염동훈 메가존클라우드 대표

19세기 초 갈등이 끊이지 않던 남아프리카 부족들 간에는 암묵적인 전쟁의 규칙이 있었다. 서로 거리를 유지한 채 긴 창을 던지며 세력을 과시하고 한쪽의 우위가 확인되면 어느 쪽도 치명적 피해 없이 전투를 끝내는 게 당시의 전쟁 방식이었다. 하지만 줄루족의 젊은 지도자 샤카(Shaka Zulu)는 규칙 자체를 바꿔버렸다. 그는 큰 방패와 짧은 창으로 병사들을 무장시키고, 적진으로 돌격해 근접전을 벌이도록 훈련했다. 긴 창을 던진 뒤 무방비 상태가 되는 다른 부족들은 샤카의 새로운 전술 앞에서 속수무책 으로 섬멸됐다.

게임의 규칙이 바뀌면 기존 규칙에 최적화된 강점은 오히려 치명적 약점으로 작용한다는 것을 보여주는 역사적 사례다. 오늘날 사이버보안 분야에서 정확히 같은 일이 벌어지고 있다.

지난 20여년 동안 사이버보안 생태계를 지탱해온 중요한 원칙이 있다. 보안 연구자가 특정 소프트웨어(SW)의 취약점을 발견하면 해당 업체에 먼저 알리고, 일정 기간 패치할 시간을 제공한 뒤 공개하는 ‘협력을 통한 취약점 공개’(Coordinated Vulnerability Disclosure) 절차다. 일반적으로 약 90일의 유예기간이 주어졌고, 이 체계는 수십억 명의 디지털 사용자를 보이지 않는 곳에서 보호해왔다.

이 방식이 작동할 수 있었던 배경은 공격자와 방어자가 모두 인간의 속도로 움직였다는 데 있다. 취약점을 발견하기까지 시간이 소요됐고, 공격 코드를 만드는 데에도 시간이 필요했다. 이 때문에 기업들은 패치를 개발하고 검증한 뒤 배포할 시간을 확보할 수 있었다. 완벽하지는 않았지만 모두가 비슷한 속도로 움직였기에 균형이 유지됐다.

하지만 인공지능(AI)의 빠른 발전과 함께 그 전제가 무너지고 있다. AI에 의해 인간의 속도가 아닌 기계의 속도로 취약점이 발견되고 공격 코드가 개발되는 시대가 열렸다. 숙련된 연구자는 몇 주 또는 몇 달이 걸리던 작업을 AI로 며칠 만에 수행할 수 있게 됐다.

문제는 이런 변화가 공격자들에게서도 일어난다는 것이다. 국가 차원의 해킹 조직, 사이버범죄 집단, 취약점 거래 브로커들 역시 동일한 생산성 향상을 누리게 됐다. 이들은 전통적 취약점 공개 절차에 관심이 없다. 발견한 취약점을 직접 활용하거나 판매할 뿐이다.

이로 인해 보안 산업 분야에서는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비대칭 구조가 만들어지고 있다. 공격자의 역량은 AI를 통해 비약적으로 강화된 반면, 방어자는 여전히 인간 중심의 패치 주기, 규제 검토 절차, 고객 테스트 기간, 배포 일정 등에 묶여있는 것이다. 이는 보안 업데이트를 위한 시간적 여유가 사라졌으며, 과거와 같은 여유는 이제 다시 돌아오지 않는다는 것을 의미한다. 결국 AI는 대응 속도가 곧 생존 조건인 시대를 연 것이다.

AI 기반의 초고속 공격에 맞서기 위해서는 방어체계 역시 완전히 새로운 패러다임으로 재편돼야 한다. 첫째는 방어 자체의 고도화다. 공격자가 기계의 속도로 움직인다면 방어자 역시 탐지와 대응, 패치에 이르는 전 과정을 AI로 자동화해야 한다. 인간이 개입해 판단하는 시간을 줄이고, 시스템 스스로 위협을 식별해 격리하는 방어체계를 갖춰야 한다.

둘째는 새로운 공격 표면이 된 AI 인프라 자체의 보호다. 기업의 핵심 자산이 된 AI 모델이 적대적 공격으로 오염되거나, 데이터가 유출되거나, 악의적인 우회 기법에 노출되지 않도록 AI 시스템을 전용 보안 장벽으로 에워싸야 한다.

셋째는 클라우드 환경의 안전 확보다. AI 구동에 필요한 데이터와 연산은 결국 클라우드 위에서 처리된다. 복잡한 멀티·하이브리드 클라우드 전반의 취약점을 실시간으로 가시화하고 통제할 수 있는 기반을 단단하게 마련해야 한다.

이 세 가지 축은 별개의 과제가 아니다. AI 전환(AX)을 진지하게 추진하는 기업이라면 반드시 갖춰야 할, 하나의 통합된 보안체계를 구성하는 축들이다. 샤카가 승리한 것은 더 많은 병력을 가져서가 아니었다. 규칙을 바꾸고 먼저 적응했기 때문이다. 규칙이 바뀐 전장에서 과거의 방식은 더 이상 방패가 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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