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네치아 시위대가 틸만 퍼티타 주이탈리아 미국 대사의 요트 앞에 모여 항의 시위를 벌이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베네치아 시위대가 틸만 퍼티타 주이탈리아 미국 대사의 요트 앞에 모여 항의 시위를 벌이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외교인가, 초호화 휴가인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최측근이자 억만장자인 틸만 퍼티타 주이탈리아 미국 대사가 6700억원에 달하는 슈퍼요트를 타고 두 달째 이탈리아 해안을 누비고 있다.

미국 정부 측은 이를 ‘해안 외교’라 포장하고 나섰지만, 요트 경호를 위해 막대한 혈세를 쏟아부어야 하는 이탈리아 현지에서는 ‘비용 전가’라는 거센 비판과 함께 대규모 시위까지 벌어지며 논란이 일파만파 커지고 있다.

17일(현지시간)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 보도에 따르면, 퍼티타 대사는 지난달부터 자신이 소유한 4억5000만달러(약 6700억원)짜리 초호화 요트 ‘보드워크’호를 타고 이탈리아 해안 도시들을 순회 중이다.

팔레르모, 제노바, 베네치아 등 10여개 도시를 방문한 그는 미국 독립 250주년 기념과 양국 관계 강화라는 명분을 내세웠다. 수영장과 미니 골프장까지 갖춰진 이 요트에는 현지 정치인과 군 관계자, 기업인들이 초대되어 이른바 ‘요트 회동’이 열리기도 했다.

로마 주재 미국 대사관 측은 “대사가 순회 일정에 드는 비용을 전액 사비로 부담할 예정이며, 이를 통해 이탈리아 국민과 직접 소통하는 기회가 될 것”이라고 옹호했다.

대사 개인은 사비를 쓴다지만, 진짜 문제는 이탈리아 정부가 떠안게 된 막대한 경호 비용이다.

FT는 이탈리아 해안경비대 소속 함정과 헬리콥터 등이 대사와 요트의 안전을 위해 대거 작전에 동원됐다고 전했다. 이탈리아 당국은 비엔나 협약에 따른 ‘외국 대사 신변 보호 의무’를 들어 특별 경호의 정당성을 주장하며 구체적인 투입 비용 공개를 꺼리고 있다.

하지만 재정난에 시달리고 있는 이탈리아의 속은 타들어 가고 있다. 녹색좌파연합 소속 루아나 자넬라 의원은 의회에서 “퍼티타 대사의 행보는 비용을 이탈리아에 전가하는 명백한 ‘외교적 휴가’에 불과하다”며 격하게 비난했다.

현지 주민들의 반발도 거세다. 요트가 베네치아에 입항한 당일, 수백명의 현지 시민들이 항의 시위를 벌였다. 시위를 주도한 스텔라 페이 활동가는 “외교를 수행하는 방식치고 매우 기이하다”며 “정치 권력과 자본력을 결합하려는 트럼프 특유의 정치 모델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사태”라고 꼬집었다.

실제로 퍼티타 대사는 정통 직업 외교관이 아닌 외식, 호텔, 카지노 사업을 주무르는 억만장자 기업인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집권 2기 들어 이처럼 거액 기부자나 개인적 친분이 있는 인사들을 대사로 대거 발탁해 왔다.

한편, FT는 이번 ‘요트 순회’가 조르자 멜로니 이탈리아 총리와 트럼프 대통령 간의 기류가 냉랭해진 시점에 이뤄졌다는 점에 주목했다.

유럽의 대표적인 친트럼프 인사였던 멜로니 총리는 최근 이란 전쟁 국면에서 미국과 이견을 빚어왔다. 이와 관련해 안토니오 타자니 이탈리아 외무장관은 “퍼티타 대사가 양국 정부 사이에서 얽힌 실타래를 푸는 중요한 중재자 역할을 하고 있다”고 진단했다.

양호연 기자(hyy@d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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