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하이닉스 로고. 로이터 연합뉴스
SK하이닉스 로고. 로이터 연합뉴스

SK하이닉스가 오는 10일 미국 나스닥에 약 290억달러(약 44조2000억원) 규모의 미국주식예탁증서(ADR)를 상장하며 글로벌 자본시장 공략에 나선다.

이번 상장은 외국 기업의 미국 증시 첫 주식 매각으로는 역대 최대 규모가 될 전망으로, 인공지능(AI) 시대 핵심 반도체 기업으로서 기업가치 재평가를 노리는 승부수로 평가된다.

블룸버그통신은 5일(현지시간) SK하이닉스의 ADR 상장이 2014년 알리바바의 미국 상장(250억달러)과 2019년 사우디아라비아 아람코 기업공개(IPO·256억달러)를 모두 뛰어넘는 기록이 될 것으로 전망했다.

시장에서는 이번 상장의 의미를 단순한 자금 조달 이상의 전략적 행보로 해석한다. AI 데이터센터용 메모리 시장이 세계 반도체 산업의 핵심 성장축으로 떠오른 가운데, 미국 투자자들의 접근성을 크게 높여 글로벌 투자 기반을 확대하려는 포석이라는 분석이다.

SK하이닉스는 고대역폭메모리(HBM) 시장을 주도하고 있지만 지금까지는 한국 증시에만 상장돼 있어 미국 투자자들이 직접 투자하기 쉽지 않았다.

한국 증시 거래시간에 맞춰 투자해야 하는 데다 환전 부담이 컸고, 회사가 관여하지 않는 비스폰서 ADR은 거래량이 적어 투자 수단으로 한계가 있었다.

나스닥 상장을 계기로 이러한 장벽은 상당 부분 해소될 전망이다. 미국 정규장 시간에 거래가 가능해지는 것은 물론 향후 나스닥100 등 주요 지수 편입 자격도 확보하게 된다.

이에 따라 해당 지수를 추종하는 상장지수펀드(ETF)의 자동 매수 수요까지 기대할 수 있다. 나스닥100을 추종하는 인베스코 QQQ의 운용자산만 약 4820억달러(약 735조원)에 달한다.

전문가들은 미국 자본시장 편입이 SK하이닉스의 저평가 해소에도 도움이 될 것으로 보고 있다.

투자회사 시노버스 트러스트의 대니얼 모건 수석 포트폴리오 매니저는 “세계에서 가장 깊은 자본시장을 활용할 수 있다는 점이 기업가치 재평가에 긍정적으로 작용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실제로 SK하이닉스의 12개월 선행 주가수익비율(PER)은 6.2배로 경쟁사인 미국 마이크론(약 7배)보다 낮은 수준이다. 마이크론은 주가가 최근 14% 급락한 이후에도 이 같은 밸류에이션을 유지하고 있으며, 지난달 말까지는 PER이 11배를 웃돌기도 했다.

시장에서는 AI 투자 확대에 힘입어 SK하이닉스의 실적 성장세도 가파를 것으로 예상한다.

2026년 순이익은 221조원(약 1440억달러), 매출은 355조원(약 2310억달러)으로 지난해보다 각각 415%, 265% 증가할 것으로 전망된다. 같은 기간 마이크론도 순이익이 876% 늘어난 830억달러, 매출은 247% 증가한 1300억달러에 이를 것으로 예상된다.

다만 메모리 반도체 업종의 주가 급등이 과열 국면에 접어들었다는 경계론도 적지 않다.

최근 알파벳과 마이크로소프트 등 글로벌 빅테크 기업들이 데이터센터 투자 재원을 자체 현금보다 채권과 주식시장 조달로 돌리는 움직임을 보이면서 AI 투자 호황이 얼마나 지속될지에 대한 우려도 커지고 있다.

자산관리회사 리버웰스 어드바이저스의 에드 오고먼 최고경영자(CEO)는 “투자자들은 잠재적인 투기 버블에 발을 들여놓는 위험을 감수하고 있다”고 경고했다.

이번 상장을 계기로 ADR과 국내 상장 주식 간 가격 차이를 활용한 헤지펀드들의 차익거래도 활발해질 것으로 예상된다. 과거 알리바바와 TSMC의 미국 상장 당시에도 유사한 거래가 크게 늘었으며, TSMC ADR은 지난 1년 동안 대만 현지 주가보다 평균 21% 이상 높은 가격에 거래됐고 현재도 약 13%의 프리미엄을 유지하고 있다.

다만 ADR과 국내 상장 주식 간 자유로운 전환이 허용될지는 아직 확정되지 않았다. 시장에서는 전환 제약 여부가 향후 ADR 프리미엄의 지속성을 좌우할 핵심 변수로 보고 있다.

SK하이닉스는 이번 상장을 통해 확보한 자금을 국내 반도체 생산공장 2곳 신설과 첨단 장비 투자에 투입할 계획이다. 경쟁사 삼성전자 역시 대규모 생산능력 확대를 추진 중이다.

그러나 업계에서는 AI 수요가 둔화될 경우 대규모 증설 경쟁이 다시 공급 과잉을 초래할 가능성도 배제하지 않고 있다. 불과 3년 전 메모리 가격 급락으로 SK하이닉스와 마이크론 모두 대규모 적자를 기록했던 만큼, AI 호황 이후의 시장 사이클을 둘러싼 경계감도 여전히 남아 있다는 평가다.

이규화 대기자(david@d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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