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은아 도시 스토리 텔러
오래된 것들은 지나온 날들을 품는다
시대를 품은 그릇, 사람 비추는 거울
손때 묻은 사물들이 기억을 대신한다
우리가 잃은 것은 시간이 아니라 여유
수십 년 세월 동안 반질반질해진 오래된 티포트(teapot·찻주전자), 정확하게는 커피포트 하나를 손에 넣었다. 바닥에는 작은 글씨가 또렷이적혀 있다. 일메나우, 독일민주공화국(Made in German Democratic Republic). 지금은 통일 독일이 되어 사라진 나라다. 처음부터 티포트를 수집한 것은 아닌데 티포트만 보면 눈을 돌릴 수가 없다. 그렇게 영국, 독일, 프랑스, 덴마크, 폴란드, 미국 등 온 나라를 돌아온 수십 개의 티포트들이 내 책장을 차지하고 있다.
하나만 있어도 부족하지 않는데, 왜 자꾸 새로운 티포트를 들이는 걸까? 차를 마시는 용도로만 쓰는 것이 아니다. 물을 담아두기도 하고, 꽃을 꽂아놓고 며칠씩 책상맡에 둘 때도 있다. 그저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평온해진다. 내가 좋아하는 것은 티포트자체라기보다는 그 티포트가 품어온 어떠한 시간 때문인지도 모른다.
나는 시간이 묵은 정갈한 집을 좋아한다. 잘 관리된 오래된 의자, 손때 묻은 물건을 좋아한다. 빈티지 티포트도 그렇다. 생각해보면 모두가 같은 이야기를 하고 있다. 모두 시간을 새겨온 것들이다. 어쩌면 내가 모으는 것은 물건이 아닌 그 시간에 실려 온 삶 일지도 모른다.
도시도 마찬가지가 아닌가. 우리가 도시를 기억하는 방식은 거대한 스카이라인만이 아니다. 어느 골목 카페의 조명, 창가로 스며들던 빛의 밀도, 오래된 소파의 촉감, 버스 창밖으로 스치던 가로수. 도시는 그런 작고 사소한 감각들로 기억된다. 풍경이 아니라 실루엣으로, 소음이 아니라 온도로.
우리가 기억하는 것은 공간만이 아니라 그곳에서 흘러간 시간도 있다. 현대 도시는 시간을 다루는 방식이 조금 다르다. 효율성을 중시하며 더 빠른 속도를 요구한다. 에스프레소는 그 속도의 상징이다. 빠르게 추출하고, 빠르게 마시고, 일터로 돌아간다. 시간을 압축하는 방식이다. 핸드드립도 있지만 바쁜 현대인들은 에스프레소로 급한 하루를 충전한다.
차는 다르다. 물을 끓이고, 찻잎을 넣고, 기다린다. 서두르면 맛이 이끌려 나올 수 없다. 기다림도 차의 일부다. 차를 마시는 것은 전투 준비가 아닌, 잠시 자신에게 돌아오는 시간이다.
요즘에는 20대들 사이에서 차 문화가 유행하고 있다. 티백을 많이 이용하지만 그래도 우러나는 시간을 기다려 향기로 맛으로 그리고 가슴으로 차를 마신다. 우리 몸은 알고 있을 것이다. 계속해서 빨리 살 수만은 없다는 것을. 우리가 잃어버린 것은 시간이 아닌 ‘여유’라는 삶의 한 호흡일 것이다. 아무것도 생산하지 않아도 되는 시간. 누군가에게 보여주지 않아도 되는 시간. 그저 창밖을 바라보며 차가 우러나기를 기다리는 시간.
우리에게도 시간을 담는 그릇은 있었다. 장독대의 된장과 간장, 고추장과 각종 장아찌. 계절을 건너 해를 넘기며 곰삭아가는 맛. 그것 역시 시간을 다루는 방식이었다. 다만 그 묵은 시간들은 누군가를 먹이기 위해 시간을 들여야 했던 시절, 노동의 영역에 머물렀다. 차 한 잔을 앞에 두고 오롯이 자신에게 머무는 시간과는 조금 다른 결이었다.
