맹준호 부국장 겸 IT과학바이오부장
지난 2020년 미국의 공익적 내기 사이트 ‘롱 베츠’(Long Bets)에 흥미로운 내기가 하나 올라왔다. 판돈은 400달러. 승부는 2029년 말에 가려진다.
내기의 주인공은 ‘테크 낙관론’의 상징인 에릭 브린욜프슨 미 스탠퍼드대 교수와, ‘테크 회의론’으로 유명한 경제학자 로버트 고든 노스웨스턴대 교수다. 내기의 내용은 ‘2020~2029년 미국의 연평균 노동생산성 증가율이 1.8%를 넘을 것인가’이다. 1.8%를 넘으면 브린욜프슨이 이기고 반대의 경우엔 고든이 이긴다.
복잡한 내용을 건너뛰고, 이 내기의 내용을 최대한 간단히 설명하자면 ‘인공지능(AI)과 로봇이 생산성을 과연 의미있는 수준으로 향상시킬 수 있는가’이다. 이 내기가 성사된 지 2년 후인 2022년 챗GPT가 나왔고, 2026년 현재 PC와 스마트폰 사용자 대부분이 AI를 쓰고 있는 상황이다. 하지만 생산성이 비약적으로 상승했다는 지표는 아직까지 나오지 않았다.
이런 현상에 대해 고든은 생성형 AI가 아무리 신통해 보여도 국가경제의 거시 지표를 바꿀 수 없다고 주장한다. 2010년대 스마트폰 혁명기에도 미국의 연평균 생산성 증가율은 1.1%로 역사상 최저 수준이었던 것과 마찬가지란 설명이다. 기술의 승리가 경제의 성과로 이어지지 않는 ‘솔로우의 역설’이 AI에도 마찬가지로 적용될 거라는 주장이다.
그는 AI가 사무직의 문서 작성 속도를 빠르게 하는 보조도구에 불과하며, 결국 돌봄이나 교육같은 인간 노동과 재래식 사회 구조의 병목에 걸려 빨라진 문서 작업 속도조차 무의미해진다고 본다. 피지컬 AI와 로봇에 대해서도 비관적이다. “로봇이 주방에서 설거지를 하거나 마트 매대에 상품을 채워넣는 것은 챗봇이 시를 쓰는 것보다 수만 배는 더 어려운 일”이라며 실현 가능성을 낮게 평가한다.
반면 브린욜프슨은 많은 개인과 기업이 AI를 도입했는데도 아직 뚜렷한 거시 지표 개선이 이뤄지지 않는 현상을 ‘대폭발 전의 적응 기간’으로 해석한다. 현재는 기업들이 조직 문화를 뜯어고치고 데이터를 정제하는 기간이며, 이 시간이 지나면 J자 형태로 생산성이 증가할 것이란 견해다. 19세기 말 전기가 발명됐을 때도 공장 구조와 업무 프로세스를 전기에 맞게 재설계하기까지 30년이 걸렸다. 그 이후에야 전기문명이 열렸다.
미국의 기술기업들은 AI 인프라와 모델에 돈을 쏟아붓고 있다. 구글, 마이크로소프트(MS), 아마존, 메타 등 4대 빅테크가 지금까지 발표한 누적 자본지출(CAPEX)만도 무려 8000조원이라고 한다.
이런 상황에서 3년 뒤 고든이 내기에서 이긴다면, 즉 AI가 생산성 향상에 도움이 되지 않은 것으로 결론난다면 어떻게 될까. 역사상 가장 거대했던 투자금은 쓰나미로 변해 기업들을 덮치고 그 다음 미국 경제를 넘어뜨릴 것이다. 미국은 두 학자의 내기에서 브린욜프슨이 승리하고, 빅테크의 군비경쟁식 AI 투자가 해피엔딩으로 끝나도록 만들어야만 한다.
최근 이재명 정부와 삼성전자, SK하이닉스 등 민간 주요 기업이 기존 계획을 포함해 반도체, 피지컬 AI, AI 데이터센터 등 3대 메가 프로젝트에 총 4755조원을 투자하기로 하면서 두 학자의 내기는 한국에도서도 똑같은 의미를 갖게 됐다.
이런 막대한 돈을 AI라는 하나의 분야에 투입하는 것은 그야말로 국가의 명운을 건 ‘빅 베팅’이다. 총력을 모아 어떻게든 성공시켜야 한다.
그러나 국가 경제를 AI 기반으로 개조하는 것은 수천조원의 돈을 투자하는 것만으로는 안 된다. 사회 전체가 AI 전환(AX)을 서둘러야 AI로 만든 성과물이 ‘사람과 구조의 병목’에 걸리는 것을 막을 수 있다. 아날로그적 관습에서 벗어나지 못했던 일본, 모든 과거를 뒤로하고 디지털에 올인했던 중국이 지금 테크 분야에서 어떤 위치인지를 보면 쉽게 이해할 수 있다.
한국 사회는 지금부터 아날로그식 업무 관행이나 생활 방식과 이별하는, 고통스러운 과정을 겪어야 한다. 이런 체질 개선 속도가 AI 투자 속도보다 빨라야만 3대 메가 프로젝트가 생산성 혁명으로 이어지고, 모두가 해피엔딩을 맞이할 수 있다.
맹준호 부국장 겸 IT과학바이오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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