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원갑 KB국민은행 부동산 수석전문위원
인간의 탐욕이 빚어내는 야합은 늘 달콤한 서약으로 시작되지만 결말은 대개 추악한 배신으로 끝난다. 법의 테두리를 벗어난 불법 거래일수록 당사자 간의 ‘신사협정’이나 ‘의리’에 의존하기 마련이다. 하지만 돈이 모든 것을 지배하는 부동산 시장에서 타인이 끝까지 신의를 지킬 것이라는 믿음만큼 위험한 착각은 없다. 최근 서울시 민생사법경찰국이 적발해 검찰에 송치한 광진구 인기 아파트의 부정청약 및 불법전매 사건은 이러한 시장의 속성을 날것 그대로 보여주는 전형적인 사례다.
사건의 내막을 들여다보면 부동산 시장의 일탈이 얼마나 대담하게 이뤄지는지 잘 드러난다. 세 명의 자녀를 둔 청약통장 소유자 A씨는 브로커와 공모해 다자녀가구 특별공급 제도를 악용했다. 최고 303대 1의 경쟁률을 뚫고 한강 조망이 가능한 42평형(분양가 24억원)에 당첨되자, A씨는 수천만 원의 프리미엄을 받고 분양권 서류 일체를 넘겼다. 이 분양권은 전매제한 기간(1년) 내에 또 다른 공범들의 손을 거치며 ‘폭탄 돌리기’식으로 불법 전매되었다.
완벽해 보였던 이들의 야합에 균열이 생긴 것은 시장의 변동성, 즉 집값 폭등 때문이었다. 전매제한 기간이 지나자 아파트 가격이 수억 원씩 뛰었고, 애초 ‘이 정도면 만족한다’던 약속은 신기루처럼 사라졌다. 프리미엄이 치솟자 원매자인 A씨는 명의 이전을 거부하며 추가 보상을 요구했고, 이에 분노한 매수자 B씨는 A씨를 사기죄로 고소했다. 그러자 A씨는 고소 취하를 압박하기 위해 서울시 온라인 민원창구에 자신의 범죄를 ‘셀프 신고’하는 희대의 자폭 소동을 벌였다. 뒤늦게 합의하고 사건을 무마하려 했지만, 이미 통신자료와 금융내역을 추적한 수사기관의 레이더망을 벗어날 순 없었다. 결국 관련자 5명 전원이 형사입건되는 파국으로 막을 내렸다.
이 기괴한 사건은 부동산 시장에서 여전히 기승을 부리는 다운계약서와 불법전매의 구조적 취약성을 고스란히 보여준다. 다운계약서는 실제 거래가격보다 낮춰 계약서를 쓰는 변칙 거래로, 주로 매도자의 양도소득세 줄이기 요구로 작성된다. 이 불법 계약이 탈 없이 유지되려면 무려 10년이라는 세무조사 제척기간 동안 서로 비밀을 지켜야 한다. 하지만 국세청의 세무조사 통지서 한 장에 평생을 갈 것 같던 신뢰가 모래성처럼 무너지는 게 현실이다.
다운계약서가 매수자의 변심을 걱정해야 하는 구조라면, 분양권 불법전매는 정반대다. 여기서는 원매자인 매도자가 절대적인 키를 쥔다. 시세가 급등하면 매도자의 마음은 화장실 갈 때와 올 때처럼 달라지기 마련이다. 등기 서류를 인질 삼아 추가 웃돈을 요구하는 순간, 계약서 양식은 한낱 종잇조각으로 전락한다. 분양권 불법전매가 얻는 기대수익에 비해 위험성이 턱없이 높은 ‘부동산판 러시안룰렛’인 이유다.
행동경제학에는 이 현상을 명쾌하게 설명하는 ‘시간 불일치’(Time Inconsistency) 개념이 있다. 인간이 과거에 내린 합리적 선호나 약속이 시간이 흐르고 상황이 바뀌면 유지되지 못하고 변하는 현상이다. 처음에 분양가 24억원일 때는 수천만 원의 대가에 만족했던 A씨의 이성이, 눈앞에서 가격이 수억 원씩 뛰는 것을 목도하는 순간 마비된 것이다. 인간은 미래의 자신을 통제할 수 있다고 믿는 ‘통제 착각’에 빠지기 쉽다. 하지만 거대한 보상 앞에서는 과거의 결정을 가차 없이 뒤집는 철저히 이기적인 존재에 불과하다.
더욱 흥미로운 점은 매수자가 고소하자 자폭에 가까운 신고를 감행한 A씨의 심리다. 이 역시 인간의 본능인 ‘배신 혐오’(Betrayal Aversion)에서 기인한다. 인간은 이익을 추구하는 이기적 존재이지만, 상대방이 나를 속였다고 느끼는 순간 이성적인 손익계산기를 두드리기보다 감정적 복수를 택한다. 내가 망하더라도 너만큼은 파멸시키겠다는 공멸의 메커니즘이 작동하는 것이다.
결국 불법 부동산 거래의 세계에 ‘의리’나 ‘상호 신뢰’ 따위는 존재하지 않는다. 오직 시세 변동이라는 탐욕의 파도에 따라 언제든 깨질 수 있는 위태로운 야합일 뿐이다. 인간의 탐욕과 배신 혐오라는 본성은 불법 거래의 안전장치를 내부에서부터 흔들어댄다. 탐욕이 지배하는 시장에서 ‘신사협정’의 유효기간은 딱 이익의 저울추가 한쪽으로 기울기 전까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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