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과 이란이 극적인 종전 합의를 이뤘지만 중동에선 아직도 전쟁이 이어지고 있다. 양국이 체결한 종전 양해각서(MOU)에도 불구하고 이스라엘은 레바논 남부에서 군사작전을 이어가고 있고, 헤즈볼라도 저항을 포기하지 않고 있는 것이다. 미국은 이스라엘의 레바논 철군을 압박하지만 이스라엘은 안보를 이유로 거부하고 있다. 레바논이 미국·이란 종전 성패를 가늠하는 시험대가 됐다.

◆전투도 철군도 어려운 이스라엘

이스라엘은 헤즈볼라가 다시 국경지대에 자리 잡을 경우 북부 주민들의 안전을 보장할 수 없다고 주장해 왔다. 이 때문에 레바논 남부에 이른바 ‘안보 지대’를 유지하며 무력 대응을 지속하고 있다. 그러나 전통적인 완충지대만으로는 달라진 전쟁 양상에 대응하기는 어려워졌다.

애초 이스라엘군이 레바논 남부에 안보 지대를 두려 한 것은 헤즈볼라의 미사일 사정권에서 이스라엘 북부 마을을 벗어나게 하려는 목적이 컸다. 하지만 드론은 미사일보다 훨씬 먼 거리를 날아가고, 지하시설과 이동식 발사대까지 활용되는 상황에서 단순한 거리 확보만으로는 안보를 담보하기 어려운 상황이 됐다.

이런 이유로 미국이 이란과의 종전 협상을 진전시키기 위해 이스라엘의 철군을 압박하고 있음에도,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는 물러서지 않겠다는 입장을 분명히 하고 있다. 그는 지난달 30일(현지시간) 레바논 남부 주둔지를 찾아 “헤즈볼라의 위협이 완전히 제거될 때까지 떠나지 않겠다”며 헤즈볼라의 기반 시설을 모조리 파괴하라고 지시했다. 그러면서 “여러분과 여러분 부하들의 생명과 안전에 대한 위협을 감지한다면 즉각 행동하라. 기다리지 말고 행동하라. 이는 철칙이다”라고 독려했다.

총선을 앞두고 있는 네타냐후 총리 입장에선 헤즈볼라를 끝까지 몰아붙이라는 국내 여론도 외면하기 어렵다. 결국 이스라엘은 전투를 계속할수록 국제적 압박을 받고, 철군하면 안보 불안을 떠안는 딜레마에 놓여 있다.

◆ 헤즈볼라는 어떻게 탄생했나

오늘의 레바논을 이해하려면 역사를 돌아봐야 한다. 제1차 세계대전 이후 오스만제국이 붕괴하자 영국과 프랑스가 중동을 나눠 가졌다. 프랑스는 1920년 마론파 기독교도, 수니파·시아파·드루즈파 무슬림 등 서로 다른 종교 공동체를 하나의 국가로 묶어 ‘대(大)레바논’을 출범시켰다.

이후 1943년 독립하면서 대통령은 마론파, 총리는 수니파, 국회의장은 시아파가 맡는 이른바 ‘종파 권력분점 체제(국민협약)’가 자리 잡았다. 공동체 공존을 위한 절충안이었지만, 정치를 국민이 아닌 종파 중심으로 운영하는 구조를 고착시키는 결과를 낳았다. 시간이 흐를수록 국민들은 자신을 레바논인보다 기독교, 시아파, 수니파의 일원으로 인식하게 됐고 국가는 통합력을 잃어갔다.

여기에 팔레스타인 난민 유입, 인구 구조 변화, 경제적 불균형이 겹치면서 종파 간 갈등은 폭발했다. 1975년 시작된 내전은 15년 동안 약 15만명의 목숨을 앗아가며 나라 전체를 뒤흔들었다. 기독교 민병대와 이슬람 세력, 팔레스타인해방기구(PLO)가 서로 충돌했다. 시리아와 이스라엘, 이란 등 주변국까지 개입하면서 레바논은 중동의 대리전 무대로 전락했다.

레바논 역사에서 중대한 변곡점은 1982년 이스라엘의 레바논 침공이었다. 이스라엘은 PLO 소탕을 명분으로 베이루트까지 진격했고, 그 과정에서 이스라엘 극우 민병대가 베이루트 서부 팔레스타인 난민 캠프(사브라-샤틸라)에 난입해 수천 명의 민간인을 학살한 사건이 터졌다. 이를 계기로 반이스라엘 정서는 급속히 확산됐고, 이란 혁명수비대의 지원을 받는 헤즈볼라가 탄생했다. 이후 헤즈볼라는 단순한 무장조직을 넘어 정당과 복지조직, 군사력을 함께 갖춘 ‘국가 안의 국가’로 성장했다.

이를 보면 헤즈볼라는 하루아침에 등장한 무장조직이 아니다. 종파 정치와 내전, 외세 개입이 쌓여 만들어낸 역사적 산물이다. 그래서 레바논 문제는 군사력만으로도, 외교 협상만으로도 해결할 수 없다.

◆칼로는 풀 수 없는 매듭

미국과 이란은 종전에 합의했지만 레바논 문제는 여전히 해결하지 못하고 있다. 미국은 이스라엘군 철수와 레바논 정부군 배치를 추진하고 있고, 이란은 이를 종전 합의의 핵심 조건으로 보고 있다. 양측은 최근 레바논 내 군사행동을 관리하는 ‘갈등 완화 기구’ 설치에도 합의했다. 그러나 레바논에서 평화가 정착되지 못하면 미국과 이란의 종전 역시 언제든 흔들릴 수 있다. 레바논은 이제 중동 평화의 시금석이 됐다.

신화에 등장하는 ‘고르디우스의 매듭’은 칼로 끊어 해결할 수 있었지만, 레바논의 매듭은 그렇지 않다. 레바논이 진정한 안정을 되찾으려면 종파를 넘어 국가 공동체를 복원하고, 무장세력보다 국가가 국민을 지키는 질서를 세워야 한다. 미국과 이란의 합의가 평화의 출발점은 될 수 있다. 그러나 중동의 미래를 결정하는 마지막 퍼즐은 결국 레바논 국민 스스로가 맞춰야 한다.

박영서 논설위원(pys@d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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