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은행이 최근 금융권 일각에서 제기된 ‘반도체 고점론’에 대해 선을 긋고 나섰다. 인공지능(AI) 인프라 투자 붐에 따른 폭발적인 수요와 고대역폭 메모리(HBM) 중심의 공급 제약이 맞물리면서, 이번 반도체 경기 확장국면이 최소 내년(2027년)까지 이어질 것이라는 진단이다.
최태원 SK그룹 회장은 지난 10일(현지시간) SK하이닉스 ADR 상장식 후 가진 CNBC와의 인터뷰에서 “향후 5년안에 생산능력을 두 배로 늘리겠다고 발표했는데, 모든 고객이 그것으로는 부족하다고 말한다. 더 필요하다고 말한다”고 밝혔다. 현재의 수요 공급상 반도체 고점론은 아직 시기상조라는 의미다.
13일 국회 국민의힘 박성훈 의원실에 따르면, 한은은 서면질의답변서를 통해 현재 글로벌 반도체 시장이 강력한 공급 우위 구조를 이어가고 있다고 분석했다. 빅테크 기업들의 AI 인프라 경쟁이 촉발한 반도체 수요 증가 속도에 비해, 제조업체들의 공급 확대 속도가 이를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한은은 이번 상승 사이클이 주기적으로 반복되던 과거의 확장기와는 질적으로 다르다고 짚었다. 한은 관계자는 “단순한 재고 조정을 넘어 AI 확산에 따른 산업 생태계의 근본적인 체질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며 “글로벌 기업들의 경쟁적인 선제 투자가 수요를 강력하게 견인하는 중”이라고 설명했다.
특히 공급 측면의 병목 현상이 고점 도달을 막는 방어벽 역할을 하고 있다고 평가했다. HBM을 비롯한 고성능 메모리는 기술적 진입장벽이 높아 양산에 상당한 시간이 소요될 뿐 아니라, 철저한 ‘주문형 생산’ 체제로 움직이기 때문에 과거처럼 급격한 공급 과잉이 일어날 가능성이 현저히 낮다는 분석이다.
한은에 따르면 현재 반도체 경기 확장 국면은 지난 2023년 3월 이후 40개월째 지속되고 있다. 이는 2000년부터 2020년까지 발생한 다섯 차례의 과거 확장기 평균 기간(29개월)을 이미 1년 가까이 웃도는 기록이다.
한은의 전망 시계도 한층 더 길어졌다. 한은은 당초 올해 말에서 내년 초를 정점으로 봤다. 경기 호조세가 최소 내년까지 견고하게 이어질 것으로 내다봤다. 이는 JP모건, 골드만삭스, 모건스탠리 등 글로벌 주요 투자은행(IB)들이 제시한 “최소 내년까지 반도체 호황이 유효하다”는 시각과 궤를 같이한다.
이 같은 한은의 입장 변화는 최근 기록적인 반도체 수출 실적이 뒷받침하고 있다. 반도체 통관 기준 수출 전년 대비 증가율은 지난 4월 171.4%, 5월 167.7%로 고공행진을 이어갔으며, 6월에는 월간 수출액 1000억 달러 고지를 돌파하며 상승 탄력이 한층 더 가팔라진 것으로 추정된다.
유진아 기자(gnyu4@dt.co.kr)실시간 주요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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