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재근 문화평론가

2024년에 데뷔한 걸그룹 리센느가 그해 발표한 ‘러브 어택’을 최근 멜론 톱 100 차트 1위에 올리며 신드롬을 일으키고 있다. 처음 발표했을 땐 멜론 일간 차트 904위에 오른 후 톱 100 차트 100위권에 간신히 진입했었다. 그랬다가 2025년에 1차 역주행으로 멜론 일간차트 65위에 올랐었는데 이 정도만 해도 놀라운 성과였다. 그후 하강했던 노래가 올 여름에 폭발적으로 주목 받으면서 무려 2년여 만에 정상에 등극한 것이다.

리센느의 역주행이 놀라운 것은 그들이 아주 작은 기획사의 걸그룹이기 때문이다. 과거에도 중소 기획사 아이돌의 역주행 인기는 힘든 일이었지만 요즘 들어선 거의 불가능에 가까운 수준이 됐다. 케이팝 업계에서 대형 기획사들의 영향력이 더욱 커졌기 때문이다.

대형 기획사 출신이 아니면 주목 받기가 극히 어렵다. 팬덤의 영향력이 절대적인데 대형 기획사의 아이돌은 고정 팬덤의 지지를 받으면서 노래 한두 곡이 실패해도 다음 기회를 얻을 수 있지만, 중소 기획사 아이돌은 처음에 노래가 뜨지 않으면 그대로 묻히게 마련이다. 한 노래가 떠도 후속곡이 약하면 바로 추락할 정도로 중소 아이돌의 인기는 지속력이 미약해서, 2년 전 노래가 살아남아 1위에 오르는 일은 상상하기 어렵다. 그 어려운 일을 리센느가 해냈기 때문에 가요계가 크게 놀라는 것이다.

이것이 ‘개천에서 난 용’의 성공신화로 받아들여지면서 많은 이들의 적극적인 응원이 이어진다. 단순히 가요계 한 걸그룹의 인기 이슈가 아닌, ‘힘 없고 백 없는’ 일반 서민이 바늘구멍을 뚫고 성공해낸 스토리로 각인된 것이다. 그래서 많은 이들이 리센느에 감정이입하면서 각별한 응원을 보내고, 이 팀의 성공이 자신의 성공인 것처럼 감격하고 있다.

데뷔 때부터 누리꾼들과 언론의 관심이 집중되는 대형 기획사 아이돌에 비해 중소 기획사 아이돌은 그들의 존재를 알리는 것부터가 너무나 어려운 일이다. 리센느는 멤버들이 직접 팀을 알리기 시작했다. 인터넷 방송을 통한 소통과 유튜브 콘텐츠 출연 등에 몸을 사리지 않은 것이다.

팬들과 소통하는 라이브는 보통 한 시간 정도 진행한다. 그런데 리센느는 5시간 라이브, 7시간 라이브 기록을 세울 정도로 팬들과의 소통에 열정적이었다. 하루는 새벽까지 밤을 꼬박 새면서 소통하기도 했는데, 당일 스케줄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라이브를 종료했다. 거의 잠을 안 잘 정도로 소통에 나섰다는 이야기다.

이런 에피소드는 리센느 멤버들의 간절함을 느끼게 했다. 대형 기획사 아이돌처럼 손쉽게 인지도를 올릴 수 없는 상황에서 온갖 궂은일을 마다하지 않고 자신들을 알려나갔다. 그런 모습이 사람들에게 감동을 안겨준 것이다.

리더인 원이가 다양한 유튜브 콘텐츠에 출연하면서 인기와 인지도를 높여가자 급기야 외부로부터 개인 채널 개설 제안을 받게 됐다. 그렇게 만들어진 개인 채널 영상에서 올 봄에 원이와 더불어 일본인 멤버 미나미가 출연해 원이의 고향인 거제를 방문했다. 여기에서 미나미가 뜬금없이 ‘거제 야호’라고 했는데 이게 한국 숏폼 트렌드를 뒤흔들었다. 순식간에 최대 유행어가 된 것이다.

그때를 기점으로 시작된 역주행 불길에 마지막으로 기름을 부은 사건이 이른바 일베 논란이었다. 원이 채널의 영상에서 연출자가 어두운 조명을 보며 “무섭노”라고 하자, 원이가 이를 받아 “무섭노. 조명부터 무서운데”라고 했다. 이게 일베 말투라는 지적이 제기되자 엄청난 반발이 터졌다.

앞에서 언급한 것처럼 원이는 거제 출신이다. 거제를 방문해 현지 사투리를 쓰는 영상이 인기를 끌었고, 그래서 ‘거제의 딸’ 캐릭터로 떴으며 거제 지역 홍보대사로까지 위촉됐다. 이런 사람이 쓰는 자연스런 사투리를 일베 말투로 몰고 갔다는 반발이 터지며 리센느를 응원하는 이들이 결집했다. 그 결집의 화력이 마지막 한 방이 되어 ‘러브 어택’을 밀어 올렸고 때마침 신곡까지 나와 관심이 더 집중되며 마침내 2년여만의 1위 등극이라는 대역사가 만들어진 것이다.

이렇게 응원 화력을 결집시킨 일베 논란이라는 우연한 사태가 있긴 했지만 리센느 인기의 근본적인 이유는 그들이 보여준 간절한 태도와 열정이었다. 그것을 보고 많은 이들이 응원하기 시작했고 일베 논란이 터지자 내 일처럼 분노하며 더욱 리센느에게 힘을 보탰던 것이다. 그런 대중의 힘에 의해 요즘 보기 힘든 ‘약자의 반란’이라는 판타지가 현실화됐다. 흑수저의 간절함이 기적을 만든 사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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