잊혀가던 장수기업들이 상장폐지라는 벼랑 끝에서 소비자들의 뜨거운 '보은(報恩) 소비'로 기사회생하고 있다.
금융당국의 시가총액 기준 강화로 한성기업과 모나미가 증시 퇴출 위기에 몰리자, 온라인을 중심으로 이들의 과거 선행과 상징성이 재조명되며 제품은 물론 주식까지 사들이는 전례 없는 응원 행렬이 이어지고 있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펀더멘털(기초체력) 개선 없는 '반짝 애국 소비'는 일시적 열풍에 그칠 가능성이 있어 당장 내년 500억원으로 껑충 뛰는 상폐 기준을 넘기기 역부족이라는 냉혹한 경고도 잇따르고 있다.
19일 유통업계에 따르면 지난 6일부터 12일까지 GS25의 '맛살' 제품 매출은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70.6% 증가했다. 같은 기간 CU에서도 맛살 매출이 53.8% 늘었다. 이마트의 맛살류 매출은 15% 증가했다. 별도의 할인 행사나 판촉이 없었던 만큼 한성기업을 살리자는 응원 구매가 매출을 끌어올린 것으로 보인다.
한성기업은 1963년 설립된 수산물 가공식품 제조업체로, 맛살 제품 '크래미'가 오랜 기간 소비자들의 사랑을 받아왔다. 하지만 이달부터 코스피 상장 유지 조건인 시가총액 300억원 기준을 맞추지 못하면서 상폐 위기에 처했다.
이런 사실이 알려지자 온라인 커뮤니티에서는 한성기업이 25년째 6·25전쟁 참전용사를 위한 '영웅을 위한 음악회'를 후원해 왔다는 사실이 공유됐고, 소비자들 사이에서 응원 구매 열풍이 불었다. 소비자들은 제품을 구매하는 데 그치지 않고 주식도 사들였다. 이달 3일 기준 263억원이던 한성기업의 시가총액은 15일 기준 902억원까지 늘어났다. 같은 기간 주가는 4230원에서 1만4520원까지 올라 상승률 243%를 기록했다.
'국민 볼펜'기업 모나미에서도 비슷한 움직임이 나타났다. 모나미는 창업주 고 송삼석 명예회장이 1960년 설립한 광신화학공업사에 뿌리를 두고 있다. 1963년 국내 최초의 자체 생산 볼펜인 '153 볼펜'을 출시했고, 지난 2019년 일본 제품 불매운동 당시 일본산 필기구의 대체재로 주목받았다. 최근 디지털 기기 확산과 학령인구 감소로 판매 기반이 약해진 모나미 역시 시가총액이 300억원 기준을 밑돌면서 상폐 위기에 처했지만, 국민 장수 브랜드를 살리기 위한 소비자들의 제품 구매와 주식 매수가 이어졌다. 이달 7일 기준 247억원이던 모나미의 시가총액은 16일 기준 705억원까지 늘어났다. 같은 기간 주가는 1310원에서 3730원까지 올라 185%의 상승률을 보였다.
다만, 실질적인 체질 개선이 없다면 응원 소비만으로 이들 기업의 장기 생존을 보장하기 어렵다. 한성기업의 지난해 매출은 3184억원으로 전년보다 4.2% 감소했고, 영업이익은 110억원에서 58억원으로 47% 줄었다. 모나미는 지난해 매출이 1310억원으로 3년 연속 감소세를 이어갔고, 영업손실은 59억원을 기록했다. 올해 1분기에도 영업손실이 27억원으로 확대됐다.
내년 1월부터는 코스피 시가총액 상폐 기준이 500억원으로 다시 높아지는 만큼 일시적인 주가 급등만으로 상장을 계속 유지하기는 어려울 전망이다.
박창균 자본시장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금융당국이 원칙을 정해뒀으면 그 기준에 맞게 기업의 상폐 여부를 결정하면 되는 것"이라면서 "기업 실적이 좋으면 그에 따라 자연스럽게 주가가 올라가는 것인데, 애국 소비라는 이름으로 나타나는 현재 급등세가 기업의 가치를 말해주는 것은 아니다"고 말했다.
양호연기자 hyy@d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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