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재근 문화평론가

북중미 월드컵에서 한국 조별리그 탈락이라는 이변이 일어났다. 이번 월드컵은 48개국 체제라서 토너먼트로 진출하면 32강이다. 기존 월드컵은 32개국 체제였기 때문에, 이번에 32강에서 탈락했다는 것은 기존 월드컵 기준으론 월드컵 본선 진출 자체를 못했다는 이야기가 된다.

이번엔 대진운이 엄청났다. 우리가 속한 A조에 강팀이 없었고 이동 거리도 짧았다. 고지 적응도 일찌감치 마치며 컨디션을 최상으로 끌어올렸다. 특히 이번 대표팀은 황금 세대라고 할 정도로 역대급 멤버였다. 손흥민, 김민재, 이강인 같은 스타를 비롯해 유럽파가 즐비했다. 기존 월드컵에선 보통 상대팀의 몸값보다 우리팀 몸값이 적다는 이야기가 나왔었지만, 이번엔 남아공 같은 상대팀보다 우리팀 몸값이 훨씬 많았다.

이러니 한국 대표팀의 32강 진출은 당연시됐다. 세계적인 스포츠지인 디애슬레틱은 한국의 32강 진출 가능성을 94%라고 예측했다. 그럴 정도로 한국의 탈락은 힘든 일로 여겨졌는데 홍명보호가 그 ‘어려운 일’을 해냈다.

홍 감독은 정말 납득하기 어려운, 매우 놀라운 지휘로 누구도 상상하지 못했던 한국 대표팀의 극히 무기력한 경기력을 만들어냈다. 그렇다보니 감독이 없는 편이 더 나았을 거란 주장까지 나온다. 손흥민을 중심으로 선수들이 스스로 전술을 짰어도 32강 진출이 가능했을 거라는 주장이다.

이런 말이 나올 정도로 홍 감독에 대한 공분이 들끓고 있는데 이는 감독 비난에 그치지 않는다. 축구협회 자체에 대해 거대한 국민 비난이 터졌다. 축구팬들은 홍명보 감독의 선임 과정에서부터 계속 문제 제기를 해왔다. 감독 선임 이후에도 경기력 부진 때문에 축구팬들은 끊임없이 우려를 표했다. 하지만 축구협회는 요지부동이었다.

그래서 공분이 더 커진 것이다. 단지 월드컵 탈락만 한 것이라면 그 결과만으로 지금처럼 사람들이 분노하지 않았을 것이다. 현재까지 오는 과정에 문제가 컸다는 점이 분노를 키웠다. 벤투 감독이 2022년 카타르 월드컵에서 좋은 성과를 거뒀지만 축구협회는 위르겐 클린스만을 대표팀 감독으로 선임했다. 그때 축구협회 전력강화위원장이 해야 할 최종 면접을 정몽규 회장이 직접 진행하며 감독을 낙점했다고 알려졌다.

클린스만이 실패한 이후엔 석연치 않은 과정을 거쳐 홍명보 감독이 선임됐다. 당시 제시 마치가 한국 감독직에 연봉까지 깎아가며 큰 열의를 보였었다. 한국 황금세대가 워낙 뛰어나기 때문에 명장 입장에선 한국팀을 이끌고 월드컵 무대를 뒤흔들고 싶었던 것이다. 협상이 진행 중이었지만 결론은 홍명보였다. 이 과정의 석연찮음에 대해선 현재 고발이 된 상태다. 제시 마치 감독은 이번 월드컵에서 캐나다를 16강에 올려놔 우리의 아쉬움이 클 수밖에 없다.

클린스만과 홍명보 감독이 연이어 실패하는 모습을 보며 축구팬들은 무력감만 느껴야 했다. 축구팬들의 우려에 축구협회가 전혀 반응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야말로 전횡이라 할 만했다. 축구협회의 정점에 있는 정몽규 회장은 축구팬들의 엄청난 비난 속에서도 축구협회장 4연임에 성공했다. 축구계 최상층이 ‘그들만의 리그’가 돼버린 느낌이다.

축구협회의 불투명한 운영 과정에 정부가 개입하려고 하면 협회 측에선 국제축구연맹(FIFA·피파)의 축구 독립 원칙을 명분으로 내세웠다고 한다. 축구협회가 정부 등 외력의 간섭 없이 독립적으로 운영돼야 한다는 원칙이다. 이것은 정치 권력의 부당한 개입을 막으려는 취지인데 한국에선 축구협회가 책임지지 않는 ‘특권적 철옹성’이 되는 데에 기여한 것 같다.

책임지지 않는 권력, 견제나 감시 받지 않는 권력은 문제가 생길 수 있다. 최근 선관위가 그런 독립적 권력이라서 문제라는 여론이 일었는데 축구협회도 비슷한 상황이다. 이에 대한 축구팬들의 분노가 하늘에 닿았고 대표팀 경기력은 바닥을 찍었다.

축구협회 투명화를 더는 늦출 수 없는 상황이다. 진종오 의원은 “밀실 행정과 조직적 은폐 의혹, 대한축구협회의 폐쇄적인 의사결정 구조는 성역 없이 밝혀져야 한다”라고 이야기했다. 투명화와 더불어 회장 선임 과정도 정상화해야 한다.

2002년 히딩크는 격식 파괴, 관습 파괴, 기득권 파괴의 아이콘이었다. 연줄로 움직이는 한국 축구판을 뒤흔들었고, 유명 대학출신 기득권과 선후배 질서를 타파했다. 그래서 히딩크 리더십 열풍이 일어났었다. 그후 24년이 지났는데 축구협회는 2002년 이전으로 퇴보한 것 같다. 각 영역에서 기득권을 누리는 봉건적 권력 체제를 일소해야 우리 사회가 선진화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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