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재자의 딸’에서 ‘최초의 여성 대통령’으로

비난과 환호 속 4전 5기 끝에 대통령 당선

아버지 고발한 어머니 대신 퍼스트레이디 올라

‘가문의 부활’ 향한 집착, 세 번의 낙선 끝에 당선

페루 대선서 승리한 후지모리 후보. 로이터 연합뉴스.
페루 대선서 승리한 후지모리 후보. 로이터 연합뉴스.

페루 대통령 선거 결선투표에서 우파 성향의 게이코 후지모리(사진) '민중의힘' 후보가 피말리는 접전 끝에 최종 승리를 거두었다. 수주에 걸친 이의 제기 투표용지 검토가 끝난 29일(현지시간) 공식 개표가 마침내 완료됐다.

페루 선거관리위원회(ONPE)가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이날 오후 3시55분 기준 개표율 100% 상황에서 후지모리 후보는 50.135%의 득표율을 기록했다. 이로써 49.865%를 얻은 좌파 로베르토 산체스 '함께하는 페루' 후보를 0.27%포인트 차이로 제쳤다. 두 사람의 최종 표차는 약 4만9000표에 불과하다.

이번 선거는 1990년부터 2000년까지 재임한 알베르토 후지모리 전 대통령의 딸이자 정치적 후계자인 후지모리의 네 번째 대권 도전이었다. 그는 앞서 2011년, 2016년, 2021년 대선에 나섰으나 매번 아주 근소한 차이로 패배의 고배를 마신 바 있다. 그러나 이번 결선투표에서 극적인 표 차로 승리를 확정 지으며 페루의 차기 지도자 반열에 오르게 됐다.

페루 정치사에서 게이코 후지모리만큼 극단적인 평가를 받는 인물은 드물다. 누군가에게는 경제 부흥을 이끈 후지모리의 후계자이자 강인한 지도자이지만, 다른 누군가에게는 인권 침해와 부패로 얼룩진 과거 독재자의 딸에 불과했다. 0.27%포인트라는 피를 말리는 초박빙 승부 끝에 마침내 대권을 거머쥔 그의 삶은 그 자체로 페루 현대사를 관통하는 하나의 거대한 드라마다.

그의 정치 인생은 비극적인 가정사 속에서 갑작스럽게 시작됐다. 1990년대 아버지 알베르토 후지모리가 대통령에 취임한 이후 부모님의 이혼 서류가 오갔다. 어머니가 아버지를 부패 혐의로 고발하며 대통령궁을 떠나자, 당시 불과 스무 살이던 대학생 게이코가 어머니를 대신해 페루의 공식 '퍼스트레이디' 자리에 앉았다. 어린 나이에 권력의 최중심부에서 세상의 화려함과 권력의 냉혹함을 동시에 배운 셈이다.

영광은 오래가지 않았다. 아버지가 부패와 인권 침해 스캔들로 실각해 일본으로 망명하면서, '독재자의 딸'이라는 무거운 주홍글씨가 그의 이마에 새겨졌다.

그는 무너진 가문을 다시 일으켜 세우기 위해 본격적으로 정치 전면에 나섰다. 아버지가 구축해 놓은 우파 콘크리트 지지층을 흡수하며 세력을 키웠고, 당당히 대권에 도전했다.

하지만 대통령궁으로 가는 길은 잔인할 만큼 혹독했다. 2011년, 2016년, 2021년 세 차례의 대선에 나섰으나 매번 결선투표 고개를 넘지 못했다. 언제나 상대 후보와 소수점 단위의 박빙 승부를 벌였고, 매번 "상대 후보에게 근소한 차이로 패배한 바 있다"는 기록만 추가됐다. 거듭된 실패와 자신을 향한 검찰의 부패 수사 속에서도 그는 정계를 떠나지 않았다. 승리를 향한 집념은 차라리 독기에 가까웠다.

2026년, 네 번째로 찾아온 기회마저도 완벽한 평탄함과는 거리가 멀었다. 좌파 로베르토 산체스 후보와의 결선투표는 투표 종료 후 수주간 이의 제기가 이어졌고, 투표용지를 한 장 한 장 재검토하는 피 말리는 시간이 지속됐다.

그리고 29일 발표된 최종 결과는 50.135% 대 49.865%. 단 4만9000표 차이로 마침내 승리의 여신이 그의 손을 들어주었다. 세 번을 넘어지고 네 번째에 일어선 '4전 5기'의 신화가 완성되는 순간이었다.

가장 위대하면서도 가장 논쟁적인 아버지를 둔 딸 게이코 후지모리. 이제 그는 누군가의 후계자가 아닌, 페루의 정식 대통령으로서 자신의 이름을 내건 새로운 시험대에 오르게 됐다.

권순욱 기자 kwonsw87@d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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