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4% 반대… 대책·신뢰 안 보여"
정부에 노사정 협의체 구성 제안
노봉법 쟁의요건, 재계경고 현실로
노조 장벽에 산업 혁신 막힐 수도
정부의 중재로 올해 수억원대 성과급을 받게 된 삼성전자 반도체 노조가 이번엔 조합원 84%가 반대한다는 이유로 호남 반도체 클러스터 '노사정 협의체'를 구성할 것을 요구했다.
이재명 정부는 호남 반도체 클러스터의 '속도전'을 강조하며 각종 인허가와 전력, 용수까지 속전속결로 해결하겠다는 강한 의지를 표명한 바 있다. 이 대통령이 "토지 취득 과정에서 '알박기'가 있으면 협의에 시간이 많이 소요되는데, 협의 취득과 강제 취득 절차를 동시에 시작하면 된다"고 말할 정도였다.
정부의 강력한 지원 하에 일사천리로 진행될 것 같았던 호남 반도체 클러스터가 노조라는 큰 벽에 부딪쳤다. 개정 노동조합법(노란봉투법)에 따라 조합원의 근로조건에 영향을 미치는 사업상의 결정도 교섭 대상에 해당된다.
삼성그룹 초기업노동조합 삼성전자 지부는 13일 입장문을 통해 정부와 회사, 조합이 참여하는 노사정 협의의 장을 다시 요청했다. 노조는 이달 1일 협의체 구성을 제안했지만 현재까지 답변을 받지 못했다며 재차 대화를 요구했다.
노조는 호남 반도체 프로젝트와 관련해 조합원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전환배치와 근로조건, 처우 등을 고려할 때 반대한다는 응답이 84%에 달했다고 밝혔다. 일할 사람에 대한 대책과 신뢰 형성 과정 없이 속도만 강조해서는 안 된다는 게 노조 측의 주장이다.
노조는 지난 1일 정부와 기업, 노동조합이 참여하는 노사정 협의체 구성을 제안하며 "반도체 생산라인 하나를 가동하기 위해서는 부지 선정과 인허가, 전력·용수 등 기반 인프라 확보까지 최소 5년 이상이 걸리는 긴 여정"이라며 장기적인 관점에서 사업을 추진해야 한다고 주장한 바 있다.
노조는 여기에 전영현 삼성전자 DS부문장(부회장)이 지난달 30일 호남권 첨단산업 발전비전 국민보고회에서 원전 확대와 액화천연가스(LNG) 열병합발전 필요성을 언급한 점을 거론하며 "최근 미팅에서 사측이 '경영진들도 부담스러워한다'며 프로젝트에 대한 부정적 입장을 밝혔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정부·여당이 입법한 노란봉투법에 따라 조합원 근로조건에 영향을 미치는 사업상 결정 또한 교섭의 대상이 됐다"며 "수만 명의 근무지와 처우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사업인 만큼 2027년 교섭에서 관련 내용을 다루겠다"고 밝혔다.
노조가 반대할 경우 사업에는 차질이 불가피하다. 한국경영자총협회는 지난해 노란봉투법 입법 추진 당시 "기업 투자 결정, 사업장 이전, 구조조정 등 사용자의 고도의 경영상 판단까지 쟁의행위 대상이 될 수 있다"고 지적했는데, 삼성전자 노조가 실제로 이 카드를 내민 것이다.
삼성과 SK는 인공지능(AI) 국가 경쟁력 확보를 위해 공격적인 투자 계획을 내놓았다. 삼성은 호남에 425조원을 투자한다. 삼성전자가 광주에 신규 반도체 팹 2개를 건설하고, 해남 솔라시도에 삼성SDS가 17조원을 투자해 AI 데이터센터를 구축하는 등의 내용이다.
SK그룹도 용인과 청주, 호남을 잇는 AI 메모리 생산 벨트 구축을 추진하고 있다. SK하이닉스는 광주에 400조원을 투자해 차세대 메모리 생산 기반을 조성하겠다고 했다.
전문가들은 휴머노이드 로봇의 공장 투입을 반대하는 현대자동차 노조나 이번 삼성전자 노조 같은 사례가 이어지면 산업 혁신의 길은 영영 막혀버릴 것이라고 지적했다.
김대종 세종대 경영학부 교수는 "기업이 경쟁력을 고려해 자율적으로 투자 결정을 내릴 수 있는 환경이 중요하다"며 "(노조든 정부든)기업이 투자할 수 있는 조건을 만드는 것이 우선"이라고 덧붙였다.
이상현·장우진 기자 ishsy@dt.co.kr
실시간 주요뉴스
기사 추천
- 추천해요 1
- 좋아요 4
- 감동이에요 1
- 화나요 0
- 슬퍼요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