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석윤 한국생명공학연구원 원장
아인슈타인이 혀를 내민 채 장난기 어린 표정을 짓고 있는 유명한 사진이 있다. 사람들은 그 사진에서 천재 과학자의 유쾌한 면모를 발견한다. 그러나 그 사진이 지금까지 사랑받는 이유는 단순한 익살스러움 때문만은 아니다. 그 안에는 권위보다 호기심을, 정답보다 질문을 중시하는 과학의 정신이 담겨 있기 때문이다.
최근 우리 사회는 과학기술에 더 큰 혁신을 요구하고 있다. 그러나 혁신은 단순히 뛰어난 인재를 확보하고 더 많은 예산을 투입한다고 해서 저절로 만들어지지 않는다. 연구자의 독창성 못지않게 과학의 성과를 뒷받침하는 연구문화 역시 중요하다. 따라서 과학기술계가 진정한 혁신을 이루기 위해서는 어떤 연구문화를 갖추어야 하는지 고민해 볼 필요가 있다.
과학기술계는 본질적으로 우수한 인재들이 모이는 공간이다. 따라서 사람들은 혁신 역시 자연스럽게 나타날 것으로 생각한다. 문제는 뛰어난 연구자가 많다고 해서 혁신이 저절로 만들어지는 것은 아니라는 점이다. 과학기술의 역사를 돌아보면 혁신은 서로 다른 관점과 경험이 충돌하고, 기존의 통념을 의심하는 과정에서 탄생해 왔다. 그러나 과거의 성공 경험에 지나치게 의존하거나 실패를 용인하지 않는 문화가 자리 잡을 경우 오히려 혁신의 가능성은 줄어들게 된다.
또한, 뛰어난 인재들이 모인 조직일수록 집단사고의 위험에 빠질 수 있다. 구성원들은 서로의 전문성과 역량을 신뢰한 나머지 기존의 방식을 의심하지 않고, 다른 의견은 비합리적이거나 비협조적인 것으로 받아들이기 쉽다. 조직의 응집력이 높고 구성원의 유사성이 높을수록 이러한 위험은 더욱 커진다.
따라서 혁신성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우선 다양성을 존중하는 유연한 연구문화가 필요하다. 다수가 동의하더라도 다른 의견을 자연스럽게 수용하고 존중하는 문화를 만들어야 한다. 합리적인 의견이라면 소수의 의견이라도 존중받고, 중요한 판단 요소로 고려해야 한다. 질문을 불편하게 여기고 이견을 부담스러워하는 문화는 과학기술계가 반드시 극복해야 할 과제다.
두 번째로, 개방성을 극대화하는 문화가 필요하다. 현대 과학기술이 다루는 문제들은 점점 더 복잡해지고 있다. 기후변화, 고령화, 감염병과 같은 우리 사회가 직면한 문제들은 단일 기술이나 하나의 방식만으로는 해결하기 어렵다. 다양성이 새로운 관점을 만들어낸다면, 개방성은 그 관점들이 서로 만나고 결합할 수 있도록 만든다. 서로 다른 분야의 연구자들이 자유롭게 교류하고, 새로운 아이디어를 시도할 수 있는 칸막이 없는 개방적인 환경의 구축은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해지고 있다.
마지막으로, 아무리 좋은 제도와 문화가 갖춰져 있더라도 그 토대가 되는 것은 결국 연구자 개인의 윤리의식이다. 과학자는 자신의 책임과 의무를 항상 성찰하는 자세를 가져야 한다. 아무리 뛰어난 연구 역량을 갖추고 있더라도 윤리와 책임의식이 결여된 조직은 결국 사회의 신뢰를 잃게 된다. 결국 혁신은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는 조직, 그리고 서로의 다른 생각을 자산으로 받아들이는 문화 속에서 비로소 꽃을 피운다.
국가출연연구기관 등 연구기관들은 국가적 현안 해결 중심의 역할 전환을 요구받고 있다. 이러한 변화는 다양한 분야의 협력과 융합을 전제로 한다. 임무중심형 체계로의 전환 역시 이를 뒷받침할 유연하고 개방적인 연구문화가 뿌리내릴 때 비로소 실질적인 성과로 이어질 수 있을 것이다.
과학기술의 발전과 혁신은 결국 사람과 문화에서 시작된다. 질문을 허용하고 실패를 포용하면서 다양한 의견을 존중하는 열린 조직만이 새로운 발견과 혁신을 만들어낼 수 있다. 지금 당장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마음 속에 굳어 있는 비과학적 전제를 녹여내는 일인지도 모른다. 혁신은 기존의 정답을 반복하는 사람보다 새로운 질문을 던지는 사람에게서 시작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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