.

19일 유통업계에 따르면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의 장남인 신 부사장은 롯데웰푸드와 일본 롯데제과가 이달 초 싱가포르에 설립한 합작법인의 이사회 의장을 맡았다.

합작법인은 한·일 롯데 식품사의 아시아 사업을 총괄하며 생산·영업·물류망을 연결하고 공동 해외 진출을 추진한다. 신 부사장이 계열사 이사회 의장을 맡은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롯데에서 식품은 단순한 사업 부문 이상의 의미를 갖는다. 신격호 창업주는 1948년 일본에서 껌 사업으로 롯데를 시작했고, 1967년 국내에 롯데제과를 세웠다. 식품은 한국과 일본 롯데가 공유하는 그룹의 출발점이자 두 회사의 연결고리다.

그동안 바이오 등 미래사업을 맡아온 신 부사장이 식품으로 영역을 넓힌 것은 승계의 정통성을 확보하는 과정으로 읽힌다. 신동빈 회장이 추진해 온 '원롯데' 전략을 이어받는 동시에, 한·일 롯데를 실질적으로 묶을 수 있는지를 평가받을 전망이다.

CJ에서는 이재현 회장의 장남이자 그룹 4세인 이선호 미래기획그룹장이 식품에서 쌓은 경험을 그룹 전체로 확대하고 있다.

이 그룹장은 CJ제일제당 식품성장추진실장을 거쳐 지주사 미래기획그룹장으로 이동했지만, 푸드테크 스타트업 육성 프로그램 '프론티어랩스'와 한식 셰프 육성 프로젝트 '퀴진케이' 등을 꾸준히 챙기고 있다.

이 그룹장 전략의 핵심은 식품에서 검증한 스타트업 투자와 브랜드 육성 방식을 물류·커머스·콘텐츠 등 다른 계열사로 확산해 K-라이프스타일 생태계를 구축하는 데 있다.

그는 지난 4월 그룹 계열사 조직을 한자리에 모아 각사가 따로 진행하던 스타트업 발굴과 투자를 연결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식품사업이 그룹 미래 전략을 설계하는 일종의 실험실 역할을 한다고 본 것이다.

롯데와 CJ가 기존 모태 사업을 확장하는 방식이라면, 김동선 부사장은 식품·유통을 자신의 독자 승계 영토로 만들고 있다.

㈜한화는 지난 15일 임시주주총회에서 회사를 존속법인과 한화머시너리앤서비스홀딩스로 나누는 인적분할안을 승인했다. 존속회사와 신설회사의 분할 비율은 각각 76%, 24%이며 분할기일은 다음 달 1일이다.

신설 지주사에는 한화비전·한화모멘텀·한화로보틱스 등 기술 계열사와 한화갤러리아·한화호텔앤드리조트·아워홈 등 유통·식음 계열사가 들어간다.

장남 김동관 부회장은 방산·조선·에너지를, 차남 김동원 사장은 금융을, 삼남 김동선 부사장은 기계·유통·서비스 사업을 맡는 3형제 분업 구도가 한층 뚜렷해졌다.

이번 분할을 계기로 김 부사장이 맡아 온 사업들이 별도 상장 지주사를 중심으로 묶이면서, 그가 독립적인 경영 성과를 평가받을 무대가 마련됐다는 분석이 나온다.

김 부사장은 2023년 미국 햄버거 브랜드 파이브가이즈를 국내에 들여왔고, 지난해에는 한화호텔앤드리조트가 8695억원을 투입해 아워홈 지분 58.62%를 인수하도록 하면서 급식·식자재 유통까지 사업 범위를 넓혔다. 단일 외식 브랜드에서 출발해 호텔과 백화점, 급식, 식자재 유통을 아우르는 식음료 사업군을 만들었다.

한 재계 관계자는 "이들 오너 3·4세에게 식품 사업은 그룹의 정통성을 이어받는 통로이자 자신의 경영 색깔을 보여줄 수 있는 시험대"라며 "결국 아버지가 차려준 밥상을 얼마나 크게 키우고 수익성 있게 운영하느냐가 승계 성적표를 가를 것"이라고 말했다.

나경연 기자 contest@d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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