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대 은행 대출 목표 80% 소진… 3곳 초과
한도 축소·접수 중단… 하반기 대출문 ‘꽁꽁’
고정형 주담대 최고 7.37%… 금리 인상 전망까지
#. 서울 마포구에서 12억원대 아파트 매매계약을 앞둔 30대 직장인 A씨는 최근 은행 대출 상담을 서두르고 있다. 한국은행의 기준금리 인상 가능성이 커지면서 주택담보대출(주담대) 금리가 더 오르기 전에 자금을 확보하려 했지만 은행들이 주담대 한도를 낮추고 대출 접수까지 제한해 계획에 차질이 생겼다. A씨는 "금리가 더 오르기 전에 대출을 받아야 할 것 같아 서둘러 알아봤는데 정작 필요한 금액이 나오지 않을 수 있다고 해 더 큰 걱정이 생겼다"며 "잔금일까지 빨리 은행을 찾아야 하는데 다른 은행마저 갑자기 조건을 바꿀까 불안하다"고 토로했다.
하반기 차주들의 대출 부담이 빠르게 커지고 있다. 금융당국의 가계대출 관리 강화로 은행들이 주담대 한도와 접수 창구를 줄이는 상황에 한은의 기준금리 인상 가능성까지 높아져서다. 신규 차주는 필요한 자금을 제때 마련하기 어려워졌고 기존 차주는 대출금리 상승에 따른 이자 부담이 불어날 가능성이 커졌다. 은행권에서 밀려난 수요가 금리가 높은 제2금융권으로 이동하면서 차주의 상환 부담만 가중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상반기 대출 몰리자 7월부터 빗장… 주담대 한도 '뚝'
13일 금융권에 따르면 주요 은행들은 이달 들어 주담대 한도를 낮추고 대출 모집인을 통한 신규 접수를 중단하는 등 가계대출 관리 수위를 높이고 있다.
KB국민은행은 지난 10일부터 주택 구입 목적 주담대 최대 한도를 기존 6억원에서 3억원으로 낮췄다. 신한은행과 하나은행은 대출 모집인을 통한 주담대 접수를 제한했다. NH농협은행도 모집인 채널의 주담대와 전세대출 한도가 소진된 상태다.
모기지신용보험(MCI)과 모기지신용보증(MCG) 취급을 중단하는 은행도 늘고 있다. 국민은행과 하나은행, 농협은행에 이어 신한은행도 지난 10일부터 MCI·MCG 신규 취급을 한시적으로 중단했다.
MCI·MCG는 주담대를 받을 때 '방 공제'를 피하기 위한 보험·보증 상품이다. 가입이 중단되면 서울에서는 최대 5500만원, 수도권 과밀억제권역에서는 4800만원 가량 대출 가능 금액이 줄어들 수 있다.
아직 집을 알아보는 단계라면 매입 지역이나 가격대를 바꿀 수 있다. 하지만 매매계약을 이미 체결하고 잔금을 앞둔 차주는 사정이 다르다. 계약 당시 예상했던 대출액이 수천만원 줄어들면 자기자금을 추가로 투입하거나 금리가 높은 제2금융권에서 돈을 구해야 한다. 부족한 잔금을 마련하지 못하면 계약금까지 잃을 수 있다.
오는 9월 서울 아파트 잔금을 앞둔 30대 직장인 B씨는 "계약 전에 은행에서 안내받은 한도를 기준으로 자금 계획을 짰는데 지금은 실제 대출 실행 때 얼마가 나올지 확답을 받기 어렵다고 한다"며 "갑자기 부족한 돈을 마련하지 못하면 계약 자체가 틀어질 수 있어 제2금융권까지 문의하고 있다"고 말했다.
은행들이 하반기 초부터 잇따라 대출 문을 닫는 것은 연간 가계대출 관리목표가 예상보다 빠르게 소진되고 있기 때문이다. 5대 은행(KB국민·신한·하나·우리·NH농협)의 지난 9일 기준 가계대출 잔액은 정책성 대출을 제외하고 648조3607억원으로 집계됐다. 지난해 말 644조9700억원보다 3조3907억원 늘었다.
5대 은행이 올해 초 금융감독원에 제출한 연간 가계대출 증가 목표액은 약 4조3400억원이다. 반년여 만에 목표치의 약 78%가 채워진 셈이다. 은행권 전체로는 아직 20%가량의 여력이 남아 있지만 5곳 중 3곳은 이미 개별 목표치를 넘어선 것으로 알려졌다. 최근 증가 속도가 이어지면 나머지 은행도 조만간 연간 한도를 소진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기존 대출의 상환이 줄어든 점도 신규 대출 여력을 좁히는 요인이다. 은행의 가계대출 잔액은 신규로 나간 대출에서 기존 차주의 상환액을 뺀 결과다. 제2금융권의 대출 문턱이 높아지면서 은행 대출을 갈아타거나 상환하는 규모가 줄면 신규 대출을 많이 내주지 않아도 잔액이 빠르게 증가할 수 있다.
