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억원 금융위원장이 지난 4월 16일 서울 여의도 한국거래소에서 열린 중복상장 제도개선 의견수렴을 위한 공개 세미나에서 축사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이억원 금융위원장이 지난 4월 16일 서울 여의도 한국거래소에서 열린 중복상장 제도개선 의견수렴을 위한 공개 세미나에서 축사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금융위원회와 한국거래소가 6일 이른바 '쪼개기 상장'을 막겠다며 중복상장 가이드라인을 내놨다. 이미 증시에 상장된 모회사가 알짜 사업부를 분할해 자회사로 재상장하는 것을 원칙적으로 금지하겠다는 것이 골자다. 소액주주를 보호하고 한국 증시의 저평가(코리아 디스카운트) 현상을 해소하겠다는 취지라지만, 증시의 주요 기능 중 하나인 기업의 자금조달 창구 역할을 제한할 것이라는 우려가 적지 않다.

증권시장은 신산업을 일으키려는 기업들이 모험 자금을 조달하는 거대한 젖줄이다. 그동안 우리 대기업들은 중복상장을 단순한 자금 조달을 넘어, 미래 사업을 빠르게 키우고 경쟁력을 확보하는 핵심 경영전략으로 활용해왔다. 모회사의 이익만으론 감당하기 힘든 바이오·배터리 등 막대한 투자 자금의 적기 조달, 신사업의 맞춤형 투자자 유치, 독립된 자회사 체제에 따른 전문 경영과 신속한 의사결정, 스톡옵션 부여를 활용한 핵심 인재 유치 등이 그것이다. 대기업들이 물적분할 후 자회사 상장이라는 카드를 활용한 것은 글로벌 경쟁사들과의 속도전에서 밀리지 않기 위한 필사적인 생존 조치였던 셈이다. 대표적인 예가 LG화학에서 분사한 LG에너지솔루션이 물적분할 후 2022년초 중복상장을 통해 10조원이 넘는 투자 자금을 확보, 이를 바탕으로 미국과 유럽에 대규모 배터리 공장을 선제적으로 건설하며 글로벌 톱티어 배터리 기업으로 도약한 것을 들 수 있다.

물론 일부 기업이 주주 소통을 소홀히 한 채 무분별하게 분할 상장을 추진해 투자자들의 원성을 샀던 부작용을 부정할 수는 없다. 그러나 이를 바로잡겠다며 기업의 자금줄을 묶어버리는 획일적 규제는 더 큰 화를 부를 뿐이다. 지금 글로벌 시장은 미·중을 중심으로 자국 첨단 기업에 천문학적인 보조금을 쏟아부으며 무한 경쟁을 벌이고 있다. 이런 엄중한 시기에 우리 기업들만 증시를 통한 주요 자금 조달 경로가 막힌다면, 글로벌 경쟁력 약화는 불 보듯 뻔한 일이다. 규제에 갇혀 성장이 멈춘 기업의 주가가 과연 오를 수 있겠는가. 기업들은 새로운 사업을 벌일 수 있는 자금 조달 통로가 막힘으로써 투자 위축과 글로벌 경쟁력 약화를 우려하고 있다. 소액주주를 보호하겠다며 만든 규제가 기업의 성장판을 닫아 주주와 기업 모두가 파국을 맞는 모순을 낳을 수 있는 것이다.

기업이 투자 자금 조달을 위해 증시에서 유상증자를 하거나, 자회사를 상장시켜 자금을 조달하는 행위를 죄악시하는 풍토가 적지 않다. 이는 증시 본연의 자금 조달 기능을 위축시켜, 기업들이 굳이 상장을 추진할 이유를 없게 하는 것이다. 정부는 자산 비중이나 미래 신산업 해당 여부를 철저히 따져 예외적인 경우 중복상장을 허용하겠다는 방침이지만 이것만으론 부족하다. 기업이 정당한 사업 확장과 대규모 투자를 목적으로 할 때는 자금 수혈의 길이 원활하게 열려 있어야 한다. 중복상장 규제가 시장의 투명성을 높이고 주주와의 소통을 강화하는 제도적 보완이어야지, 기업의 손발을 묶는 또다른 대못 규제가 돼서는 안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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