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전의 약속이 짙은 화약 연기 속에 묻혔다.
‘모든 전선의 군사작전 영구 종료’를 내건 미국과 이란의 60일간 종전 양해각서(MOU) 기간이 절반이나 지났지만 미국과 이란의 무력 충돌이 전면전을 방불케 할 만큼 격화하고 있다.
향후 협상 테이블에서 주도권을 쥐기 위한 양국의 ‘계산된 도발’이라는 분석이 지배적이지만, 자칫 통제 불능의 벼랑 끝 전술이 중동을 다시 돌이킬 수 없는 전쟁의 소용돌이로 몰아넣을 수 있다는 위기감이 고조되고 있다.
‘총성 없는 시간’이어야 할 휴전 기간이 무색하게 양측은 화력을 연일 끌어올리고 있다. 미군 중부사령부는 MOU 체결 한 달째를 맞은 17일(현지시간) 소셜미디어를 통해 이란을 겨냥한 야간 공습이 7일 연속 단행됐다고 발표했다.
월스트리트저널(WSJ)에 따르면, 미군은 호르무즈 해협 인근의 교량, 도로, 철도 등 이란의 핵심 군수 인프라를 집중적으로 파괴하고 있다. 이미 제11해병원정대 소속 2000명의 병력이 이란 해역 작전에 투입되었으며, 유럽 기지에 있던 전투기들마저 중동으로 긴급 전진 배치된 상태다.
이에 맞서는 이란의 반격 반경도 전례 없이 넓어졌다. 바레인과 쿠웨이트 등 미국의 걸프 동맹국 내 미군 기지는 물론, 발전소와 담수화 시설 등 민간 인프라까지 타격했다. 심지어 양국 간 중재역을 맡아온 카타르와 오만을 비롯해 이라크, 요르단까지 공격 대상에 포함시키며 보복의 수위를 한껏 끌어올리고 있다.
관측통들은 이 모순적인 ‘휴전 중 교전’의 배경을 협상 재개 시 유리한 카드를 선점하기 위한 극단적 압박 전술로 풀이한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앞서 12일 “양측이 합의 직전까지 갔다가 무산됐다”고 밝힌 대목은 이러한 기싸움의 치열함을 방증한다.
미국은 이란의 최대 무기인 호르무즈 해협의 통제력을 철저히 붕괴시킴으로써 협상의 우위를 점하려 하고 있다. 반면, 이란은 걸프 지역 국가들을 공격해 국제 유가의 불안정성을 키우면서 ‘시간은 이란 편’이라는 계산 아래 버티기 전략에 돌입한 것으로 분석된다.
현재로서는 미국과 이란 모두 전면전으로 회귀하거나 MOU 자체를 파기하는 데에는 엄청난 부담을 안고 있다.
WSJ는 “한 주 만에 10% 이상 치솟은 국제 유가가 세계 경제에 미칠 타격”이 미국의 고민이라면, “전후 재건의 막대한 부담과 경제난으로 인한 내부 여론 악화”는 이란이 전면전을 주저하게 만드는 결정적 아킬레스건이라고 진단했다.
하지만 서로의 약점을 찌르는 압박 전술이 예기치 못한 파국을 부를 수 있다는 경고도 잇따른다. 사예드 골카르 테네시대 이란 안보 전문가는 WSJ 인터뷰에서 “양측의 확전 양상이 이미 통제 범위를 벗어날 만큼 빠르게 격화하고 있다”며 “서로 원치 않더라도 돌발적인 오판으로 전면전에 휘말릴 위험이 팽배하다”고 우려했다.
결국 세계 경제의 대동맥인 호르무즈 해협을 쥐려는 이란과, 이 통항권을 빼앗아 궁극적인 ‘핵 포기’를 받아내려는 미국의 대립은 좁혀지기 힘든 평행선이다.
하미드레자 아지지 독일 국제안보문제연구소 객원연구원은 “당분간 양국은 자국 내 정치·경제적 출혈을 감수하면서 상대의 항복을 기다리는 피 말리는 인내력 싸움을 장기간 이어갈 것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이규화 대기자(david@dt.co.kr)실시간 주요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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