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격 부풀리기’ 집단소송 등 언급
日, 1985년 인텔 몰아내고 시장장악
레이건 정부 압박에 ‘반도체 국치일’
키옥시아 “1위 되찾겠다” 야심 드러내
일본이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통상 문제에 부딪칠 수 있다고 경고했다. 하필이면 삼성전자가 2분기 실적 발표를 한 다음 날이었다.
마치 40년 전 자신들이 미국에 당했던 것처럼 한국도 당할 수 있다고 예언하는 듯 했다. 일본은 40여년 전 세계 D램 시장의 80%를 차지했고,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올 1분기 점유율은 67%다.
이와 관련, 니혼게이자이신문(닛케이)은 지난 8일 삼성전자가 올해 2분기 잠정 영업이익 89조4000억원을 기록, 3분기 연속 역대 최대 실적 기록을 이어간 소식을 비중 있게 전하면서 인공지능(AI)용 메모리 반도체 가격 급등이 한국 반도체 업계의 새로운 경영 리스크가 되고 있다고 진단했다.
삼성전자의 2분기 영업이익은 엔비디아를 뛰어넘는 세계 1위 실적이다.
닛케이는 이어 미국 일부 소비자들이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마이크론 등 메모리 기업들의 ‘가격 부풀리기’로 피해를 봤다고 주장하면서 집단소송을 제기한 것을 거론했다.
닛케이는 한국 전문가 견해를 인용해 메모리 글로벌 점유율이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를 합산하면 60%에 달하는 상황에서 통상 문제 우려도 제기된다고 지적했다.
닛케이의 이 같은 지적에는 K-반도체도 40년 전 일본과 같은 전철을 밟을 수 있다는 메시지가 담겨있는 것으로 풀이된다.
일본은 1980년대 중반부터 1992년 삼성전자가 처음 D램 세계 1위를 처음 차지하기 전까지 명실상부한 메모리반도체 패권국가였다.
NEC를 비롯해 도시바, 히타치 등 일본 기업들은 미국의 3분의 1 밖에 안 되는 가격 경쟁력을 앞세워 시장을 빠르게 잠식했다. 이를 두고 미국 언론은 ‘제2의 진주만 공습’이라 명명했고, 1970년 D램을 세상에 처음 내놓으며 시장의 80% 이상을 독점했던 인텔은 1985년 점유율 1%라는 수모를 당하며 시장에서 철수했다. 빈자리는 모두 일본 기업의 몫이었다.
그러자 미국 정부가 움직였다. 도널드 레이건 정부는 일본이 미국 반도체 기술을 도용하고 가격까지 ‘덤핑’하고 있다며 일본의 주요 가전제품에 사상 초유의 100% 보복관세를 부과하는 등 전방위로 압박했다.
미국의 일본은 2차 세계대전 패전 이후 ‘제2의 반도체 국치일’을 맞아야 했다. 일본은 1986년 미일 반도체 협정에서 가격 결정권을 상실했고, 1991년에는 일본 내 미국 반도체 점유율을 20%까지 보장하기로 합의하며 시장 통제권도 상실했다.
이후 일본은 힘겨운 나날을 보냈다. NEC와 히타치의 D램 부문을 합병해 엘피다 메모리라는 자국 유일 D램 제조 ‘국가대표’를 만드는 등 안간힘을 썼으나, 그 사이에 성장한 한국과 대만의 벽을 넘지 못했다. 여기에 엔화 가치 폭등과 동일본 대지진, 글로벌 금융위기 등 악재를 버티지 못하고 2012년 결국 파산했다.
파산한 엘피다는 미국 마이크론에 인수됐다. 마찬가지로 낸드플래시의 자존심으로 불렸던 도시바메모리도 미국 사모펀드와 SK하이닉스 등이 참여한 ‘한미일 연합 컨소시엄’에 최대주주 자리를 뺏겼고, ‘키옥시아’로 사명을 변경했다.
1986년 미국 페어차일드 반도체 인수를 시도하며 미국을 도발했던 일본은 결국 역으로 당했다.
하지만 일본은 AI 열풍을 타고 다시 한번 반도체 전성기을 만들겠다며 도전장을 내밀었다. 닛케이 등 현지 언론보도에 따르면 일본 주식시장 시가총액 1위 자리를 다투고 있는 키옥시아는 낸드플래시 글로벌 점유율 1·2위인 삼성전자, SK하이닉스를 제치겠다는 목표를 세웠다.
오타 히로오 키옥시아 사장은 지난달 25일 열린 주주총회에서 “우리가 낸드플래시를 발명했지만 1위가 아니다. 몇 년 걸릴지 모르지만 1위 자리를 되찾겠다”고 발언한 것이 뒤늦게 알려지면서다.
박정일 기자(comja77@dt.co.kr)실시간 주요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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