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리캔버스가 그린 일러스트.
미리캔버스가 그린 일러스트.

[글쓴이주] 주식시장 관련 소식이 매일 쏟아지지만 뉴스에서 '개미'의 목소리를 찾기 쉽지 않습니다. 기사를 쓰는 기자도 개인 투자자고, 매일 손실과 이익 사이에서 울고 웃습니다. 일반 투자자보다 많은 현장을 가고 사람을 만나지만 미처 전하지 못했던 바를 철저하게 '개인'의 시각으로 풀어보겠습니다.

지난 10일(현지시간) 미국 나스닥 시장에 상장된 SK하이닉스의 미국주식예탁증서(ADR)가 화려한 데뷔전을 치렀다. 공모가 149달러를 훌쩍 넘어 170달러로 거래를 시작한 주가는 장중 한때 177달러까지 치솟았다.

이후 상승 폭을 일부 반납하며 공모가 대비 13.08% 오른 168.49달러에 첫날 장을 마감했다. 종가 기준 시가총액은 무려 1조2000억달러로, 미국 경쟁사인 마이크론(1조1000억달러)을 단숨에 추월했다.

이에 대해 초대형 투자회사(IB) AJ벨의 댄 코츠워스 투자 책임자는 로이터 통신에 "미국의 수요가 일부 시장의 예상보다 강했다며 이는 메모리 반도체 상승세가 정점에 달한 것이 아니라 숨 고르기 국면이었음을 시사한다"고 분석했다.

이처럼 글로벌 무대에서 국내 반도체 기업이 역대급 잭팟을 터뜨렸다는 소식은 분명 경사지만, 안방 증시에서 똑같은 기업의 주식을 쥐고 있는 K-개미들은 정작 이 축제에서 완벽하게 소외됐다.

실제로 10일 나스닥에서 마감한 ADR 가격을 원화로 환산하면 주당 약 253만원에 달한다. 반면 같은 날 서울 코스피 시장에서 거래된 SK하이닉스 보통주의 종가는 218만원에 불과했다. 똑같은 실적과 기술력을 가진 같은 회사의 주식인데도, 미국 땅을 밟았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16%에 달하는 프리미엄이 붙은 셈이다.

이는 한국 증시의 구조적 한계로 인해 국내 반도체 기업과 주주들이 미국 경쟁사에 비해 저평가(코리아 디스카운트)를 받으며 얼마나 홀대당해 왔는지를 극명하게 보여주는 수치다.

더 큰 문제는 미국 시장의 대박 호재가 국내 본주를 쥐고 있는 개미들에게는 오히려 독이 됐다는 점이다. 글로벌 IB인 UBS는 상장 전 고객 노트를 통해 "첫날부터 미국 예탁증서를 매수하고 국내 본주를 공매도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선택"이라고 분석했다. 가격 차이를 노린 외인들의 차익거래 먹잇감으로 국내 시장이 활용될 것이라는 경고였다.

이 우려는 숫자로 고스란히 증명됐다. 지난주 코스피 시장에서 외국인은 SK하이닉스를 무려 3조2259억원어치나 쏟아내며 주가를 끌어내렸다. 특히 상장 당일이었던 10일 하루에만 외국인이 국내 시장에서 던진 SK하이닉스 물량은 1조7038억원에 달한다.

결국 외인과 기관이 쏟아낸 이 엄청난 폭탄 매물을 받아낸 것은 이번에도 국내 개인 투자자들이었다. 개미들은 지난 한 주 동안 3조7154억원을 순매수했고, 상장 당일 하루에만 1조2102억원의 매물을 받아내며 주가를 방어했다.

미국 상장이 한국 증시의 고질적인 저평가를 풀어줄 돌파구가 되기는커녕, 오히려 외국인들에게는 한국 본주를 던져 주가를 누를 기회만 주고 개미들에게는 그 매물을 고스란히 떠안기는 꼴이 됐다. 더구나 한국 주식을 미국 주식으로 바꾸는 절차가 까다롭게 막혀 있다 보니, 두 시장의 가격 차이를 노린 정상적인 거래가 이뤄지지 못해 기이한 격차는 당분간 계속될 가능성이 크다.

문제는 미국 시장에서 형성된 이 프리미엄이 정작 국내 본주의 주가를 끌어올리는 동력이 될지 미지수라는 점이다. 노동길 신한투자증권 연구원은 "가격 차가 서울 본주의 상승으로 좁혀질 수도 있고, 미국 접근성에 대한 별도 프리미엄으로 남을 수도 있다"며 "후자의 경우 미국 상장은 코리아 디스카운트를 줄이기보다 두 시장의 가격 차이를 드러내는 변수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13일 정식 티커 전환과 함께 열릴 국내 증시는 이번 나스닥 상장이 한국 본주의 동반 상승을 이끄는 마중물이 될지, 아니면 국내 주주들의 소외감만 키운 채 미국만의 잔치로 끝날지를 가를 첫 시험대가 될 전망이다.

박진우 기자 pjw19786@d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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