실제로 지난달 전 금융권 가계대출은 한 달 전보다 8조3000억원 늘었다. 5월 증가액인 9조3000억원보다는 줄었지만 지난해 같은 달 증가액인 6조5000억원을 웃돌았다. 5월과 6월 두 달 동안 늘어난 가계대출만 17조6000억원에 달한다.
금융당국은 올해 가계대출 증가율을 1.5% 이내로 관리한다는 목표를 세웠다. 지난해 증가율인 1.7%보다 강한 수준이다. 상반기에 대출을 예상보다 많이 내준 은행은 남은 기간 신규 취급을 줄여야 연간 목표를 맞출 수 있다. 통상 연말에 집중됐던 은행권의 대출 조이기가 올해는 하반기 시작과 동시에 본격화한 이유다.
◇한도 줄고 금리는 7%대… 금리 인상 전망에 '막차 수요'
하지만 차주들의 어려움은 대출 한도 축소에 그치지 않고 있다. 은행들이 가계대출 수요를 억제하기 위해 우대금리를 없애거나 금리 감면 폭을 줄이면서 어렵게 대출 문턱을 넘더라도 이전보다 높은 금리를 부담해야 하기 때문이다.
은행들의 금리 조정도 잇따르고 있다. 우리은행은 지난 1일부터 '우리아파트론' 5년 고정형 금리를 최대 1.1%포인트(p) 올렸다. 지난 5월부터 판매한 우대금리 특판 물량이 조기에 소진된 데 따른 조치다. IBK기업은행은 지난달 30일부터 대면 주담대 금리 감면 폭을 0.5%p 줄였고 고정형과 변동형 전세대출의 금리 감면 폭도 0.2%p 축소했다. 농협은행도 주담대 금리를 인상하고 주담대와 신용대출 우대금리를 줄였다.
이 같은 우대금리 축소와 금리 감면 폭 조정은 실제 대출금리 상승으로 이어지고 있다.
5대 은행의 고정형 주담대 금리는 연 5.03~7.37% 수준으로 지난 5월 말 연 4.26~7.10%와 비교하면 한 달여 만에 하단은 0.77%p, 상단은 0.27%p 올랐다. 금리 하단이 5%대로 올라서면서 고정형 주담대에서 4%대 금리는 사실상 자취를 감췄다.
이에 따라 차주가 매달 부담해야 하는 원리금도 빠르게 불어나고 있다. 만약 3억원을 30년 만기 원리금균등상환 방식으로 빌릴 경우 금리가 연 4.5%일 때 월 상환액은 152만56원이지만 연 5.5%로 1%p 오르면 170만3367원으로 18만3311원 늘어난다.
금리가 연 6.5%까지 높아지면 월 상환액은 189만6204원으로 다시 19만2837원 증가한다. 금리가 연 4.5%에서 6.5%로 2%p 오르면 매달 37만6148원, 연간으로는 약 451만원을 더 갚아야 하는 셈이다. 여기에 주담대 한도가 줄어 부족한 자금을 금리가 더 높은 신용대출로 채울 경우 차주의 상환 부담은 더 커질 수 있다.
앞으로 차주의 금리 부담이 더 커질 가능성도 있다. 시장에서는 한은이 오는 16일 금융통화위원회에서 기준금리를 연 2.5%에서 2.75%로 0.25%p 인상할 가능성에 무게를 두고 있다.
신현송 한은 총재는 지난 9일 국회 재정경제기획위원회 업무보고에서 목표 수준을 웃도는 물가와 성장세 개선, 금융안정 위험 등을 고려하면 적절한 시기에 기준금리를 인상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높은 물가와 환율에 수도권 집값과 가계대출 증가까지 겹치면서 금리 인상 필요성이 커졌다는 판단이다.
만약 기준금리 인상이 현실화하면 변동형 주담대와 신용대출 금리에도 일정한 시차를 두고 추가 상승 압력이 가해질 수 있다. 한도는 더 줄고 금리는 더 오를 수 있다는 불안이 차주들의 대출 신청 시기를 앞당기는 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다.
문제는 이 같은 '막차 수요'가 은행의 월별 취급 한도를 빠르게 소진시킬 수 있다는 점이다. 한 은행이 대출을 제한하면 다른 은행으로 수요가 몰리고 해당 은행마저 다시 문턱을 높이는 악순환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있다.
은행권에서 필요한 자금을 구하지 못한 차주가 보험사와 저축은행, 카드론 등으로 이동하는 풍선효과가 발생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은행 대출이 제2금융권 대출로 옮겨갈 경우 가계부채 증가세는 충분히 꺾이지 않은 채 차주의 이자 부담과 신용 위험만 커질 수 있는 것이다.
서진형 광운대 부동산법무학과 교수는 "갑작스러운 대출 조건 변경으로 중도금이나 잔금을 치르지 못하면 내 집 마련 계획에 차질이 생기고 계약금을 돌려받지 못하는 손해가 발생할 수 있다"며 "결국 차주가 제2금융권이나 사금융으로 이동하게 되면 자금 조달 비용도 증가하게 된다"고 지적했다.
유진아 기자 gnyu4@d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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