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병화 성균관대 경영대학 교수

글로벌 금융시장의 풍경이 빠르게 바뀌고 있다. 미국에서는 대형 자산운용사들이 미 국채와 펀드를 블록체인 위에서 토큰화하고, 나스닥과 NYSE는 토큰화 주식 거래를 준비 중이며, 유럽은 통합 규율체계를 바탕으로 디지털자산 산업을 제도권 안으로 끌어들이고 있다. 디지털자산은 더 이상 별도의 투기 시장에 머물지 않는다. 자산의 발행과 거래, 결제, 수탁, 청산이 하나의 네트워크에서 연결되는 ‘온체인 금융’이 새로운 금융 인프라로 자리 잡는 중이다. 국내 은행과 증권사도 이 흐름에서 예외일 수 없다. 앞으로는 전통 금융회사인 동시에 가상자산사업자가 되는 것이 자연스러워질 것이다.

이런 시점에 최근 개정된 특정금융정보법의 대주주 적격성 규정은 중요한 질문을 던진다. 개정법은 가상자산사업자의 최대주주와 주요주주까지 심사 대상으로 넓히고, 공정거래법·조세범처벌법·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 등 위반에 따른 벌금형 전력도 살피도록 했다. 자금세탁을 막고 건전한 지배구조를 확립하려는 취지는 분명히 타당하고, 고객자산을 다루는 사업자의 대주주에게 높은 수준의 사회적 신용을 요구하는 것도 필요하다.

문제는 법 위반의 성격과 책임 정도를 구분할 장치가 충분하지 않다는 데 있다. 대규모 기업에서는 수많은 임직원이 일한다. 임직원 한 사람의 위법행위로 회사가 감독상 책임을 부담해 양벌규정에 따른 벌금형을 받는 경우도 있다. 물론 이를 모두 가볍게 볼 수는 없다. 경영진이 위법행위를 지시하거나 묵인했고 회사가 반복적으로 이익을 얻었다면 엄격히 판단해야 한다.

그러나 경영진이 관여하지 않은 일회적 일탈이나 가상자산사업과 직접 관련이 낮은 위반까지 동일한 잣대로 다루면, 과거의 한 사건이 향후 5년간 새로운 사업 진출을 가로막는 사실상의 족쇄가 될 수 있다. 직원의 실수 하나가 기업 전체의 미래 사업을 멈추게 하는 구조라면 규제의 비례성을 다시 따져봐야 한다.

더 큰 문제는 규제체계 간 정합성이다. 자본시장법 등 기존 금융업 법령은 대주주 적격성을 엄격히 심사하면서도 양벌규정에 따른 처벌이나 경미한 위반에 대해 일정한 예외를 인정한다. 그런데 동일한 금융회사와 동일한 대주주가 전통 금융업에서는 적격하지만, 디지털자산 수탁이나 토큰화 사업에 진출하는 순간 특금법상 부적격 위험에 놓인다면 납득하기 어렵다.

온체인 금융 시대에는 자본시장법의 적용을 받는 금융회사와 특금법의 적용을 받는 가상자산사업자의 경계가 겹칠 수밖에 없다. 은행과 증권사가 디지털자산을 수탁하고, 토큰화 증권을 중개하며, 스테이블코인과 온체인 결제에 참여한다면 특금법의 적용을 피해가기 어렵다. 같은 금융회사에 적용되는 두 법의 대주주 적격성 판단 원칙과 예외 기준이 서로 충돌해서는 곤란하다. 이런 불일치는 투자 시점을 왜곡하고 국내 기업에 불필요한 비용을 떠넘길 수 있다.

이러한 관점에서 특금법의 목적을 제대로 달성하기 위한 정밀한 규제 설계가 필요하다. 자금세탁, 고객자산 침해, 시장질서 훼손과 직접 관련된 위반에는 당연히 엄격한 기준을 적용해야 한다. 반면 양벌규정 사건은 경영진의 관여 여부, 위반의 고의성과 반복성, 법인이 얻은 이익, 가상자산사업과의 관련성, 내부통제와 사후 개선조치를 종합적으로 살펴야 한다.

지금은 국내 금융회사들이 온체인 금융이라는 거대한 전환에 올라탈 수 있느냐를 결정하는 골든타임이다. 글로벌 기업들이 토큰화 자산과 디지털 결제 인프라를 선점하는 동안 국내 기업이 예측하기 어려운 대주주 규제 때문에 투자를 미루고 혁신을 주저한다면 그 비용은 산업 전체가 부담하게 된다. 규제는 시장을 보호하는 울타리여야지, 책임 있는 사업자의 진입까지 막는 감옥이어서는 안 된다.

특금법의 취지와 금융산업 경쟁력은 서로 반대되는 목표가 아니다. 위험한 사업자는 걸러내고 신뢰할 수 있는 사업자는 들어오게 하는 것이 좋은 규제다. 온체인 금융 시대에 같은 금융회사에 서로 다른 잣대를 들이대지 않는 것, 그것이 자금세탁 위험을 통제하면서도 한국 금융의 혁신 기회를 지키는 출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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