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성철 경기대 미디어영상학과 교수
홍정도 JTBC 부회장은 지난 2023년 5월 중앙미디어그룹의 콘텐츠 제작사 SLL의 목표를 “한국의 디즈니가 되는 것”이라고 당당히 밝혔다. 불과 3년 전의 일이다. SLL은 그동안 ‘부부의 세계, ’재벌집 막내아들‘, ’이태원 클라쓰‘ 등의 TV 드라마, 영화 ’왕과 사는 남자‘와 ’범죄도시‘ 시리즈, 예능 ’흑백요리사‘와 ’아는 형님‘ 등의 콘텐츠를 제작해 미디어업계의 주목을 받아왔다.
SLL의 최대주주는 콘텐트리중앙으로 지분 53.82%를 갖고 있다. 하지만 콘텐트리중앙은 지난 15일 중앙홀딩스, JTBC, 메가박스중앙, 중앙피앤아이 등과 함께 지난 15일 법원에 기업 회생 절차를 신청했다. 동시에 신문사 중앙일보는 이날 워크아웃을 신청했다. 이들 회사에서 표면상 지난 12일 JTBC가 206억원 규모의 차입금을 갚지 못해 채무불이행 사태가 연쇄적으로 벌어진 것이다.
JTBC와 중앙미디어그룹의 재무 위기 원인으로는 방만한 경영이 우선 꼽힌다. 실제 홍 부회장은 SLL을 통해 막대한 재원을 투입, 매년 10편이 넘는 드라마를 제작해 JTBC를 통해 방영해왔다. 경쟁 종편 TV들이 각각 연간 3~4편의 드라마를 제작하는 것에 비하면 3~4배나 많은 물량이다. 특히 올림픽과 월드컵 중계권을 확보하는데 7000억원을 사용했다. 그러면서 약 2조8000억원이라는 채무를 갖게 되었다. JTBC는 좀 더 일찍 채무 다이어트를 했어야 했다.
JTBC의 본질적 위기는 방송 산업의 위축에서 비롯됐다. 과거 방송은 정부로부터 방송 면허를 승인받으면 수익이 보장되는 분야였다. 2011년 종편 TV 출범 당시 방송 면허는 하나의 특혜였다. 하지만 인터넷 기술 발달로 글로벌 콘텐츠의 무한경쟁 시대를 맞고 있다. 특히 넷플릭스와 유튜브 등 글로벌 OTT의 등장과 경쟁 심화로 방송사 수익성이 크게 악화됐다.
지상파 방송사와 다른 종편 TV 경영에도 적신호가 켜졌다. 실제로 KBS와 MBC의 매출액은 매년 감소하고 있다. KBS는 지난해 사업 적자 996억원, 당기 순손실 818억원을 기록했다. MBC 역시 지난해 영업손실 276억원을 기록했다. 광고비로는 제작비를 충당할 수 없는 상황이다. 방송사들은 손실을 줄이기 위해 드라마 제작을 줄여왔다. 그러다보니 월·화 드라마, 수·목 드라마는 방송가에서 사라지고, 값싼 예능 프로그램이 그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이는 K-드라마, K-컬쳐의 위기로 이어질 수 밖에 없다.
정부는 여전히 방송을 이데올로기 매개체로, 공영성의 잣대로만 바라보고 규제하고 있다. 단적으로 자산 10조 이상의 대기업집단은 방송 시장에 진입하지 못하게 막고 있다. K-콘텐츠의 국제 경쟁력을 강조하면서도 정작 미디어 기업에 대한 투자는 통제하는 것이다. 특정 미디어 기업의 영향력 확대에 대한 우려 때문이다. 그나마 콘텐츠에 대한 투자를 게을리하지 않았던 JTBC와 중앙미디어그룹의 위기는 다른 방송사에게 투자보다는 생존을 위한 긴축 재정을 강조하고 있다.
JTBC 위기가 조금 일찍 수면 위로 불거질 기회는 있었다. JTBC는 지난 2020년 11월에 5년 재승인을 받았기에 당초 지난해 11월 이전에 재승인 절차를 마쳐야 했다. 하지만 방송통신위원회가 방송미디어통신위원회로 개편되고 위원회 구성이 늦어지는 어수선함으로 재승인 시기가 늦어졌다. 만약 재승인 심사가 지난해 이뤄졌다면 JTBC의 재무적 불안전성이 조금 일찍 확인되었을지도 모른다.
JTBC가 난관을 딛고 회생하기 위해서는 현재의 재무적 위기와 국민의 신뢰 회복이라는 두 가지 파고를 넘어서야 한다. 7조원이 넘는 중앙그룹의 자산을 고려하면, 부동산 등 돈 되는 자산을 매각하면 현재의 위기를 넘길 수도 있다. SLL 등 우량 계열사 매각도 적극 고려할 수도 있다. 문제는 시장의 신뢰 회복이다. 부도를 경험한 미디어 기업에 대한 투자 심리를 달래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향후 JTBC의 재승인 심사에서도 지속적이고 안정적인 투자가 관건이 될 것이다.
‘한국의 디즈니’를 만들겠다는 홍 부회장의 야망은 일단 제동이 걸렸다. 홍 부회장이 JTBC와 SLL를 경영할 수 있을지도 미지수이다. 그럼에도 K-콘텐츠 산업은 계속 발전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 정부는 방송에 대한 투자와 소유 제한을 과감하게 풀어야 한다. KBS 수신료 인상도 적극 검토, 공영방송 경영난도 해결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국내 방송콘텐츠 시장은 넷플릭스와 유튜브에 종속될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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