티포트를 오래 들여다보면 그릇도 하나의 언어 같다. 글자의 모양과 여백 안에 한 사회의 사고방식이 담기듯, 티포트의 곡선, 비례, 그리고 문양에도 그들이 시간을 다루는 방식이 담겨 있다. 영국의 티포트는 풍성하고 안정적이며, 덴마크의 것은 단정하고 절제되어 있다. 독일의 것은 실용적이고 견고하다. 나라마다 모양은 달라도 공통점이 있다. 모두가 잠시 멈춰 기다려야 한다. 티포트는 테이블 위의 가장 작은 건축물 같다. 그 안에는 한 시대의 생활 방식과 미학, 그리고 시간이 머무는 방식이 담겨 있다.
괴테가 쓴 시 ‘툴레의 임금’에는 임금이 아끼던 술잔이 나온다. 사랑하는 연인이 죽으며 남겨준 술잔에 매일 술을 따라 마시며 죽는 날까지 그 여인을 그리워했다. 얼마나 그리워했길래 모든 재산을 나누어주었지만, 그 술잔만큼은 바다에 던져 버렸다. 누구의 것이 될 수도, 무엇을 담을 수도 없었기 때문일 것이다. 물건은 사람보다 오래 살아남아 그런 시간을 새겨놓는다. 지금은 존재하지 않는 나라에서의 어느 하루.
일메나우 지역의 티포트는 전시를 위해 만들어진 것이 아니다. 누군가의 부엌과 식탁을 오갔을 생활 식기였다. 수채화 느낌의 말간 분홍 장미가 그려진, 키가 크고 몸통이 좁은 이 티포트. 두 손으로 감싸 안으며 그 시절 누군가의 하루를 그려본다. 출근 전 서둘러 물을 끓이던 아침이었을 수도 있고, 퇴근 후 가족이 둘러앉은 저녁 식탁이었을 수도 있다. 진한 커피였을 수도 있고, 생활이 여의치 않은 탓에 대용 커피였을 수도 있고, 차였을 수도 있다. 무엇을 담았는지 알 수는 없다. 무엇을 생각했는지도 알 수 없다. 다만 누군가의 하루에 있었던 것은 분명하다.
동독의 티포트를 손에 쥐고 있으면 이상한 기분이 든다. 동독이나 그 시대가 그리워서가 아니다. 그 티포트 곁에 머물렀을 이름 모를 사람과 주변의 사람들을 떠올려본다. 그들이 살아냈을 삶을. 그리고 그 상상 끝에서 발견한다. 나 자신의 삶을. 독일민주공화국은 사라졌다. 그 티포트는 지금 나의 작은 책상 위에 놓여 있다. 그사이 얼마나 많은 식탁과 손길을 거쳐 왔는지 알 수 없다. 그 시간을 지나 여기까지 왔다는 사실만으로도 이 티포트는 하나의 작은 역사이자 삶이 되어버렸다.
각각의 티포트는 다른 시간을 담고 있다. 동독의 하루와 영국의 하루는 다르다. 한 개로는 닿을 수 없는 시간들이 있다. 그래서 계속 티포트들을 나의 삶에 초대하는지도 모른다. 내가 모으는 것은 티포트가 아니라, 그 티포트를 스쳐 간 하루들이다.
나는 오늘도 티포트에 맑은 물을 부어 꽃을 꽂는다. 커피를 담던 그릇이 차를 담아내고, 꽃을 품는다. 내용물이 바뀌어도 그릇은 여전하다. 도시도 그렇다. 사람이 바뀌고, 용도가 바뀌고, 시대가 바뀌어도 공간은 남아 다음 사람의 시간을 기다린다. 티포트는 가장 작은 ‘도시의 기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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