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준규 안민정책포럼 청년회원
청년 세대의 정치적 언어가 점점 더 거칠어지고 있다. 누군가는 공정을 말하고, 누군가는 차별을 말한다. 누군가는 평화를 강조하고, 또 다른 누군가는 안보를 이야기한다. 그러나 서로 다른 구호와 진영의 언어 아래에서 청년들이 공통적으로 느끼는 감정이 있다면, 그것은 어쩌면 ‘고독’일지 모른다.
과거의 청년들은 가난했을지언정 미래에 대한 기대를 품을 수 있었다. 열심히 살아가면 삶이 나아질 것이라는 믿음, 공동체가 함께 성장할 것이라는 감각이 존재했다. 그러나 오늘날의 청년들은 성장과 희망보다 생존과 불안을 먼저 배운 세대가 되었다. 취업난과 주거 불안, 끝없는 경쟁, 관계의 피로 속에서 청년들은 하루하루를 버텨내고 있다.
그 과정에서 정치는 청년들에게 위로가 되지 못했다. 오히려 청년 세대는 끊임없이 서로를 적으로 규정하는 정치의 언어 속에 놓여왔다. 보수와 진보는 청년을 자신의 논리를 강화하는 대상으로 소비했지만, 정작 청년들이 느끼는 깊은 불안과 상실감에는 충분히 응답하지 못했다.
오늘날 많은 청년들이 극단적인 정치적 언어에 쉽게 흔들리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단순히 특정 이념을 강하게 믿어서라기보다, 자신을 이해해줄 공동체를 갈망하기 때문이다. 온라인 공간에서의 과격한 분노와 냉소, 혐오와 조롱의 문화 역시 결국은 서로 연결되지 못한 세대의 외로움이 뒤틀린 방식으로 표출되는 현상일 수 있다.
특히 한반도를 둘러싼 담론에서 이러한 거리감은 분명하게 나타난다. 기성세대에게 통일과 이념은 전쟁과 분단의 기억, 민주화 과정 등 역사적 경험과 맞닿아 있는 현실적인 문제였다. 그러나 오늘의 청년들에게는 통일과 안보, 이념 논쟁은 너무 멀고 추상적인 언어로 다가오는 경우가 많다.
삶이 불안정한 청년들에게 거대한 국가 담론은 당장의 현실을 바꾸는 문제가 되기 어렵다. 미래에 대한 두려움 앞에서 청년들은먼저 자신의 삶을 지켜내야 하기 때문이다. 생존이 우선인 현실에서 국가의 미래를 둘러싼 거대한 담론은 자연스럽게 뒤로 밀려날 수밖에 없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청년 세대가 공동체와 공공의 가치 자체를 포기한 것은 아니다. 오히려 청년들은 그 어느 세대보다도 ‘진짜 연결’을 갈망하고 있다. 누군가를 이기기 위한 정치가 아니라 서로의 불안을 이해하고 삶을 안정시켜주는 사회를 원한다. 경쟁과 증오의 언어가 아니라, 다시 사람을 믿을 수 있게 만드는 공동체를 바라고 있다.
이제 우리 사회는 청년들을 단순히 보수와 진보의 숫자로만 바라보는 시선을 넘어설 필요가 있다. 중요한 것은 청년들이 어느 진영에 서 있는가가 아니라, 왜 이렇게까지 지치고 외로운 세대가 되었는가를 이해하는 일이다.
청년 세대의 고독은 개인의 나약함이 아니다. 그것은 불안정한 시대와 과열된 경쟁, 무너진 공동체 속에서 형성된 시대적 감정이다. 그렇기에 오늘날 필요한 것은 상대 진영에 대한 더 큰 적개심이 아니라, 서로의 불안과 고통을 이해하려는 사회적 회복의 노력일 것이다.
분노, 시기, 질투, 혐오, 눈치 보기, 라인 타기, 룰 없는 경쟁, 모두가 생존을 위한 자신의 무가치함과 싸우며 사회 속에서 몸부림치게 만드는 대한민국 사회 풍토, 결국 앞으로의 정치와 민주주의는 누가 더 큰 목소리를 내는가가 아니라, 얼마나 많은 사람들의 불안과 고통을 함께 품어낼 수 있는가에 의해 평가받게 될 것이다.
청년들이 절실히 원하고 있는 것은더 강한 이념도, 더 날카로운 진영 논리도 아니다. 불안 없이 살아갈 수 있다는 믿음과 서로를 신뢰할 수 있는 공동체다. 청년의 고독을 치유하는 사회, 서로를 다시 인간으로 연결하는 정치가 대한민국의 미래를 결정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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