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적 앙금 ‘볼히니아 학살’ 부각… 우크라·폴란드 외교 전면전

학살 가담 의혹 ‘UPA’에 영웅 칭호… 훈장 박탈에 자진 반납 맞불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 로이터=연합뉴스.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 로이터=연합뉴스.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이 폴란드에서 개최되는 우크라이나 재건 회의에 끝내 모습을 드러내지 않기로 결정했다.

AFP통신 등 외신에 따르면 율리아 스비리덴코 우크라이나 총리는 25일 폴란드에서 열리는 우크라이나 재건 회의에 대통령 대신 자신이 대표단을 이끌고 참석할 예정이라고 23일(현지시간) 발표했다. 이로써 회의를 불과 이틀 앞두고 젤렌스키 대통령의 불참이 최종 공식화됐다.

이번 불참 선언은 최근 우크라이나와 폴란드 양국 사이에서 불거진 역사적 앙금과 훈장 박탈 사태가 결정적인 원인으로 작용한 것으로 분석된다.

갈등의 도화선은 지난달 젤렌스키 대통령이 자국 군부대인 북부독립특수작전센터에 ‘UPA의 영웅들’이라는 명예 칭호를 부여하면서 당겨졌다. UPA(우크라이나반란군)는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소련에 맞섰던 민족주의 무장 조직이지만, 양국 간에는 극도로 예민한 역사적 난제다. UPA 일부 부대가 과거 나치에 협력하며 1943~1944년 폴란드인 약 10만명을 학살한 ‘볼히니아(우크라이나명 볼린) 사건’에 가담했다는 의혹을 받기 때문이다.

폴란드 정부는 즉각 반발했다. 카롤 나브로츠키 폴란드 대통령은 과거 젤렌스키 대통령에게 수여했던 훈장을 박탈 조치했고, 이에 맞서 젤렌스키 대통령은 지난 20일 해당 훈장을 자진 반납하며 감정의 골이 깊어졌다. 결국 전쟁으로 폐허가 된 우크라이나의 복구책을 논의하기 위해 2022년부터 매년 이어져 온 국제적 공조 무대마저 역사 갈등에 발목이 잡힌 형국이다.

양국의 외교적 전면전 양상에 유럽연합(EU)은 깊은 우려를 표명하고 나섰다.

유럽 전문 매체 유로뉴스에 따르면 파올라 피뉴 EU 집행위원회 수석 대변인은 “오직 침략자만이 이런 상황을 흐뭇하게 지켜볼 것”이라며 양측의 공개적인 설전이 서방의 정치적 결속을 무너뜨리고 러시아에만 이익을 가져다줄 뿐이라고 강력히 경고했다.

이어 피뉴 대변인은 “지난 5년 동안 우크라이나에서 벌어진 이유 없는 전쟁을 겪으면서 우리가 배운 것이 있다면, 그것은 단결이 우리의 가장 강력한 무기라는 점”이라며 “논쟁을 포함해 (EU) 회원국과 우크라이나 사이의 단결을 저해하는 모든 것은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덧붙였다.

권순욱 기자(kwonsw87@d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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