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오른쪽) 미국 대통령과 잔니 인판티노 FIFA 회장. 2018년 8월 백악관 오벌오피스에서 트럼프 대통령이 레드 카드를 들어보이고 있다. 로이터 연합뉴스 자료사진
도널드 트럼프(오른쪽) 미국 대통령과 잔니 인판티노 FIFA 회장. 2018년 8월 백악관 오벌오피스에서 트럼프 대통령이 레드 카드를 들어보이고 있다. 로이터 연합뉴스 자료사진

2026 국제축구연맹(FIFA) 북중미 월드컵 공동 개최국인 미국 축구대표팀의 핵심 공격수 폴라린 발로건(AS모나코)에게 내려진 퇴장 처분이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직접적인 개입과 재고 요청에 의해 사실상 집행유예로 번복되면서 국제 축구계가 거센 형평성 논란과 정경유착 의혹에 휩싸였다.

AP통신 등 주요 외신에 따르면 FIFA 징계위원회는 지난 5일(현지시간) 미국축구협회에 발로건에게 내려진 한 경기 출전정지 처분의 집행을 1년간 유예한다고 전격 통보했다. 이에 따라 발로건은 당장 벨기에와의 운명이 걸린 16강전에 정상 출전할 수 있게 됐다.

이 출전정지 처분은 발로건이 앞으로 1년의 유예기간 동안 유사한 성격과 강도의 거친 파울을 범하지 않을 경우 공식 철회된다. 발로건은 지난 2일 미국 샌프란시스코 베이 에어리어 스타디움에서 열린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와의 대회 32강전에서 선제골을 터뜨리며 팀의 2-0 승리를 이끌었으나, 경기 도중 상대 선수의 발목을 밟는 위험한 파울로 비디오판독(VAR) 끝에 레드카드를 받고 퇴장당한 바 있다.

축구 규정상 레드카드에 따른 한 경기 출전정지는 별도의 항소가 불가능한 자동 수순이지만, 백악관이 FIFA 수뇌부에 직접 전화를 걸어 압력을 행사했다는 구체적인 보도가 나오면서 파문은 걷잡을 수 없이 커지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FIFA의 발표 직후 자신의 소셜미디어를 통해 “위대한 불의를 바로잡고 올바른 결정을 내려준 FIFA에 감사한다”는 글을 올리며 개입 사실을 숨기지 않았으나, 상대국인 벨기에 축구협회는 “월드컵 역사상 전례가 없는 황당한 결정”이라며 강하게 반발하고 스포츠중재재판소(CAS) 제소 등 모든 법적 수단을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이처럼 전 세계 축구 팬들과 전문가들이 스포츠의 근간인 공정성과 형평성이 훼손되었다며 비판의 목소리를 높이고 있는 가운데, 뉴욕타임스(NYT)가 이번 사태의 구조적 원인을 맹렬하게 파헤친 폭로 기사를 게재해 더욱 큰 주목을 받고 있다.

뉴욕타임스는 5일(현지시간) 잔니 인판티노 FIFA 회장이 지난 수년간 트럼프 대통령의 환심을 사기 위해 다양한 선물과 아부, 그리고 정치적 수단을 동원해 밀착 관계를 형성해 왔다는 내용의 기사를 게재했다.

기사는 인판티노 회장이 FIFA의 고유한 권한을 남용해 트럼프 대통령만을 위한 맞춤형 ‘FIFA 평화상’을 급조해 수여하는가 하면, 백악관 관계자들과의 긴밀한 로비 활동을 묵인하고 사적인 만남을 이어오며 축구기구의 정치적 중립 의무를 스스로 저버렸다고 강하게 비판했다.

결국 이번 발로건의 출전정지 유예라는 초유의 특혜성 결정 역시, 철저히 독립적이어야 할 스포츠 권력이 거대 정치 권력의 입김과 오랜 유착 관계에 굴복한 명백한 증거라는 것이 NYT뿐 아니라 국제축구계의 시각이다.

이번 사태는 전 세계가 지켜보는 월드컵 무대마저 특정 국가적 이해관계와 정치적 친분으로 오염될 수 있다는 최악의 선례를 남기며 국제 축구계에 깊은 얼룩을 남기게 되었다고 NYT는 지적했다.

이규화 대기자(david@d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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