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은행이 반도체 부문의 독주에 가려진 우리 경제의 기형적 쏠림 현상에 대해 ‘한국형 네덜란드병(Dutch Disease)’ 우려를 제기했다. 특정 산업의 일시적 호황이 착시를 일으켜 국가 경제 전체의 경쟁력을 갉아먹고, 다른 산업의 기반을 약화시키는 저주가 현실화될 수 있다는 경고다. 네덜란드병은 가스 등 천연자원 발견으로 뜻밖의 횡재를 거둔 국가가 자원에만 의존하다 결국 다른 산업군의 경쟁력을 약화시키는 현상을 뜻한다. 1950년대 천연가스전을 발견한 네덜란드가 ‘반짝 호황’ 끝에 몰락의 길을 걸은 데서 유래됐다.세계 각국이 자국 산업 보호 장벽을 높이고 기술 패권 경쟁을 벌이는 엄중한 시기에, 대한민국 경제의 기초체력이 특정 품목 하나에 좌우되고 있다는 진단은 결코 허투루 넘길 일이 아니다.
반도체 슈퍼 사이클에 따른 천문학적인 이익은 우리 경제에 명(明)과 암(暗)을 동시에 던지고 있다. 수출 호조로 관련 대기업들은 엄청난 이익을 내고 있지만, 그 온기는 중소기업이나 다른 제조업으로 흘러가지 않고 있다. 오히려 호황으로 시중에 풀린 유동성이 부동산 등 비생산적 자산 시장으로 흘러 들어가 자산 거품과 금융 불균형만 심화시키는 기형적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게다가 국가 재정과 내수 지표마저 반도체 업황 하나에 춤을 추는 양상이다. 반도체 실적에 따라 법인세수가 널뛰다 보니 국가 장기 재정 계획은 예측 불가능한 상황이다. 또한 반도체 업종의 엄청난 성과급은 전체 가계의 구매력 확산으로 이어지기보다는 K자 양극화를 확대하고 국내 서비스 물가를 자극해 서민들의 고통을 가중시킨다. 주가 상승에 따른 자산 효과 역시 소비 성향이 낮은 고소득·고자산층에 집중돼 있어 전체 소비를 끌어올리는 효과는 제한적이다.
더 큰 문제는 글로벌 AI (인공지능) 투자 붐이 잦아들어 업황이 급격히 꺾인다면, 국가 경제 전체가 한순간에 깊은 수렁에 빠질 수 있다는 점이다. 한은의 네덜란드병 경고는 이런 맥락에서 나온 것이다. 이런 치명적인 ‘반도체 덫’에서 벗어나는 길은 경제체질 개혁뿐이다. 정부는 규제 완화와 과감한 인센티브 제공을 통해 AI, 모빌리티, 바이오헬스, 이차전지, 방산 등 미래 먹거리 산업의 경쟁력을 높여야 한다. 아울러 반도체 호황기에 걷힌 세수를 선심성 포퓰리즘 예산으로 낭비할 것이 아니라 미래에 대비한 재정 버퍼(Buffer)로 비축하고, 기업의 고부가 R&D 투자로 유도하는 정책적 지혜를 발휘해야 한다.
과거 북해 천연가스 호황에 취해 제조업을 무너뜨렸던 네덜란드의 전철을 밟을 것인가, 아니면 국부펀드를 만들어 미래에 대비했던 노르웨이의 길을 갈 것인가. 경제체질 과 구조개혁의 골든타임을 놓친다면 ‘반도체 신화’는 신기루처럼 사라지고 우리 경제는 저상장의 늪으로 가라앉을 것이다. 지금은 반도체에 취할때가 결코 아니다. 정부와 정치권, 기업, 근로자 모두 위기의식을 갖고 국가 경제의 틀을 근본적으로 바꾸는 체질 개선에 사활을 걸어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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