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현석 서울시 서울의료원장

담배는 1492년 콜럼버스의 신대륙 항해를 계기로 유럽에 전해졌다. 당시 남미 원주민들이 종교 의식과 치료 목적으로 사용하던 담배는 스페인과 포르투갈 탐험가들에 의해 유럽으로 전파되었고, 처음에는 ‘만병통치약’으로 알려졌다. 특히 프랑스 주재 포르투갈 대사 장 니코가 담배를 약초로 홍보하며 왕실에 소개하면서 널리 유행했다. 오늘날 담배 중독의 주요 성분으로 밝혀진 ‘니코틴’이 바로 그의 이름에서 유래한 것이다.

엘리자베스 1세의 총애를 받던 탐험가 월터 롤리 경에 얽힌 일화는 당시 담배가 얼마나 생소했는지를 잘 보여준다. 서재에서 담배를 피우던 롤리 경의 입과 코에서 연기가 피어오르는 것을 본 하인이 ‘주인의 머리에 불이 났다’고 착각해 물을 들이부었다. 이 해프닝은 웃음을 자아내지만, 그 이면에는 씁쓸한 진실이 담겨 있다.

하인이 끄려 했던 불꽃은 단순한 착각이었지만, 담배 연기 속에는 타르와 일산화탄소를 비롯한 수천 가지의 유해 물질이 숨어 있었고, 그것들이 이미 롤리 경의 폐를 통해 혈관 깊숙이 침투하고 있었다. 겉으로 보이는 연기와 달리, 진짜 불은 몸속에서 조용히 타오르며 인체를 파괴하고 있었던 것이다.

수백 년이 지난 제2차 세계대전 당시에는 아이러니한 상황이 펼쳐졌다. 미군은 긴장을 다스리기 위해 담배를 병사들에게 권장했고, 전장이나 훈련장에서 장병들에게 식사를 공급하는 급식 시스템인 레이션 체계에 담배를 1975년까지 포함시켰다. 반면 나치 독일에서는 히틀러가 흡연에 부정적이어서 광범위한 금연 캠페인을 벌였다. 결과적으로 담배 문제만큼은 독재자가 민주주의 진영보다 앞선 판단을 내린 역사의 역설이었다.

1950년 영국과 미국에서 각각 폐암 환자를 대상으로 조사해 흡연력이 주요 원인이라는 결과를 발표했다. 이 결과에 대한 담배회사의 강력한 반발이 있자 영국의 연구를 주도한 돌과 힐 박사는 3만440명의 영국 의사들을 대상으로 전향적 연구를 시작했다. 수십 년간 흡연 습관을 추적한 결과, 흡연량과 폐암 사망률 사이에 명확한 상관 관계가 드러났다.

오늘날 과학이 밝혀낸 담배의 실체는 네 가지 측면에서 뚜렷하게 드러난다. 첫째, 담배 연기에는 70종 이상의 발암 물질이 포함되어 있어 폐암은 물론 구강암, 췌장암, 방광암 등의 다양한 암을 유발한다.

둘째, 흡연 시 발생하는 다량의 일산화탄소는 산소보다 약 200배 이상 강력하게 산소를 운반하는 혈액 속 헤모글로빈과 결합한다. 이로 인해 혈액의 산소 운반 능력이 저하되면서 심장과 뇌를 포함한 주요 장기에 만성적으로 산소가 부족해진다. 그 결과 쉽게 피로해지고 운동 능력이 떨어지며, 장기적으로는 심근경색이나 뇌졸중의 위험을 높인다. 담배 연기 속의 일산화탄소가 몸 안에서 산소를 빼앗아 가는 것이 적지 않은 위협인 것이다.

셋째, 니코틴은 혈관을 수축시켜 고혈압과 심장질환을 일으킨다. 그리고 니코틴은 마약(코카인)에 버금가는 강력한 중독성이 있어 일단 습관이 되면 의지만으로는 끊기가 어렵다.

우리나라 흡연 실태는 우려스러운 수준이다. 2020년 기준 OECD 국가들의 15세 이상 인구의 매일 흡연율을 비교하면 우리나라 남성은 27.8%로 평균보다 7.6%포인트 높지만, 다행히 임신의 부담이 있는 여성은 3.9%로 평균보다 8.4%포인트 낮다.

흡연은 사회적으로도 심각하다. 질병관리청의 자료에 의하면 2023년 직접 흡연으로 인한 사망자 수는 약 7만명에 달하며, 사회경제적 비용은 2020년 약 12조9000억원에서 2023년에는 약 14조9000억원으로 매년 꾸준히 증가하고있다. 내용을 보면 조기 사망으로 인한 생산성 손실이 절반 이상이며, 그 다음은 의료비다.국민건강보험공단에 따르면 흡연 관련 질환으로 인한 지출은 2021년 약 3조4700억원에서 2023년 3조8600억 원으로 매년 증가하고 있다. 흡연은 개인의 영역이지만 피해는 개인과 사회가 나눠 부담하고 있는 것이다.



[저작권자 ⓒ디지털타임스, 무단 전재-재배포, AI 학습 및 활용 금지]

기사 추천

  • 추천해요 0
  • 좋아요 0
  • 감동이에요 0
  • 화나요 0
  • 슬퍼요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