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상훈 국민의힘 의원(대구 서구)

서민금융지원법 개정안

요즘 현금 대신 휴대폰 속 카카오페이, 네이버페이 등으로 물건을 사고, 지인에게 돈을 보내는 일이 낯설지 않다. 한국은행 집계로 2025년 하루 평균 선불전자지급수단 이용금액은 1조3000억원을 넘어섰고, 선불충전금 잔액도 5조3000억원에 이른다. 문제는 이 돈 가운데 상당액이 조용히 사라지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용자가 5년간 쓰지 않으면 상법상 상사 소멸시효가 완성돼 잔액이 그대로 사라지고, 그 돈은 사업자의 회계상 수익, 이른바 ‘낙전수익’으로 귀속된다.

금융감독원 ‘선불전자지급 서비스 이용현황’에 따르면 낙전수익 규모는 2021년 488억원에서 2024년 601억원으로 증가하는 추세다. 사라질 운명이라면, 도움이 필요한 서민에게 흘러가게 할 순 없을까 하는 질문에서 이번 개정안은 출발했다.

힌트는 이미 은행 예금 제도에 있었다. 은행 예금도 선불충전금과 마찬가지로 상사채권으로 분류돼 5년의 소멸시효가 적용되지만, 시효가 완성된 휴면예금은 사업자 몫으로 사라지지 않는다. 서민금융진흥원(서금원)이 공적 체계 안에서 휴면예금을 출연받아 관리하며, 그 운용수익의 일부는 서민금융 지원사업의 재원으로 쓰인다. 원권리자는 기간 제한 없이 언제든 돈을 돌려받을 수도 있다. 휴면예금 제도가 시행된 이래 올해 5월말까지 725만6000건, 2조5026억원(건당 약 34만5000원)의 금액이 원권리자에게 환급됐고, 운용수익 중 2660억원을 서민금융 자활지원계정으로 전출하는 성과를 올렸다.

같은 성격의 돈인데도 그동안 페이·머니 선불충전금만 이런 공적 순환 구조에서 빠져 있었던 셈이다. 국민권익위원회가 국민 3335명을 대상으로 최근 실시한 설문조사에서도 응답자의 64%가 소멸시효 존재 자체를 몰랐다고 답했다. 이용자가 인지조차 못 하는 사이, 매년 수백억 원의 실효 충전금이 사업자의 영업외 수익으로 쌓이고 있었던 것이다.

이에 지난 5월 20일 ‘서민의 금융생활 지원에 관한 법률’ 일부개정법률안을 대표발의했다. 핵심은 소멸시효가 완성된 선불충전금을 휴면예금과 똑같이 서금원의 휴면계정에 출연하도록 하는 것이다. 개정안은 ‘휴면선불충전금’ 개념을 신설하고, 선불업자도 은행·예탁결제원과 마찬가지로 시효 완성 잔액과 원권리자 정보를 진흥원에 제출하도록 의무화했다. 이렇게 출연된 휴면선불충전금은 서금원이 관리하며, 원권리자 요청 시 환급하고, 그 운용수익을 서민금융 지원사업 재원으로 활용한다.

해외에서도 비슷한 고민의 흔적을 찾을 수 있다. 미국은 각 주법을 통해 휴면예금, 상품권 등 장기간 청구되지 않은 자산을 주 정부로 이전해 관리하는 미청구 자산 반환 제도를 운영하고 있다. 2024년 한 해에만 원권리자에게 반환된 금액이 44억9000만달러(약 6조8650억원)에 달한다. 캐나다 온타리오·퀘백주는 아예 기프트카드나 선불카드의 유효기간 설정 자체를 법으로 금지해 사업자가 소비자의 손해를 기반으로 이익을 얻는 구조를 원천 차단했다.

공통점은 분명하다. 소멸시효를 이유로 한 개인의 재산권 침해를 허용하지 않겠다는 원칙이다. 다만 해외 사례가 재산권 보호에 방점을 뒀다면, 우리 제도는 한 걸음 더 나아가 서민금융 재원으로 활용한다는 점에서 차별화된다. 선불충전금까지 이 틀 안에 끌어오는 것은 늦었지만 반드시 필요한 걸음이다.

법이 통과되어 휴면선불충전금의 운용수익이 저소득층 창업 지원, 서민 대출 사업 등에 꾸준히 보태진다면, 별도의 예산 편성 없이도 서민금융의 곳간을 채울 새 재원이 생기는 셈이다. 동시에 개개인의 재산권도 두텁게 보호된다. 몇 년 전 충전해 두고 잊었던 실효 충전금도, 본인 확인만 거치면 돌려받을 수 있다. 나아가 페이·머니가 사실상 예금처럼 쓰이는 현실에 걸맞은 규율 체계를 갖춤으로써, 디지털 금융서비스에 대한 국민 신뢰의 기반도 다질 수 있다.

내가 잊고 지낸 몇만 원이 누군가에게는 창업의 종잣돈, 자립의 디딤돌이 될 수 있다. 이는 사업자의 낙전수익으로 사라지던 돈을 국민 모두를 위한 서민금융 재원으로 되돌리는 지극히 상식적인 작업이다. 국회 전반기 정무위원회 위원으로서, 서민금융을 살피는 입법자로서 이 법안이 조속히 통과돼 잠자던 페이·머니가 서민금융의 새로운 씨앗이 되는 날이 오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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