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플 공동창업자 스티브 잡스를 기억하는 사람이라면 그의 아들 리드 잡스(34·사진)를 처음 보는 순간 기시감을 느낄 수밖에 없다.
마른 체형과 또렷한 이목구비, 차분하면서도 단호한 말투까지 아버지를 빼닮았다. 하지만 그의 관심사는 스마트폰도, 인공지능(AI) 서비스도 아니다. '암을 치료하는 기술'에 인생을 걸고 있다.
미국 IT 전문매체 테크크런치가 11일(현지시간) 리드 잡스와의 인터뷰를 통해 그가 이끄는 바이오 벤처캐피털 '요세미티'(Yosemite)의 비전을 소개했다.
인터뷰에서 리드 잡스는 자신의 성(姓)보다 암 치료 이야기를 훨씬 더 하고 싶다고 말했다. 화상회의에서 맥북을 사용하느냐는 질문에는 "농담하냐. 당연하지 않느냐"며 웃었지만, 이후 대화는 곧바로 항암 신약과 임상시험, AI 기술로 옮겨갔다.
그가 설립한 요세미티는 2023년 출범한 항암 전문 투자회사다. 일반적인 벤처캐피털처럼 이미 만들어진 기업에 투자하는 데 그치지 않고 대학 연구실의 초기 연구를 직접 사업화해 바이오 기업을 세우는 것이 특징이다.
예일대와 버클리대, 스탠퍼드대 연구진과 함께 회사를 설립하고, 연구비 일부는 기부금 형태로 지원한다. 아직 상업성이 입증되지 않은 아이디어라도 잠재력이 있다면 과감히 투자하는 방식이다.
현재 요세미티는 25개 바이오 기업에 투자하고 있으며 두 번째 펀드로 3억5000만달러(약 5260억원)를 조성해놓고 있다. 리드 잡스는 "암 치료의 해답은 기존 제약회사 어딘가에 숨어 있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과학을 통해 직접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의 이런 선택에는 개인적인 경험도 적지 않은 영향을 미쳤다. 스티브 잡스는 2003년 희귀 췌장암 진단을 받은 뒤 8년간 투병하다 2011년 세상을 떠났다. 당시 리드 잡스는 아버지의 치료 과정을 가까이에서 지켜봤다. 이후 종양학과 암 연구에 깊은 관심을 갖게 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는 당초 의대 진학을 목표로 생물학 과정을 밟았으나 스탠퍼드대에서 전공을 바꿔 역사학과 국제안보로 학사와 석사 학위를 받았다. 그러나 그는 10대 시절부터 스탠퍼드 종양학 연구실에서 인턴십을 하며 바이오의학에 관심을 갖고 지식을 쌓았다.
리드 잡스는 AI가 바이오 산업의 판도를 바꾸고 있다고 평가했다. 그는 AI가 단순히 신약 후보 물질을 찾는 수준을 넘어 임상시험 자체를 혁신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현재 항암제 임상 3상 시험은 평균 2억6000만달러가 투입되며 환자 모집과 관리에 막대한 시간과 비용이 들어간다.
그러나 AI가 실제 환자 데이터를 기반으로 '가상 대조군'(Synthetic Control Arm)을 구축하면 대조군 환자를 별도로 모집하지 않아도 돼 개발 속도와 비용을 크게 줄일 수 있다는 설명이다.
신약 개발에서도 AI의 역할은 빠르게 확대되고 있다. 그는 과거에는 전체 유전체 가운데 약 15% 정도만 약물 표적으로 활용할 수 있었지만 AI가 단백질 구조를 분석하면서 그동안 공략이 불가능했던 영역까지 치료 후보를 찾아내고 있다고 말했다.
대표적인 사례로 수십년 동안 '불가능한 표적'으로 불렸던 KRAS(키어스틴 쥐 육종암 바이러스) 유전자 치료가 AI 발전과 함께 새로운 국면을 맞고 있다고 소개했다. 요세미티 역시 그동안 난공불락으로 여겨졌던 암 유전자 p53을 새로운 핵심 표적으로 삼고 있다. p53은 대부분의 암에서 기능이 억제되는 종양억제 유전자다.
그는 "만약 p53을 다시 활성화하거나 변이된 형태를 공략할 수 있다면 암 치료의 결정적인 돌파구가 될 것"이라고 자신했다.
리드 잡스는 AI가 의료 현장 전체를 바꿀 가능성도 높게 평가했다. 미국 병원 상당수가 여전히 팩스와 오래된 시스템에 의존하고 있다며 콜센터 운영, 영상 판독, 병리 진단, 전자의무기록 관리 등 거의 모든 분야에서 AI가 의료진의 부담을 크게 줄일 것으로 내다봤다.
흥미로운 점은 투자 철학에서도 아버지와 닮은 면이 있다는 것이다. 그는 연구자를 평가할 때 이력서나 직함을 아예 보지 않는다고 한다. 노벨상 수상자든 첫 연구비를 신청한 신진 과학자든 아이디어만 뛰어나다면 똑같이 검토한다. "암 환자에게 도움이 될 수 있는 아이디어라면 누구에게서든 듣고 싶다"는 것이 그의 원칙이다.
스티브 잡스는 아이폰으로 세상을 바꿨다. 리드 잡스는 암을 정복하는 것이 자신의 세대가 풀어야 할 가장 중요한 과제라고 믿고 있다.
이규화 대기자 david@d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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