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가장 강력한 태풍으로 평가받는 제9호 태풍 '바비'가 중국 동부 해안을 횝쓸었습니다. 중국 경제·기술 중심지인 저장성이 큰 타격을 입었습니다. 반면 프랑스 등 유럽과 미국에선 기록적 폭염이 이어지며 사람들이 밤잠을 이루지 못하고 있습니다. 지구촌 곳곳에서 '기후변화'의 경고음이 갈수록 커지는 모습입니다.
바비는 지난 11일 저녁 11시 20분 저장성 위환시에 처음 상륙했으며 최대 풍속은 시속 144㎞에 달했습니다. 태풍은 육지를 잠시 빠져나갔다가 약 20분 뒤 저장성 웨칭시에 다시 상륙해 동부 연안을 강타했습니다. 상륙 전부터 중국 당국은 대규모 주민 대피령을 내렸습니다. 저장성 일대에서 약 172만명이 긴급 대피했습니다. 전국적으로는 약 240만명이 안전지대로 몸을 피했습니다. 수도 베이징에선 주민 10만명, 푸젠성에선 13만명, 상하이 해안지역에서는 3만4000명이 각각 대피했습니다.
태풍이 지나간 자리에는 깊은 상처가 남았습니다. 저장성 곳곳에서 수천 그루의 나무가 쓰러졌고, 일부는 뿌리째 뽑혀 도로를 완전히 막았습니다. 산악 지대에선 암석이 무너지며 도로를 덮쳤고, 하천은 순식간에 범람해 주택과 농경지를 집어삼켰습니다. 도시에서는 차량 바퀴 절반 이상이 잠길 정도로 물이 차오르면서 교통이 사실상 마비됐습니다. 학교와 공공기관은 문을 닫았고, 항공가와 열차 운행이 줄줄이 취소됐습니다. 중국 전역에서는 지난 12일 하루 동안 국내선과 국제선 2800편 이상의 항공편이 결항했습니다.
중국은 태풍이 상륙하기 전부터 이미 기록적인 집중호우와 싸우고 있었지요. 푸젠성과 상하이 등 남부와 중부 지역에서는 폭우와 산사태, 저수지 붕괴 등으로 최소 39명이 목숨을 잃었습니다. 바비는 이런 상황에서 또 다른 재난을 덧씌운 셈입니다. 태풍 자체보다 이미 물을 잔뜩 머금은 지반과 범람 직전의 하천이 더 큰 위험 요인이 되었다는 분석이 나옵니다. 현재 바비는 북서쪽으로 이동하면서 점차 세력이 약화되고 있지만 오는 15일까지 강한 비가 이어질 것으로 예보됐습니다.
반면 유럽과 미국에선 폭염이 기승을 부리고 있습니다. 프랑스에선 수도 파리를 비롯해 본토의 4분의 1 이상에 최고 수준의 폭염 경보가 발령됐습니다. 파리 에펠탑, 루브르 박물관, 오르세 미술관은 이상 고온으로 단축 운영에 들어갔습니다. 지난 4일 개막한 세계 최고 권위의 도로 사이클 대회 투르드프랑스는 개최 역사상 처음으로 언덕이 많은 코스 일부를 단축하기로 결정했습니다. 극심한 폭염으로 프랑스 원자력발전소 세 곳은 가동을 멈췄고, 다른 8곳의 출력을 감소시켰습니다. 냉각수롤 방류할 때 수온을 일정 수준 아래로 유지해야 하는데, 최근 수온이 비정상적으로 올라간 탓에 발전량을 줄이기로 한 것입니다.
폭염에 따른 산불도 잇따르고 있습니다. 파리에서 남동쪽으로 약 60㎞ 떨어진 퐁텐블로 숲에서 화재가 발생해 프랑스 남북을 잇는 주요 도로인 A6 고속도로가 부분 폐쇄됐습니다. 스페인 남부 안달루시아 지방에선 대형 산불로 12명이 사망했고 8명이 다쳤습니다.
미국도 무더위에 시달리고 있습니다. 미국 국립기상청(NWS)은 네바다·유타·콜로라도·와이오밍·아이다호·몬태나·노스다코타·사우스다코타 등에서 낮 최고 기온이 38도를 훌쩍 넘고 일부 지역은 역대 최고기온 기록을 다시 쓸 가능성이 있다고 경고했습니다. AFP 통신은 로키산맥과 북부 평원 지역을 중심으로 약 4400만명의 미국인이 이번 폭염에 영향을 받을 것이라고 보도했습니다.
한쪽에서는 태풍과 폭우가 삶의 터전을 집어삼키면서 목숨을 앗아가고, 다른 한쪽에서는 폭염과 산불이 생존을 위협하고 있습니다. '기후변화'가 만들어낸 풍경입니다. 극단적 기상이 일상이 된 시대, 이제는 재난 대응을 넘어 근본적 해법을 고민해야 할 때입니다.
박영서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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