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초 ‘30조원 자율공시’서 ‘10조원 법정공시’로 규제 강화

이억원 위원장 "일본보다 적극적인 방안… 선도적 방향 전환"

법적 책임 무거워지는데 완충 기간 부족… 경제계 혼란 불가피

이억원 금융위원장(왼쪽 세 번째)이 8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지속가능성 공시 제도화 방안 관련 당정 협의'에서 인사말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이억원 금융위원장(왼쪽 세 번째)이 8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지속가능성 공시 제도화 방안 관련 당정 협의'에서 인사말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내후년부터 연결자산총액 10조원 이상 코스피 상장사는 사업보고서를 통해 반드시 지속가능성(ESG) 공시를 해야 한다. 또한 그동안 거론된 '거래소 의무공시' 단계를 건너뛰고 자본시장법에 기반한 '법정공시' 체제로 직행함에 따라, 공시를 제대로 하지 않거나 위반할 경우 사법 처벌까지 받게 된다.

이는 정부가 지난 2월 제시한 로드맵 초안(자산 30조원 이상 상장사 자율 공시)보다 규제를 한층 강화한 것이다. 재계는 준비 시간 부족 등을 이유로 어려움을 호소하고 있다.

정부와 더불어민주당은 8일 서울 여의도 국회의원회관에서 당정협의회를 열고 이같은 내용을 뼈대로 로 한 'ESG 공시 제도화 최종방안'을 발표했다.

최종안에 따르면 당정은 2028년 10조원 이상 상장사를 시작으로 2029년에는 5조원 이상, 2030년에는 2조원 이상 상장사까지 ESG 공시 의무화 범위를 단계적으로 확대하는 방안을 검토하기로 했다.

공시범위 포함 기업 수는 종속회사를 포함해 2028년 291개사, 2029년 3171개사로 예상된다. 다만 공시 첫 해에 한해 자산과 매출이 모두 연결기준 10% 미만인 종속회사는 공시범위에서 제외한다.

정부는 초안보다 규제를 강화하는 만큼 면책제도도 적극 도입키로 했다. 다만, 고의적 '그린워싱'(친환경적인 것처럼 위장하는 행위)에는 손해배상과 행정책임을 엄격히 물기로 했다.

당정은 자본시장 투명성 제고와 글로벌 기준 선도를 위해 방향 전환이 불가피했다는 입장이다. 이억원 금융위원장은 "금융위원회는 관계 부처, 이해관계자들과 추가 협의를 통해 기업의 적극적인 공시 이행을 이끌어내는 방향으로 로드맵 수정안을 마련했다"며 "이는 한국과 경제·산업 구조가 유사한 일본보다도 적극적인 안"이라고 말했다.

이어 "기후·에너지 리스크를 선제적으로 관리하는 것은 지속가능한 성장을 위해 필수적인 과제며 자본시장 참여자들에게도 중요한 투자 판단 요소가 되고 있다"며 "국내외 투자자들로부터 공시 대상 확대와 법정공시 조기 전환을 요구하는 의견도 있었다"고 설명했다.

경제계는 법정공시 직행에 따른 기업 부담이 커졌다며 우려를 제기했다. 경제6단체는 공동성명을 내고 "도입 필요성과 방향성에는 공감한다"면서도 기업 현실을 외면한 과도한 부담이라고 반박했다. 충분한 준비 기간과 선례 축적 없이 처음부터 법정공시를 적용하는 것은 기업의 법적 리스크만 키울 수 있다는 주장이다.

정부는 고의적 그린워싱을 제외하고 초기 3년간 법적 책임을 면제하는 세이프하버를 도입하기로 했지만 기업들의 부담을 덜기에는 부족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ESG 공시 항목 중 핵심인 기후변화 대응 분야의 경우, 눈에 보이지 않는 탄소배출량 산정의 불확실성이 큰 상황에서 시민단체 등의 소송에 휘말릴 가능성을 우려하고 있다.

한 재계 관계자는 "몇 년 뒤 무혐의가 나오더라도 소송 자체만으로 기업 신뢰도와 브랜드 이미지에 큰 타격을 입을 수 있다"며 "사법 리스크가 지나치게 크다"고 말했다.

기술적 한계도 여전하다. 2031년부터 적용되는 Scope3 공시는 협력사와 소비자 등 공급망 전반의 온실가스 배출량까지 산정해야 한다. 하지만 아직 국내에는 이를 뒷받침할 탄소 데이터 인프라가 충분히 구축되지 않아 면책 기간만으로는 정확한 데이터 확보가 쉽지 않다는 것이 재계의 설명이다.

2030년부터 공시 내용을 외부 기관이 검증하는 제3자 인증이 의무화되는 점도 부담이다. 탄소데이터 플랫폼이 구축되지 않은 상황에서 기업들은 결국 해외 컨설팅 업체와 데이터 기관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 구조가 형성될 것으로 우려하고 있다.

다른 재계 관계자는 "공급망 전체의 탄소배출량을 정확히 산정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매우 어려운 과제"라며 "공시 이후에도 해석 차이에 따른 법적 분쟁이 반복될 가능성이 크다"고 지적했다.

박진우·임재섭 기자 pjw19786@d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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