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존 2031년서 2029년으로 단축
李대통령 '속도전' 발언에 일사천리
올 메모리 시장 250% 폭증 전망
미·중·일도 증설… "물량 선점해야"
이재명 정부의 전폭 지원에 힘입어 삼성전자 용인 반도체 클러스터의 가동 시점이 2년 빨라진다. 인공지능(AI) 시대를 맞아 폭발적으로 늘어난 메모리 반도체 수요를 누가 먼저 가져가느냐를 두고 한국과 미국과 일본, 중국, 대만 등 주요국의 속도 경쟁이 불붙었다.
10여년 전까지만 해도 반도체 업계는 '치킨게임'(경쟁업체가 포기할 때까지 반도체 가격을 내리는 출혈경쟁)을 걱정했다. 그러나 이제는 AI가 메모리 '속자독식'(速者獨食·빠른 자가 모든 것을 차지한다)이라는 새로운 화두를 던졌다.
실제로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미국 마이크론 등 메모리 빅3가 넘쳐나는 수요를 감당하지 못한 사이 중국의 D램 점유율은 1년 새 3%에서 8%로 치솟았고, 미국과 일본, 대만 역시 공격적인 증설로 과거 '메모리 강국'의 영광을 재현할 기회를 얻었다.
2017년 75% 안팎이었던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D램 합산 점유율은 올 1분기 67%(카운터포인트리서치 집계)로 떨어졌다. 속도전에서 뒤처지면 10년 뒤 'K-메모리'의 위상은 더 낮아질 것이 분명하다.
이재명 대통령이 지난 6일 "국운이 걸린 총력 경쟁이 벌어지고 있는데, 이런 상황에서는 누가 더 빠르냐에 따라 결판이 난다"고 말한 것도 이 같은 이유에서다.
12일 업계에 따르면 삼성전자는 용인 국가산업단지에 조성하는 6기의 반도체 생산공장 가운데 첫 번째 팹(공장)의 가동 목표 시점을 2029년으로 앞당기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기존 2030~2031년보다 1~2년 빠른 일정이다.
이는 지난 6일 이 대통령이 주재한 '메가프로젝트 민관합동 점검회의'의 결과물인 것으로 보인다. 이 대통령은 당시 모두발언에서 "용인 산단의 경우 그나마 빨리 됐다는데도 부지 확정에서 착공까지 6년이 걸렸다. 제 기준에는 빠르지 않은 것 같다"고 말했다.
정부는 호남 반도체 클러스터 조성 계획을 공개한 지 정확히 일주일 만에 광주 군 공항 기지를 부지로 확정하는 엄청난 속도전을 펼치고 있다.
이는 전례 없는 AI발 메모리 수요 폭증 때문이다. 최태원 SK그룹 회장은 10일(현지시간) 미 CNBC와의 인터뷰에서 "향후 5년 안에 생산능력을 두 배로 늘리겠다고 발표했는데도, 모든 고객이 '그것으로는 부족하다. 더 필요하다'고 말한다"고 했다.
시장 전망도 이를 뒷받침한다. 세계반도체시장통계기구(WSTS)는 올해 글로벌 반도체 시장 규모를 전년(7956억달러) 대비 89.9% 뛴 1조5112억달러로 예상했다. 메모리 시장은 249.5% 급증한 8039억달러로 전체 반도체 시장의 절반 이상을 차지할 것으로 전망했다.
경쟁국들도 공격적 증설에 나섰다. 마이크론은 2035년까지 미국 투자 계획을 기존 2000억달러(약 301조원)에서 2500억달러(약 376조원)로 높였다. D램 4위 중국 CXMT도 295억위안(약 6조5000억원)의 기업공개(IPO)(IPO)를 추진 중이다.
일본의 속도전은 더 무섭다. 일본 반도체 업체 라피더스는 정부의 전폭적인 지원 하에 2023년 기공한 히로시마 공장을 1년 7개월 만에 완공하고, 이후 3개월 만에 시제품을 만드는 전례 없는 기록을 세웠다. 일본 정부는 마이크론의 히로시마 고대역폭메모리(HBM) 생산라인 건설에 예산 최대 5000억엔(약 4조6000억원)을 배정했다. 세계 D램 점유율 5위인 대만 난야도 내년 설비투자액을 올해보다 약 4배 많은 2000억대만달러(약 9조원)로 늘리고 증설에 돌입했다.
조동근 명지대 경제학과 명예교수는 "우리가 과거 일본 반도체를 누를 때도 물량으로 선점했다"며 "예정된 반도체 부지에 속도를 내주면서 예정된 것을 더 빨리 하는 방식으로 지원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이상현·임재섭 기자 ishsy@d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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