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성호 순천향대 의생명융합학과 교수

최근 재미있게 봤던 방송 중에 ‘흑백요리사’라는 프로그램이 있다. 국내 최고 수준의 쉐프들이 저마다 가진 화려한 실력을 뽐내며 요리를 만들어가는 과정과 고정관념을 버리기 위해 안대로 심사위원의 눈을 가리고 오직 맛으로만 평가하는 내용 등이 참신했다. 하지만 내게 인상 깊었던 건 경연이 시작되고 셰프들이 경쟁적으로 재료를 선점하기 위해 달려나가는 장면이었다. 아무리 뛰어난 기술과 창의성을 갖춘 쉐프라도 재료의 품질이 요리의 맛을 좌우한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요리에서 신선하고 퀄리티 높은 재료가 중요하다면, 과학에서는 데이터가 그 역할을 한다. 연구를 수행함에 있어서 연구자의 연구 역량이나 창의성도 증요하지만, 연구자가 다루는 데이터의 품질이 연구의 성공 여부를 좌우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최근 인공지능(AI)이 바이오 연구개발 전반에 빠르게 적용되면서 신약개발, 정밀의료, 질병예측 등 다양한 분야에서 혁신적 성과가 창출되고 있다. AI는 결국 데이터를 기반으로 학습하고 해결책을 제시한다. 품질 높은 데이터로 학습해야 양질의 결과를 도출할 수 있다는 의미다. 데이터가 없는 AI는 달리는 자동차가 없는 고속도로와 같다.

바이오 분야도 예외가 아니다. 유전체 정보, 임상정보, 의료영상, 생활습관 데이터 등이 충분한 규모와 품질로 확보되어야 AI는 의미 있는 결과를 낼 수 있다. 글로벌 제약기업과 주요 연구기관들이 바이오데이터 확보 경쟁에 막대한 투자를 집중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앞으로 바이오 분야의 국가 경쟁력은 AI 기술 수준만큼이나 양질의 데이터를 얼마나 확보·활용하느냐에 달려 있다.

그러나 우리 현실은 충분한 경쟁력을 갖추었다고 보기 어렵다. 정부·공공기관·의료기관이 다양한 바이오데이터를 축적해 왔음에도 부처별·기관별로 분산 관리되어 통합 활용에 한계가 있다.

유전체 정보와 임상정보, 의료영상과 공공보건 데이터가 안전하게 결합될 때 질병 원인을 더 정밀하게 규명하고 AI 기반 신약개발과 정밀의료도 앞당길 수 있다는 점에서, 이제는 데이터를 단순히 수집하는 수준을 넘어 국가 차원에서 표준화·연계·활용할 수 있는 체계 구축이 시급하다.

국제 경쟁 환경도 빠르게 변하고 있다. 미국은 국가 차원의 바이오 데이터 생태계 구축을 지속 추진 중이고, 유럽연합(EU)은 유럽보건데이터공간(EHDS)을 통해 국가 간 의료데이터 활용 기반을 마련하고 있다. 영국 역시 대규모 의료데이터 인프라를 AI 의료기술 개발과 산업화에 적극 활용하고 있다. 바이오데이터는 이제 단순한 연구 자원이 아닌 국가 전략자산으로 인식되고 있다.

물론 데이터 연계 과정에서 개인정보 보호와 연구 활용이라는 두 가치가 충돌하는 것은 불가피하다. 그러나 개인정보 보호를 최우선으로 삼는 선진국에서도 바이오데이터가 적극 활용되고 있다는 사실은, 우리도 보수적 시각에서 벗어나 합리적 방안을 마련할 시점이 되었음을 보여준다. 국민의 신뢰를 전제로 데이터의 안전한 관리와 투명한 활용 원칙을 제도적으로 보장한다면, 보호와 활용은 양립할 수 있다.

우리나라가 AI 바이오 강국으로 도약하기 위해서는 국가 차원의 바이오데이터 인프라 구축을 더 이상 미룰 수 없다. 우수한 의료 시스템과 세계적 수준의 ICT 역량, 풍부한 연구개발 경험을 보유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데이터 활용 기반이 충분히 마련되지 않는다면 글로벌 경쟁에서 우위를 확보하기 어려울 것이다.

현재 국회에서 논의 중인 ‘바이오데이터 활용 및 인공지능바이오 연구개발 촉진에 관한 법률안’은 이런 관점에서 중요한 정책적 전환점이 될 수 있다. 데이터 생산·관리·연계·활용의 전 주기를 국가 차원에서 체계화하고, 연구 현장과 산업계가 활용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한다면 AI 바이오 혁신의 토대가 한층 강화될 것이다.

바이오 분야의 미래 경쟁력은 결국 데이터에서 나온다. 이제는 개별 기관과 부처를 넘어 국가 전체의 관점에서 바이오데이터를 전략적으로 관리하고 활용할 수 있는 체계를 구축해야 할 시점이다. 이는 단순한 데이터 정책이 아니라, 대한민국의 미래 성장동력과 국민 건강을 위한 국가 혁신 전략의 핵심 과제다.



[저작권자 ⓒ디지털타임스, 무단 전재-재배포, AI 학습 및 활용 금지]

기사 추천

  • 추천해요 0
  • 좋아요 0
  • 감동이에요 0
  • 화나요 0
  • 슬퍼요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