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불어민주당 박민규 의원이 8일 기업 근로자의 성과급이나 보너스 일부를 지역사랑상품권(지역화폐)으로 지급할 수 있도록 하는 근로기준법 개정안을 대표발의했다. 삼성전자나 SK하이닉스 등 기업의 결실을 지역 소상공인과 골목상권으로 흘려보내 지역경제를 살리겠다는 취지라고 한다. 명분은 언뜻 그럴싸해 보인다. 하지만 이 법안은 대한민국 노동법의 근간인 근로기준법의 대원칙을 뒤흔들고, 직장인들의 정당한 노동 가치를 훼손하는 전형적인 포퓰리즘 탁상 입법이다.
현행 근로기준법 제43조는 ‘임금은 반드시 통화(通貨)로 직접 근로자에게 그 전액을 지급하여야 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이는 과거 일부 사용자가 우월적 지위를 남용해 노동자에게 현금 대신 자사 제품이나 물품 바우처를 강제로 쥐어주던 악습을 막기 위해 세운 법적 보루다. 성과급 역시 근로자가 피땀 흘려 일한 정당한 노동의 대가이며 임금의 일환이다. 이를 사용처가 극히 제한되고 유효기간마저 있는 지역화폐로 대신 주겠다는 것은 시대착오적인 ‘현물 지급’의 부활과 다름없다.
법안은 ‘근로자의 명시적 동의’를 전제로 하겠다는 퇴로를 열어두었다. 그러나 이는 노동 현장의 현실을 전혀 모르는 것이다. 기업이 입사나 재계약 조건으로, 혹은 노사 단체협약 과정에서 지역화폐 지급 조항을 들이밀 때 이를 거부할 수 있는 근로자가 과연 몇이나 되겠는가. 사실상의 강요이자 강제가 될 가능성이 높다. 근로자의 소비 선택권과 사유재산권을 침해하는 것도 심각한 문제다. 직장인들이 밤낮없이 일해 번 성과급은 대출금을 갚고, 자녀 학원비를 내고, 노후를 위해 저축하는 등 개인의 필요에 따라 자유롭게 쓰여야 한다. 이를 대형마트도 못 가고, 타 지역에서 쓰지도 못하는 지역화폐로 묶어두는 것은 국가가 개인의 재산 처분 자유를 박탈하는 초법적 발상이다. 결국 현금이 급한 근로자들이 일정 수수료를 떼고 지역화폐를 현금으로 바꾸는 ‘음성적 상품권 깡’ 시장만 키우는 부작용을 낳을 것이다.
민주당 일각에는 대기업이 올린 성과를 마치 공공재처럼 여겨 징발해도 좋다는 사고가 존재한다. 골목상권과 소상공인을 살리는 것은 정부가 정교한 정책과 재정으로 풀어야 할 영역이지, 특정 기업 근로자들의 지갑을 강제로 털어 해결할 일이 아니다. 국회의원들에게 세비(월급)의 일부를 지역화폐로 받으라고 한다면 순순히 동의하겠는가. 지역경제를 살리겠다는 명분이 아무리 좋아도 선량한 근로자의 희생을 강요하고 시장경제 원칙을 무너뜨리는 입법은 정당화될 수 없다. 여당은 직장인들의 분노에 찬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 시장 질서를 교란하고 노동의 가치를 침해하는 또다른 악법 시도를 당장 멈춰야 한다.
실시간 주요뉴스
기사 추천
- 추천해요 0
- 좋아요 0
- 감동이에요 0
- 화나요 0
- 슬퍼요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