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랙으로 완성한 절제된 럭셔리
실내까지 디테일로 품격 높여
정숙한 주행감 더한 고급 세단
검은색은 자동차에서 가장 흔한 색이다. 도로 위 대형 세단 상당수가 검은색이다.
하지만 제네시스 G80 블랙은 달랐다. 같은 검은색이어도 어디에, 어떻게 쓰느냐에 따라 분위기는 완전히 달라질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줬다.
멀리서 보면 일반 G80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하지만 한 걸음 가까이 다가서는 순간 숨겨놓았던 디테일들이 하나둘 모습을 드러냈다.
크레스트 그릴은 물론 전면 엠블럼과 창문을 감싸는 데이 라이트 오프닝(DLO) 몰딩, 범퍼 장식, 헤드램프 안쪽 베젤, 레이더 커버까지 크롬이 있어야 할 자리가 모두 검은색으로 바뀌었다. 화려한 장식을 덜어냈을 뿐인데 오히려 긴 보닛과 낮게 깔린 차체 비율이 더욱 선명하게 드러났다.
유광 블랙 휠도 일반적인 블랙 에디션처럼 휠만 검게 칠한 수준이 아니었다. 플로팅 휠캡까지 적용해 차량이 움직이는 동안에도 제네시스 엠블럼이 반듯하게 유지됐다.
뒤쪽으로 돌아가면 트렁크 중앙에는 다크 그레이 색상의 ‘GENESIS’ 레터링만 남겨 절제된 존재감을 완성했다. 화려하게 과시하기보다 가까이에서 볼수록 더 매력적인 디자인이었다.
문을 열자 분위기는 더 짙어졌다. 실내 역시 철저하게 ‘블랙’이라는 하나의 콘셉트에 맞춰 완성됐다. 스티어링 휠과 패들시프트, 도어 스위치, 공조 버튼, 스피커 그릴, 도어스텝까지 손이 닿는 거의 모든 부분을 검은색으로 통일했다. 여기에 G80 블랙 전용 리얼 우드 가니시와 블랙 가죽 시트, 전용 퀼팅이 더해지면서 마치 고급 호텔 라운지에 들어선 듯한 분위기를 만든다. 반짝이는 크롬이 사라지자 가죽의 질감과 우드의 결이 오히려 더 선명하게 느껴졌다.
27인치 통합형 와이드 디스플레이에는 블랙 전용 웰컴 애니메이션이 펼쳐지고, 차량 그래픽과 스마트키 로고까지 블랙 전용 디자인으로 꾸며졌다. 눈에 띄게 화려한 연출은 아니지만 이런 작은 차이가 차를 특별하게 만들었다.
주행감은 기존 G80이 쌓아온 장점을 그대로 이어갔다. 가속페달을 밟으니 여유롭게 속도가 붙었다. 변속 충격은 좀처럼 느껴지지 않고, 차체는 노면의 요철을 한 번 걸러낸 뒤 실내로 전달했다. 무엇보다 인상적이었던 것은 조용한 실내였다. 시속 100㎞ 안팎의 고속도로에서도 풍절음은 아주 멀리서 배경음처럼 희미하게만 들렸고, 노면 소음 역시 상당 부분 걸러졌다.
대화를 나누거나 음악을 감상하기에 부족함이 없는 수준이었다.
스포츠 모드로 달리면 가속 반응이 한층 경쾌해지지만, 그래도 안정감은 유지됐다. 스피드 레이싱을 즐긴다면 힘 있고 빠르게 치고 나가는 것보다 정숙성에 초점을 맞춘 G80은 아쉬울 것이다.
급격한 코너링에서도 운전자를 전혀 긴장시키지 않았다. 날카롭게 파고드는 스포츠 세단이라기보다, 큰 차체를 안정적으로 받쳐주며 여유롭게 돌아나가는 감각이었다. 빠른 속도보다, 편안함을 권하는 세팅이었다.
뒷좌석에 VIP를 모셔도 문제가 없다. 안정감 있는 시트에 몸을 맡기고, 후석 디스플레이를 통해 넷플릭스, 유튜브 등을 즐기다 보면 멀미할 새도 없이 목적지에 도착했다.
원하는 대로 통풍·열선 시트를 조작하고, 에어컨 온도를 조절하면 장거리 여행도 비즈니스 클래스처럼 내리기 싫을 정도의 편안함을 느낄 수 있다.
총평을 하자면 G80 블랙은 성능을 높인 모델도, 새로운 기술을 대거 추가한 모델도 아니다. 대신 하나의 색으로 럭셔리를 새롭게 해석했다.
크롬을 덜어내고 블랙을 입혔을 뿐인데 차는 이전보다 훨씬 깊고 묵직한 분위기를 갖게 됐다. 제네시스가 말하는 블랙은 단순한 색상이 아니라 브랜드 디자인 철학을 표현하는 방식이라는 회사측의 설명도 고개가 끄덕여진다.
화려하게 시선을 끄는 차는 아니지만, 신호대기 중 옆 차선에서 한 번 더 바라보게 만드는 차다. 가까이 다가갈수록 디테일이 살아나고, 오래 탈수록 차분한 고급감이 쌓인다.
‘블랙’이라는 가장 익숙한 색으로 가장 고급스러운 분위기를 만들어낸 세단인 G80 블랙은 화려함보다 품격을 선택한 사람들을 위한 차였다.
G80 블랙은 2.5 가솔린 터보 AWD, 3.5 가솔린 터보 AWD 두 가지 트림으로 제공되며, 가격은 각각 8243만원, 8673만원부터 시작한다.
임주희 기자 ju2@d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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