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플 “면접 때 기밀자료 가져오라 했다” 주장

보안 우회 코칭에 공급망 정보 유출까지 요구

AI 경쟁, 모델서 디바이스·제조기술 각축으로

인재, 하드웨어, 공급망, 법정이 모두 전쟁터

오픈AI 로고. 로이터 연합뉴스
오픈AI 로고. 로이터 연합뉴스

애플이 오픈AI를 상대로 제기한 영업비밀 침해 소송은 현재 글로벌 AI 산업이 어디를 향해 가고 있는지를 한 단면을 보여준다.

그동안 AI 경쟁의 중심은 거대언어모델(LLM)의 성능과 GPU 확보, 데이터 축적에 있었다. 이제는 AI를 담아낼 하드웨어와 제조기술, 공급망 경쟁력까지 승부처가 되고 있다는 사실이 이번 소송에서 드러났다.

미국 IT 전문매체 더버지는 13일(현지시간) 애플이 제출한 41쪽 분량의 소장을 분석하며 이번 사건의 핵심 쟁점 여섯 가지를 소개했다.

소장을 관통하는 애플의 주장은 명확하다. 오픈AI가 단순히 애플 출신 인재를 영입한 것이 아니라, 조직적으로 애플의 영업비밀과 개발 노하우를 확보하려 했다는 것이다. 물론 오픈AI는 “우리는 남의 기술에 관심이 없다”며 부인하고 있다.

소장에서 가장 충격적인 대목은 채용 과정에서 벌어졌다는 이른바 ‘쇼 앤드 텔’(show and tell‧가져와 보여줘)이다.

애플은 오픈AI가 애플 출신 지원자들에게 비공개 설계도와 컴퓨터 설계(CAD) 자료, 시제품 등을 면접에 가져와 설명하도록 요구했다고 주장했다. 통상적인 기술 면접이라기보다 경쟁사의 핵심 기술을 직접 확인하려는 시도였다는 것이다.

애플은 일부 지원자가 실제로 미공개 제품 설계와 내부 개발 자료를 제시했고, 이를 통해 오픈AI가 자사의 기술 수준과 개발 방향을 파악하려 했다고 주장했다. 만약 법원에서 사실로 인정된다면 일반적인 인재 스카우트와는 차원이 다른 영업비밀 침해 사례가 될 가능성이 있다.

소장에는 더욱 민감한 주장도 담겼다. 애플은 오픈AI 관계자들이 퇴사를 앞둔 직원들에게 회사 보안검색이나 기기 반납 절차를 우회하는 방법을 알려줬다고 주장했다. 또 일부 직원은 퇴사 이후에도 애플 내부 서버 접속 권한이 남아 있는 점을 이용해 기밀자료를 내려 받았으며, “아직도 접속이 된다”는 취지의 내부 대화도 증거로 제시했다.

애플은 이러한 자료가 단순한 기술 문서를 넘어 공급망 운영 방식과 제조 공정, 하드웨어 개발 전략까지 포함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여기서 주목해야 할 점은 애플이 문제 삼는 대상이 AI 알고리즘이 아니라 하드웨어 경쟁력이라는 사실이다.

애플은 AI 모델 분야에서는 오픈AI보다 뒤늦게 출발했지만, 하드웨어 설계와 반도체, 운영체제, 제품 통합 능력에서는 세계 최고 수준의 경쟁력을 보유한 기업으로 평가받는다. 앞으로 AI 서비스의 승패가 스마트폰과 웨어러블, 로봇, 개인 AI 디바이스에서 결정될 가능성이 커질수록 애플 입장에서는 제조기술과 제품 설계 노하우가 가장 중요한 전략자산이 된다.

실제로 AI 산업은 빠르게 AI 디바이스 경쟁으로 이동하고 있다. 메타는 AI 스마트안경을 앞세워 시장 확대에 나섰고, 오픈AI 역시 AI 전용 하드웨어 개발을 차세대 성장 축으로 삼고 있다. 여기에 애플도 AI 기능을 강화한 아이폰과 맥, 차세대 개인 AI 기기를 준비하고 있다.

결국 앞으로의 AI 경쟁은 모델 성능만이 아니라 누가 AI를 가장 뛰어난 하드웨어에 자연스럽게 녹여낼 수 있느냐가 핵심이 될 가능성이 크다.

이런 상황에서 애플이 공급망과 제조기술 유출 의혹에 강경하게 대응하는 것은 너무 자연스럽다. 특히 이번 소송은 실리콘밸리 특유의 인재 이동 문화에도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칠 전망이다. 지금까지는 경쟁사로의 이직이 혁신을 촉진하는 요소로 받아들여졌지만, AI 시대에는 개인의 전문성과 기업의 영업비밀 사이의 경계가 훨씬 모호해지고 있기 때문이다. 핵심 연구원 한 명이 보유한 지식 자체가 수십억 달러의 기업 가치를 좌우하는 시대가 되면서 인재 확보 경쟁은 곧 기술 보호 경쟁으로 연결되고 있다.

오픈AI는 애플의 주장을 전면 부인했다. 회사 측은 “타사의 영업 비밀에는 관심이 없으며 이를 요구하거나 활용하지 않는다”고 반박했다. 직원들에게도 경쟁사의 기밀자료를 가져오지 않도록 명확한 지침을 두고 있다고 강조했다.

향후 재판에서는 애플이 제출한 내부 메신저 기록과 이메일, 면접 과정에서 오간 자료 등이 핵심 증거가 될 전망이다. 법원이 이를 어떻게 판단하느냐에 따라 미국 기술업계의 인재 영입 관행과 영업비밀 보호 기준에도 적지 않은 변화가 생길 수 있다.

이번 소송은, 생성형 AI 시대 초반에는 AI 모델의 성능이 경쟁력을 좌우했다면 이제는 그 기술을 구현하는 반도체와 스마트 기기, 제조기술, 공급망까지 경쟁의 무대가 확대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AI 패권 경쟁은 인재 확보와 특허, 하드웨어 설계, 공급망, 그리고 법정까지 모두가 전장이 되고 있다.

이규화 대기자(david@d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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